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잉위잉 Apr 26. 2016

정신적 왼손잡이 #17.유리 멘탈

20160219. 유리 멘탈

 드라마에서 자주 나타나는 클리셰. 누군가가 다치고, 다친 사람과 모종의 관계가 있는 사람이 혼비백산해서 병실에 들이닥친다. 그러면 의사와 간호사들이 나타나 그를 만류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지금 환자에겐 안정이 필요합니다!"


그렇다. 일어나라는 둥, 어쩌다 이렇게 됐냐는 둥, 진작 왜 조심하지 않았냐는 둥. 다 필요 없다.

특히 마음 다친 사람한테는 더욱더.

그래서인지, 치료를 시작한 이후로 스스로를 더욱 외롭게 만들었다.





#1. 의지고 뭐고 다 족구나 하라 그래


 과연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 건지, 건강한 정신이 건강한 육체를 만드는 건지 궁금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묻는 것과 같다. 생각해보면 전후자 다 맞는 말 같다. 정신과 몸도 '길항 작용'한다. 어떤 사고로 몸을 다치면 그로 인해 정신도 급격히 힘들어진다. 정신이 힘들 땐 몸도 비상사태에 돌입한다. 그 어느 것에도 문제가 있는 게 아니다. 함께 영향을 주고받는다. 전후가 없을 때도 있다.

그래서 나는 '네 의지로 극복해내라'는 말이 제일 싫다. 할 수 있었다면 그녀를 찾아가지도 않았다.
네가 나약해서, 네가 게을러서, 네가 근성이 없어서. 내 잘못이란 시선이 너무 싫었다. 운동도 '난 그렇지 않다'는 걸 증명하기 위한 행동 중에 하나였지, 흥미는 그 후에 붙은 것이다.


나는 '정신으로 몸을 극복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몸은 극복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단지 겪어낼 뿐. 내 마음과 육체는 싸워서 이겨야 할 경쟁자가 아니라 보듬어서 함께 가는 친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루한 일상을 견디고 다시 나아갈 힘을 얻는 건 이해받았다고 느끼는 마음, 그래도 내가 세상에서 의미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관계 속 인정뿐이다. 그 마음의 균형이 무너질 때 몸은 가끔 에러 메시지를 보내 우리를 잠시 멈추게 하곤 한다. 그때 마음을 잘 들여다보는 일은 어쩌면 몸을 찬찬히 이해하는 것과 같을 수 있다. 마음의 문제를 찾아 보듬어줄 때, 몸은 밸런스를 찾아나가기 시작할 것이다.


-주간 대학내일 773호 <Think: 자고만 싶나요? 많이 먹나요? 마음이 아픈가 보다>, 정문정 에디터-  



#2. 제가 직접 해 보았습니다.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단련하기 좋은 운동을 했다. 혹독한 체력 단련 속에 승부와 예의가 있는 무술을 배웠다. 재미있었다. 몸을 움직이는 일이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효과는 대단했다. 하루의 우울함은, 땀에 젖은 도복을 벗으면 이내 사라졌다. 손발이 터지고 다쳐도 아픈 줄도 몰랐다. 꽤 호탕하게 웃을 줄도 알았다. 내일을 기대하며 잠들 줄도 알았다. 해내고 싶은 목표가 소소하게나마 있었다. 그걸 해내면 눈물 나게 기뻤다.  나보다 더 큰 체구의 사람을 대련 상대로 만나면 오줌을 지릴 정도로 겁이 났다. 그때 '넌 이길 수 있어! 정면으로 치고 들어가!'라는 사범님의 한마디면, 몇 번을 바닥에 나가떨어져도 싸웠다.


 운동을 한 건 2013년의 일이다. 정신과에 오기 이전의 치료는 2014년 여름부터였다. 즉, 내 몸에 다량의 약이 쏟아붓기 시작한 건 운동을 쉰 지 반년 정도 이후의 일이다.


