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잉위잉 Apr 22. 2016

정신적 왼손잡이 #16.친절함

20160210. 친절함

버스에서 쓰러진 사람을 도운 일(#12. 감사를 받는 일)은 한 두 달간 계속해서 마음에 남았다. 혹여 잘못되었다면 내게 연락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지금까지 연락이 없는 걸 보면 아마 무사하겠지. 그때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 이타적인 사람? 선인? 희생적인 사람? 친절한 사람? 친절이라는 단어에 멈춰 선다. 나를 보고 힘겹게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던 여자의 모습이 또 한 번 스쳐 지나간다.


친절함은 내가 베푸는 것이 아니라, 받는 사람이 느끼는 것이다.


이 말을 강의 중에 들은 적 있다. 상식선에서의 친절함은 어느 정도인지 참 모호하다. 그러나 때때로 내가 베푼 친절함이 타인을 기만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은 잘 안다. 친절한 타인은 경계하고 본다. 나 역시도 친절함을 베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목소리는 가벼워도 얼굴은 웃지 않는다. 혹은 얼굴은 웃고 있어도 말로는 일침을 놓기도 한다. 친절함은 위험하다. 마음대로 내가 전해서도 안되고, 내가 남에게서 냉큼 받아도 안 되는 것이라고 지금까지 그렇게 믿고 있다. 




#1. 천사가 아닐까


병원에 가는 일은 언제나 거북스럽다. 졸업한 대학교 근처라 아는 사람과 마주칠까 봐 시선이 자꾸 흔들거린다. 아주 그냥 멀미를 셀프로 한다. 그래도 한 가지 낙이 있다면, 버스 정류장에서 병원까지 걷는 길에 줄지어 선 애견샵을 구경하는 일이다.


창문에 매달려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들을 보는 일. 


학부생 때 여길 지나다니면 늘 슬펐다. 얼마나 답답할까. 무심하게 사료만 채워주고 사라지는 저 손길에, 매달리고 싶어 바둥거리는 저 작은 털 뭉치들. 그런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어린 새끼 동물이 전해주는 편안함은 차마 거부할 수가 없다. 그중에서도 나는 웰시코기 종을 제일 좋아한다. 웰시코기 강아지를 본뜬 인형이 어디 없을까 싶어 아마존을 뒤지기도 했다. 그래서 웰시코기 종이 있는 애견샵 앞에선 멍청한 표정으로 입을 헤 벌리고 서 있곤 한다. 강아지는 때론 자고 있고, 때론 그 작은 다리를 발발 거리며 돌아다닌다. 한번 쓰다듬어 보고 싶다. 


개는 사람을 좋아하니까. 이런 못난 나에게라도 폴짝폴짝 달려와 안길 것 같다. 사회에서 부딪히고 깨지고 아주 박살이 나도, 집에 돌아오면 나를 반기고 핥고 안아주며 영원히 사랑해줄 것만 같다. 인간이 결코 주지 않는 한결같은 사랑을, 개는 줄 수 있을 것 같다. 천사가 아닐까, 개는. 요즘 들어 부쩍, 개털 알레르기가 있으면서도 길에 강아지만 지나가면 눈을 뗄 수가 없다. 천사 같아 보여서. 덥석 만지지는 않는다. 견주에게 예의도 아니거니와, 천사 같아서 더욱 만질 수가 없다.  


애견샵이 늘어선 길이 끝나고, 긴 횡단보도를 건넜다. 학교 후문의 사거리가 나왔다. 주스 가게, 토스트 가게, 밥집 등 자잘한 가게들이 늘어선 거리와, 야구 점퍼를 입고 오가는 몇몇 앳된 학생들이 보였다. 병원은 왼쪽 길이다.




#2. 흔들흔들 


땅을 보고 걷다가 우뚝 멈췄다. 발길이 저절로 멎었다. 작은 털 뭉치가, 토스트 가게 앞에서 흔들흔들, 바동바동, 오락가락. 금색과 흰색이 예쁘게 섞인 강아지가, 흔들흔들.


