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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어풍차 Mar 15. 2021

독립은 아무나 하나


지난 며칠 사이에 내게 일어난 일들이  믿기지가 않는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게  생각지 않았던 일들이 순식간에 일어나 내 일정한 삶의 리듬을 여지없이 흔들어 놓았다.


얼마 전 딸은 국가고시를 치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병원에 취직을 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예고도 없이 보무도 당당하게 집을 떠나 혼자 살겠다며 독립을 선언했다. 이런 딸아이의 생각지도 않았던 폭탄선언은 우리 부부를 적잖이 당황케 했다.


순간 독립은 아무나 하나. 돈이라고는 벌어 본 적이 거의 없는 무일푼인 사람이 무슨 수로 어떻게 독립을 한단 말인가 하는 꼬인 생각슬쩍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 엄마! 돈은 걱정하지 마. 최소 3,000만 원까지 대출할 수 있대요. 그리고 병원에서 콜이 오면 한밤중에라도 달려가야 하는데 집에서는 너무 멀잖아."

딸의 대답은 명쾌하고 간단했으며 쉬워도 너무 쉬웠다. 세상사가 다 그렇게 간단하고 명징했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부모인 우리는 여러 가지 생각들 마음이 무거윘다. 당장 딸아이가 고생해서 번 얼마 안 된 돈을 은행이자와  월세로 고스란히 낼 것을 생각하니 여간 마음이 쓰린 게 아니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딸아이는  20년이 넘도록 한 번도 떨어져 혼자 살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불안했고 혼자 사는 사람들에 대한 뒤숭숭한 언론의 보도들도 나의 불안을 가중시켰다. 그렇다고 다 큰 자식을 언제까지 끼고 살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엄마, 걱정하지 마. 나, 이제 어른이야.  내가 엄마 걱정 안 하게 야무지게 잘하고 살게."

딸아이는 내 손을 꼭 잡고 활짝 웃는다.


드디어 이사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틈만 나면 우리 부부는 인터넷 부동산 사이트에 수시로 들어가 되도록이면 최대한 좋고 싼 오피스텔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고, 부동산 중개인에게 의뢰해  괜찮은 물건을 물색하러 다니기도 했다.


"무슨 집값이 이렇게 비싸. 집에다 금칠을 한 신라시대의 경주도 아니고  쪼그만 방이 엄청 비싸네. 당신 방 안 좀 자세히 살펴봐. 혹시 벽에 다이아몬드 박혔나."

남편은 오피스텔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가격을 알아보더니,  실없는 우스갯소리를 하며 공허하게 웃었다. 각종 언론에서 서울의 집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이야기가 먼 나라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우리 아이들의 일이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우리는 하는 수없이 병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오피스텔을 약간 저렴하게 계약할 수 있었고 그 뒤로 5일 후인 3월 1일, 아파트 베란다에 태극기가 나부끼던 날 부모님으로부터 독립만세를 외치며 딸은 그렇게 우리의 둥지를 떠났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평소에 칼같이 퇴근하던 남편이 퇴근시간이 훨씬 지나도록 연락이 없었다. 무슨 일이 생겼는지 불안해하고 있는데 남편한테서 카톡이 왔다.


"세상이 하도 험해서 말이야. 이제 당신도 좀 안심이 되지."

하는 메시지와 함께 사진을 한 장 보내왔다. 그 사진을 보자 친정아버지가 떠올라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일이다. 우리 학교는 고등학교를 가려면 시험을 봐야 하는 조금 특수한 학교였다. 그런데 그 시험을 얼마 앞두고 학교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학생들에게 야간 학습을 시켰다. 야간 학습 시간은 보통 저녁 8시나 9시가 되면 끝났는데 그때쯤이면 이미 날은 어두워 사방은 깜깜했다. 


공교롭게도 우리 마을에서는 나 혼자 그 학교를 다녔고 그 거리 또한 4킬로미터가 넘는 만만찮은 거리였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가끔 으스스한 울음소리를 낸다는 커다란 팽나무와 가끔 이상한 사람이 나타난다는 여우골이 있었다. 혼자서 깜깜한 밤에 그 길을 가노라면 머리가 쭈볏쭈볏 서고 가슴이 쿵쾅거리며 뛰었다. 그럴 때면 차라리 두 눈을 감고 뛸 때가 많았다.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온 어느 날, 그날은 비까지 추적추적 내렸다.  아랫동네 사는 친구와 헤어지고  조금 걷자 여우골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여우골 옆으로 까만 물체가 왔다 갔다 하며 깜빡깜빡 불빛을 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그 자리에서 나는그만 얼어붙고 말았다.


그런데 희미하게 "막내야, 막내야, 거기 막내니?" 하는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이제 환청까지 들리는구나 싶어 눈을 감고  있는데 이번에는 노랫소리가 제법 크게 들렸다.  귀에 익은 익숙한 목소리, 가끔 아버지가 부르시던 노래였다. 용기를 내어 고개를 들고 쳐다보니 가까이서 아버지가 플래시를 들고 노래를 부르며 오고 계셨다. 평소에 말이 없고 사랑 표현에 서투신 아버지는 내가 무서워하며 겁을 먹을까 봐 나를 부르다 안 되니까  노래를 부르셨던 것이다.  그 믿기지 않는 사실 앞에 나는 넋을 놓고 멍하니 서 있었다.


"막내, 놀랬어. 아버지가 우리 막내 껌껌해서 위험할까 봐, 마중 나왔지."

하시면서 대뜸 책가방을 빼앗아 들고는 내 앞으로 플래시를 비춰 주며 묵묵히 걸으셨다.


지금도 밤길을 걸을 때면 그때 아버지와 걷던 그 든든했던 밤길이 생각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쭈글쭈글한 씨감자 속에 들어 있는 옹달샘 같은 그런 분이셨다.

남편이 보내온 사진을 다시 들여다본다. 현관문 잠금장치가 이중 삼중이다.

" 그 녀석들이 우리 딸의 밤을 든든하게 지켜주겠네. 생각 잘했어. 나는 그런 생각 하지도 못했는데."

하고 카톡으로 문자를 보냈다. 그랬더니 곧 가겠다는 문자와 함께 함지박처럼 웃는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어쩌면 남편도 행여 어두운 밤길, 딸이 넘어질세라 환하게 플래시 불빛을 비추며 든든히 밤길을 지켜 주셨던 내 아버지처럼 딸이 안심할 수 있도록 방문에 든든한 파수꾼을 배치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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