 간헐적으로 청력을 잃었다. 30분 휴식시간 동안 기절하듯 잠을 잤다. 알코올 의존 증상을 겪었다. 체중은 20킬로그램 이상의 폭으로 널을 뛰었다. 거울을 볼 수 없었다. 외롭고 괴로워서 다음 날 내가 눈을 뜨지 않기를 기도한 날도 있었다. 선단 공포증이 생겼다. 타인을 사랑하는 법도 잊었다. 마음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운동으로 한껏 키워놓았던 신체건강은 한 번에 곤두박질쳤다. 약이 없으면 일상적인 일도 제대로 못할 만큼 말이다.(#15. 약이 떨어진 날)

 그러다 보니 해묵은 단증도, 자취방 구석에 처박힌 도복도 장비도 결국 '왕년에'의 이야깃감이 되어버렸다. 그게 제일 아쉽고 섭섭하다. '운동했다더니 왜 그 모양이니?'라는 말을 들으면 참. 아예 운동하지 말걸 그랬나. 대학 졸업 이후에 만난 사람들에겐 운동을 했었던 경험에 대해 전혀 먼저 말하지 않는다. 먼저 그런 이야기를 꺼낼 소재가 나오지 않고서야.


이래도 저래도, 날 까내릴 사람은 까 내리는구나.

아니면.

이래도 저래도, 난 구제 불능인가.

뭘 해도 난 모자란가.

뭘 해도 못나고 하찮은가.

아무래도 시원찮은 건가.


'결국엔 내 맘대로 하겠어'라는 생각까진 멀고도 험난했다.



#3. 유리멘탈이 어때서


"위잉씨가 여기서 멘탈 제일 약해."


동료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나온 이야기. 부서 업무의 특성상, 악성 댓글이나 루머, 불법 유포와 상대하는 일이 종종 있다. 아이디어를 많이 요구하기 때문에, 열 개의 기획안을 내도 하나가 통과되면 다행이라 할 정도. 동료들이 저마다 '힘들어요, 속상해요'라고 토로하는 과정에서 내가 들은 말이다. 정작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맞아요. 저 완전 유리 멘탈이에요."


쉽게 인정했다. 심지어 웃으면서 넘어갔다.

남들 앞에서 약한 사람이 되는 건 죽어도 싫다. 일에선 완벽주의적인 편이다. 지난번에도 그렇지만 실수하는 게 미치도록 싫으니까. 그래도 약한 건 약하다고 해야지 뭐. 인정했다. 하지만 어쩐지 얕보이는 기분이었다. 팀에서 공식 '멘탈 최약체'로 인증받은 기분. 어이가 없었다. 그럴 때 나는 다시 작년 8월의 기억을 뒤적인다.


이 회사에 들어올 때 내가 썼던 자기소개서, 그리고 면접 중 대화 내용은 대충 이렇다. (자유 양식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아마 다른 곳에선 이렇게 쓰면 100% 탈락이지 않을까.) 물론 이것보다 훨씬 유연하고 자연스럽게 글을 쓰고 말했지만... 요약하자면 이렇다.


무직으로 지내던 여름에 검은 개가 찾아왔다. 아무런 쓸모없는 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을 견딜 수가 없어서, 전문가를 찾아갔다. 그녀는 내가 남들과는 조금 다른 생각의 톤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난 어딘가 망가진 사람, 또는 부족한 사람이기보다는 남들이 못하는 뭔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기로 했다. 머리와 마음속에 생각이 많아서, 남들보다 좀 더 어질러진 방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가 내게 오려면 방을 청소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릴 뿐이다... (중략)


...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에 가고 있고, 약물을 복용 중이다. 병명은 기분장애, 신경성 정동장애. 내가 이것을 치부라 생각해서 감춘다면, 더 큰 문제가 생겼을 때 업무와 회사에까지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을 안다. 그래서 이야기할 뿐이다. 다리를 다친 사람이 다시 움직이기 위해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니는 것과 뭐가 다른지 궁금하다. 내 고민과 문제를 풀어줄 수 있는 전문가가 엄연히 있고, 그래서 그를 찾아가는 일이 치부라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오히려 내가 궁금하다. (후략)


꽤 자신감 있었구나.