웰시코기 종의 강아지 한 마리가 앉아있었다. 목줄의 한쪽 끝이 토스트 가게 문 안쪽에 들어가 있었다. 머릿속이 하얘진다. 정말 실제로 가까이서 웰시코기를 본 건 처음이었다. 정말 귀엽다. 천사다. 요정이다. (웰시코기 잔등의 흰 털은 숲의 요정이 타고 다니는 안장이라는 영국 전설도 있단다.)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은 잠시 미뤄두고 웰시코기 쪽으로 가만히 가만히 다가갔다.


"아휴, 얘는 왜 자꾸 움직이니."


토스트 가게에서 견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나왔다. 목줄 끝을 가게 문고리에 걸었다. 하지만 또 빠져버릴 것 같이 아슬아슬했다. 계속 강아지는 움직였다. 토스트를 사려는데, 개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갈 수 없어서 안절부절못하는 상황이라는 걸 파악했다. 안을 슬쩍 들여다보니 아주머니가 토스트를 사서 나오려면 꽤 오래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계속 목을 긁고 몸을 터는 걸 보니 강아지는 목줄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것 같았다.




#3. 착하다


강아지 옆에 가만히 쪼그려 앉았다. 사람이 다가오니 강아지도 나를 쳐다봤다. 홀린 사람처럼 웰시코기의 등을 쳐다봤다. 강아지는 긴장했는지 가만히 앉는다. 당장 만져보고 싶었다. 하지만 견주의 허락 없이 강아지를 만지는 건 예의가 아니다. 슬쩍 다가가 땅바닥에 다시 떨어지고 만 목줄의 한쪽 끝을 잡는다. 시선은 내내 강아지를 보고 있었으므로 견주 아주머니가 날 어떻게 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강아지는 내가 목줄을 잡은 걸 보고 있었다. 경계하지는 않지만, 딱히 크게 움직이지 않는 걸 보니 긴장은 한 것 같다. 


옳지, 착하다.


혹여 내가 개를 데리고 가려는 걸까,라고 오해할까 봐. 그리고 눈높이를 더 맞춰보고 싶어서 강아지와 똑같은 자세로 바닥에 주저 앉앉다. 손을 가까이 가져가 본다. 아주 어린 시절, 잠시 이모 댁에서 커다란 레트리버를 길렀던 기억을 되살려 손의 냄새를 맡게 하고, 목부터 조심조심 쓰다듬는다. 


옳지, 옳지. 아이, 예쁘다. 

이런 나라도, 영원히 사랑해줄 것만 같은 천사.

창문 가에 견주 아주머니가 앉았다. 주문을 마친 모양이었다. 강아지를 향해서인지 나를 향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안녕'하는 반가운 손짓을 주었다. 강아지가 다른 곳으로 움직여 가 버리지 않은 데에 안심하고 있는 건 분명하다고 판단했다. 오해하고 계신 건 아니구나. 그래도 견주 아주머니를 볼 면목은 없었다. 왠지 부끄러웠다. 그냥 천천히 강아지 털을 만져주고 있을 뿐. 


털은 깨끗하고 윤기 있다. 황금빛 털 뭉치 밑으로 팔딱거리는 심장과 따뜻함, 숨이 너무나 신기하다.  축산학과 친구가 들려준 말이 생각났다. 개의 체온은 38도로, 사람보다 2도 정도 높다고 한다. 그래서 개를 껴안으면 따뜻한 기분이 든다는 건 단순히 털 때문만은 아니고, 정말 개가 사람보다 따뜻해서라고. 


진짜, 천사구나. 



#4. 부끄러운 친절함


"어우, 너무 고맙습니다."


견주 아주머니가 가게에서 나온다. 토스트가 담긴 종이봉투에서 고소한 냄새가 난다. 나는 바로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에......"

'예'인지, '에'인지 모를 답을 했다. 아주머니에게 개 목줄을 돌려 드렸다. 바로 등을 돌려 떠났다. 마치 개를 훔치다가 걸린 사람처럼 빠른 걸음으로 달아났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렇게 좋아서, 방금까지도 사랑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던 강아지를, 뒤돌아서 한 번 더 보지도 않고 떠났다. 오르막길을 한 번에 달려서 병원까지 올라갔다. 얼굴이 달아올라서 터져버릴 것 같다. 뛰어서가 아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들은 시점에서 이미 최고 온도까지 올라가 있었으니까.



