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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어풍차 Apr 13. 2021

잠시 머물다 간 바람이기를


내가 처음 그곳에 발을 내디뎠을 때가 생각난다.  조심스레 문을 열자 일제히 나를 쳐다보던 사람들, 순간 무안해 어쩔 줄 몰라하며  비어 있는 자리에 가서 어정쩡하게  앉았던 나, 정신을 차리고 나서  교실을 안을 둘러보니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활짝 웃으며 쳐다보는 사람,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표정들은  내가 누구인지 어서 알려 달라는 눈길이었다. 그 눈길들은 따스했다. 정작 경계에 눈빛을 풀지 못하고 방황한 사람은 나였다. 그렇게  그곳에서 둥지를 튼 나는 그들과 문학을 공부하고 토론하며 10년이라는 세월 동안을 함께했다.


그런데 작년부터 코로나로 인해 모임은 더 이상 가질 수 없어 카톡 방에 글을 올리며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으며 지내왔다.  어느 날 우리 모임에서 글을 제일 잘 쓴다는 평을 받고 있는,  문우 글 한편이 모임방에 올라왔다. 그날도 역시 세한도를 보며 비움에 대해 성찰하는 글로 꽤 깊이가 있었다.  문우들은 모임방에  그 글에 대한 감상평이나 미흡한 부분을 지적하며, 가끔은 여러 가지 방식을 제시하며 이런 식으로 글을 쓰면 어떨까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토론이 거의 끝나갈 즈음 작품을 올렸던 문우가 얼마 전에 암 판정을 받았다며,  당분간 글쓰기 모임에 참석 못 하겠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글을 올렸다. 순간 모임방에는 정적이 흘렀고 나는 믿기지 않는 현실에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문우들의 안타까운 탄식이 들리는 듯했다. 아무것도 묻지 마라 달라는 문우의 말이 더 아프게 다가왔다. 얼마나 상심이 컸으며 그랬을까. 웃으면 커다란 눈이 먼저 따라 웃던 그녀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한동안 그 충격으로 글을 읽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밥을 먹어도 밥맛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울적해 있는 나를 보고 안 되겠다 싶었는지 남편이  "처형, 이 사람 좀 어떻게 해주세요." 하며 양평 언니에게 전화를 건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나를 차에 태워 양평으로 향했다. 겨울을 벗고 서서히 봄옷으로 갈아입고 있는 양평은 아름다웠다. 개나리, 산수유가 새삼스레 곱게 다가온다. 쑥 향기가 그윽한 논두렁 길도 성큼 다가와 내게 안긴다.  차가 동네 어귀에 들어서자, 멀리서 언니가 마중 나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니를 보자 마음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뭔가가 솟구쳐 올라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그동안 그 문우로 인해 울적했던 마음을 달래줄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얼마 후 우리는 논 한가운데 자리 잡은 아담하고 정감이 가는 음식점에 마주 않았다. 객토를 하기 위해 군데군데 쌓아 놓은 흙냄새가 싱그러웠다. 그 위로 봄빛이 난만하다. 문득 사람의 삶도 나고 자라고 없어짐이 자연과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념에 빠진 나는 음식이 나와도 우두커니 바라만 보고 앉아 있었다. 그러자 언니는 남편과 내게 고기와 맛있게 보이는 반찬을  가져다 연신 숟가락 위에 얹혀 준다. 그러고는 어서 먹으라고 재촉이다.


"처형, 됐습니다. 이제 처형도 좀 드세요." 하며 싫지 않은 듯 남편은 연신 헤헤거린다. 그런 남편을 보고 언니는 "사위는 장모 사랑이라는데 제부는 막내한테 장가 오는 바람에 장모님 사랑도 제대로 못 받고. 흐흐, 제부 많이 먹어요." 하며 네게도 어서 많이 먹으라고 재촉이다. 언니의 그런 모습에서 엄마의 모습을 발견한다. 사람으로 아픈 마음은 사람으로 치료한다고 했던가, 순간 무겁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 듯했다. 


양평으로 향했던 차는 다시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보며 서울로 서울로 향해 달렸다. 차를 타고 오는 동안 요즘 의술이 좋아서 웬만한 암은 다 낫는다더라. 너무 걱정 마라. 막내야, 잠시 머무는 바람일 거야." 했던 언니의 말이 귓전을 맴돌았다. 

그날 나는 모처럼 만에 내가 믿는 신에게 기도를 했다.

"제발, 그  문우에게 이는 바람이  잠시 머물다 지나가는 부드러운 봄바람이 기를..."


https://brunch.co.kr/@futurewave/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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