나 그땐 용감했네. 이렇게 생각하기 좋은 대목이라서.

뜨거운 차를 마시고 나서, 멘탈에 관한 대화는 금세 잊어버렸다.



#4. 유리병의 목


새로운 약을 먹기 시작한 지 시간이 좀 흘렀다. 약이 끊겼다가 다시 재개되었을 때의 안도감이 굉장히 오래갔다. 보통 아침에 매우 기분이 나쁜 상태인데, 그나마 울지 않고, 남에게 쓸데없이 화내지 않고 버틸 수 있을 만큼 안정됐다. 가끔은 발걸음이 가볍기도 했다. 먹고 싶은 것이 생각나기도 했다.


날씨는 여전히 춥다. 난 추위를 별로 타지 않는다. 더운 것보다 추운 걸 더 선호한다. 버스에 옹기종기 모여 한 사람들 사이에 몸을 비비고 선다. 비둘기 같다. 슬슬 더워지려고 한다. 회사까지는 다섯 정거장. 두 정거장쯤 가면 슬슬 목이 차가워진다. 손잡이를 잡고 선 팔도 서늘해진다. 버스 천장에서 스르르 구렁이처럼 그것이 타고 내려온다. 오직 나만이 보고 느끼는 그것.

점점 머리 위로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 때 쯤, 목적지에 도착한다.

답답하다. 내 목에 딱 맞추기라도 한 듯 알맞게 감긴 그것은 다섯 정거장을 가는 내내 점차 두꺼워진다. 죽을 만큼 목을 조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결코 아늑한 기분은 아니다. 역겹고 불편하다. 멀미가 난다. 멀미는 원래 잘 하니까 딱히... 손이 몹시 차가운 사람이 내 목을 한 손에 감싸 쥔 것 같다. 그것이, 내가 버스에서 넘어질까 봐 잡아주는 거라곤 생각 들지 않는다.


계속 목을 감아 '위로' 잡아당기기 때문이다.



#5. 스트레스의 시각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이미지로 잘 그려지는 사람이네요. 꿈을 잘 꾼다는 것도 그렇고. 예민하고 감각적인 사람들이 제일 많이 시달리는 것 중 하나가 꿈이에요. 자신이 느끼는 감각과 감정을 너무 잘 표현하고 상상해서 더욱 -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많이 괴롭죠."


그렇다. 난 그것의 실체를 본 적은 없다. 그저 그런 '느낌'일뿐이다. 내 상상이 만들어낸 이미지다.


"환영이나 환각은 아니에요. 다만 출근길 버스에서 늘 그런 감각을 느낀다는 건- 그러니까 퇴근길엔 그렇지 않다는 거잖아요. 가고 있는 행선지에 뭔가 불안 요소가 있거나, 집으로부터 멀어지는 분리불안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렇다고 집으로 가는 일이 대단히 좋은가? 이전의 부서에 다닐 때 썼던 이야기지만, 사람의 인기척이 좋아 퇴근하기 싫었던 적도 많았다. 지금도 집에 돌아가면 누워있을 뿐 딱히 새로운 일을 하진 않는다.


"그럼 회사에서 뭔가 일이 있는 모양이네요. 위잉씨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살기를 원하지만, 그 속에서 대단히 괴로워할 수밖에 없는 성격이에요. 스스로를 많이 단속하려 하니까요."


.......


"좋은 분위기의 회사라고 하지 않았아요? 들어보니 많이 개방적이고 밝은 분위기인 곳 같던데요. 하고 싶은 일도 하고 있고."


나는 말해야 한다. 그녀에게. 최근에, 나의 감정이나 마음을 가장 크게 뒤흔들어놓았던 일들을 말이다. 딱히 그것이 나를 음주를 비롯한 문제행동으로 이끌지 않았다고 해도.


정신적 왼손잡이. Fin.

※에세이 <정신적 왼손잡이>는, 필자 위잉위잉이 2015년 6월부터 현재까지 모 병원 정신건강의학과로 통원 상담 및 약물 치료를 병행하며 기록한 치료 일지로부터 시작한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정신적 왼손잡이 #16.친절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