#5. 친절함은 내 것이 아니야


"자기 자신이 착하고,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고, 쓸모 있고, 타인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나요?"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지나가다 친절한 사람 한 둘 쯤은 일상에서 누구나 만나지 않나... 나보다 더 이타적인 사람은 많다. 학부생 내내 봉사활동은 두 가지만 했다. 하고 나서도 그것을 딱히 서류로 꾸며 등록하지도 않았다.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주는 것도, 누군가가 떨어뜨린 물건을 주워주는 것도 그냥 상식선의 일이다. 대단하게 고마움 받을 일이 아니지 않나.


처음 서울에 왔을 때, 서울 사람들은 참 별걸 고마워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북적이는 지하철에서 조금만 스쳐도 '죄송합니다', 작은 배려에도 '감사합니다'라고 정말 많이 말했기 때문이다. 부산에선 딱히 그런 말이 오갈 일도 없었고, 아무도 그걸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았고. '대단히 예의를 철저히 지키는구나' 싶어서, 서울의 첫인상은 무섭고 까다로웠다. 


"친절은 때론 기만이 되기도 하잖아요. 전 그걸 알아요. 친절은 받는 사람이 느끼는 거지, 내가 베푸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근데 방금 있었던 일은 친절이라는 확신이 있었잖아요?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도 들었고. 전에 사고가 났을 때 면밀히 대처했던 일도 그렇고. 모두가 위잉씨에게 고마워했어요."


다시 얼굴이 붉어진다. 조금 침울해진다.


"...... 진짜 그 사람이 고마워하는지 어떻게 알아요. 게다가 이까짓 일에, 고마워하는 거도 이해 안 가요."


"지금까지 타인의 친절이 불쾌했던 적이 많았나요? 그래도 위잉씨를 주변에서 '예의 없는 사람'이라고 보지는 않잖아요. 오히려 어수룩하고 서툴고 순진하다면 모를까. 그리고 늘 진료실에 들어오고 나갈 때도 늘 인사를 하는 사람이고."

시니컬함은 짙어지고, 인간관계에 대한 피곤함은 옅어졌다.

인간관계에서 100을 줬으면 100을 받는 것이라고 배워왔다. 그래서 나는 공부나 악기 등 뭔가를 배우는 데에 천착했는지도 모른다. 익히고 연습하고 연마할수록 결과가 점점 좋아지는 게 느껴지니까. 스무 살 이후로 계속해서 깨지고 부서지고 치이면서 알았다. 전에도 그랬지만 결과는 늘 노력을 배반했다. 인간관계엔 권선징악도, 인과관계도, 법칙도 없다.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난 꾸준히 가난하고 괴로웠다. 서툴러도 내 진심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모두 내놓아도 나아지는 건 없었다. 


치료가 시작되었을 때, 나는 혼자였다. 내 병을 나 혼자서 버티는 건 상상 이상으로 괴로웠다. 하지만 같이 버텨주기로 한 사람은 떠났으니까. 그 후로 타인을 조금씩 야금야금 의심했다. 나를 더 감췄다. 그 시점 이전에 만났던 사람들과 그 이후에 만났던 사람들이 물과 기름처럼 층을 이뤘다. 시니컬함이 진해질수록,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은 옅어졌다. 그리고 난 덜 피곤해졌다. 따뜻하고 상냥한 감정 마저도 밀어내기 시작한 것 같다, 그 시점부터. 


참 지독하다. 내가 잘한 일을 자랑하는 것, 난 좋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 

남에게 잘 보이려고, 남들의 시선에 어긋나지 않으려고 발버둥 쳐온 지난 20여 년간의 나는 죽었는데. 진짜 나는 어떤 사람인지 당최 알 수 없다.  


"인사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사실 오늘도 그냥... 강아지가 예뻐서 그랬을 뿐이에요."




정신적 왼손잡이. Fin.

※에세이 <정신적 왼손잡이>는, 필자 위잉위잉이 2015년 6월부터 현재까지 모 병원 정신건강의학과로 통원 상담 및 약물 치료를 병행하며 기록한 치료 일지로부터 시작한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정신적 왼손잡이 #모두 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