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언어풍차 Dec 16. 2020

어느 가을날의 훼방꾼

-여행에서 만난 훼방꾼 이야기-

토요일 아침나절  소파에 길게 누워 이리저리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고 있던 남편이 나 저 요리 먹고 싶다 하며 나를 쳐다본다. 다른 사람들처럼 평소에 맛집을 탐방하거나 음식을 썩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  무슨 요리인가 하고 쳐다봤더니 내가 쉽게 할 수 없는 요리였다.


" 에이, 당신 나 잘 알잖아, 요리 젬병인 거"

남편이 웃으며 잘 안다는 표정으로 다른 프로그램 화면을 보여 준다.


"여기, 여기 말이야. 옛날에 우리가 가서  먹었던 곳이잖아. 어때! 지금 가서 먹고 올래. 가자, ?"

하며 애원하듯 나를 쳐다본다. 하는 수없이 휴일 아침 느긋하게 쉬고 싶은 마음을 뒤로하고  남편을 따라나섰다. 시원스럽게 뻗은 고속도로를 달리다 국도로 빠져나오자, 구불구불한 시골길이 이어진다. 가을을 보내고 겨울이 머문 들에는 하얀  비닐에 쌓인 볏짚들이 어딘가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몇 번의 들을 지나고 농가를 만나고 산을 만나다,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곳도 이미 가을은 떠나고 시든 국화 위에 하얀 서리와 휑하니 낙엽을 몰고 가는 겨울바람만이 우리를 반긴다. 남편이 아무 말 없이 횟집 문을 열고 들어가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 여긴 어머니와 함께 와서 앉았던 곳이네."

남편이 말없이 웃는다.  송어회가 근사하게 한 상 차려지자 정작 먹고 싶다고 길을 나섰던 남편은 말없이 바라보기만 한다.


" 송어에 야채와 콩가루를 듬뿍 넣고 초고추장에 비벼 드시면서 고소하고 맛있다고 하셨는데,  어머니가 안 계시니까 섭섭하다 그."

남편은 내 물음에도 묵묵히 창밖 먼 하늘만 내다보며 연신 물만 가져다 마신다. 아마도 남편은 송어회를 핑계로 어머니와의 추억을 만나러 왔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니는 우리와 여행하는 것을 싫어하셨다. 아니 우리를 배려했다고 해야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 아니여, 내가 가면 불편해서 안돼. 너희들끼리 편히 놀다 와."

그해 가을에도 어머니는 우리와 여행을 한사코 마다하셨다.


"어미야, 저기 서 있는 단풍나무 좀  봐라. 물감으로 칠해도 저렇게 곱게는 못 칠하겠다. 저기, 저기 대추나무에 빨갛게 열린 대추 좀 봐라."

정작 우리의 강요에 못 이겨 떠난 여행길에서 어머니는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셨다.

그런데  정말로 그 여행의 훼방꾼은 따로 있었다. 흥정계곡에 있는 허브나라를 들러 운두령으로 와 기분 좋게 식사를 끝내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국화가 만발한 뜰에 앉아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어머니와 함께 커피를 마셨다.


" 이 이잉,  이 이잉."

벌들은 국화꽃 여기저기를 탐험하며 꿀을 빨고 있었다. 국화꽃에 취하고 커피 향기에 빠져 있을 무렵이었다. 이 이하고 꿀벌 한 마리가 내 얼굴을 스치는가 싶더니 재빠르게 내 입술에 침을 한방 놓고는 사라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아야 하며 외마디 비명을 질렀고, 벌 침에 약한 내 입술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더럭 겁이 난 우리는 오후 일정을 미룬 채 서둘러 근처 병원을 찾았고, 해가 뉘엿뉘엿 해질 무렵에야 예약해 놓은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여행이 어머니와의  마지막 여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다음 해 어머니는 갑자기 쓰러져 병상에 계신지 2년 만에 우리의 곁을 떠나셨다.


"미야,  괜찮냐. 의사 선생님은 괜찮다고 하시더냐? "

하며 안절부절못하시던 그때의  어머니가 떠오른다.


지금 우리 집 거실 텔레비전 옆에는 조그만 액자 여러 개가 진열돼 있다. 그중 하나가 어머니와 강원도 운두령에 있는 송어회 집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 속에는 기와집을 뒤로하고 양옆에는 노란 국화가 만발한 가운데 어머니와 남편 그리고 내가 활짝 웃고 서있다.


가끔 어머니가 생각나고 가을이 오면 나는 그 사진을 들여다본다. 그러면 사진 속에 어머니는 내가 못 미더워  안부를 묻는 듯하다.


"에미, 괜찮은 겨."






















이전 08화 독립은 아무나 하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