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303.#18. 인정해줘, 칭찬해줘.
한 달 주기로 이뤄지는 상담으로는 증세를 고치기 어렵다. 무직이던 기간엔 1주일 또는 2주일에 한 번 진료를 받았다. 진전이 얼마나 있는지도, 문제 행동이 얼마나 고쳐졌는지도 알 수 없다. 진료일이 될 때까지 나 자신을 어딘가에 적어놓지 않으면 잊어버린다. 진료 중에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 그럼 다시 제자리걸음 하게 된다.
야근이 많아지고 피곤이 쌓이며, 일지의 길이는 점점 짧아졌다.
#1. 10만 원
2월, 내 속을 한 번 흔들어놓은 건 부서를 옮긴 이후로 받은 첫 번째 월급 명세서였다. 2016년 1월 기준으로 최저임금이 인상되면서 모두 월급이 10만 원 인상 적용되었다. 그런데 지난 9월부터 계약한 -작년분의 월급으로 계약한 나는 인상분이 적용되지 않은 급여를 받은 것이다. 즉 1월에 신규로 입사한 사람보다 더 적게 받은 것이다. 회사에선 전산과 회계, 계약서를 면밀히 검토한 후, 나와 동료의 계약서를 새로 갱신했다. 이번 달에 받지 못한 인상 급여는 다음 달에 함께 주겠다는 재무팀의 약속과, 착오가 생겨 미안하다는 전언까지 받았다. 모두 하루 만에 이뤄졌다. 빠르고 시원하게, 뒤끝 없이. 그렇게 잘 마무리되었다.
1월에 입사한 신규 직원들이 급여를 확인하고 기뻐할 때 아무 말도 못 했다. 4개월을 먼저 일하고 있던 사람이 더 적은 급여를 받았을 거라곤 생각도 못하겠지. 물론 상황은 해결됐다. 돈은 다음 달에 들어올 것이다. 사과도 받았고 행정적인 절차도 모두 마무리했다. 하지만 답답하고 서러워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고작 10만 원인데.
다 해결됐는데 왜.
내 속이 어지간히 좁나보다. 다시 나의 가난을 곱씹는다.
내 임금을 일한 시간으로 나누면, 현 최저시급보다 약 200원에서 300원 정도 많다.
몇 천만 원을 쏟아부어 대학을 졸업한 결과다.
#2. 고작 10만 원인데
급여가 들어오기 직전의 일요일, 발행 사고가 났다. (난 그걸 사고라고 말했다.) 그러나 해결은 할 수 있었다. 이미지에 오타가 있었고, 그건 내 기술과 시간 선에서 할 수 있었다. 다만 유사한 실수를 지난번에 저지른 일이 있었다.
'왜 당신하고 일 할 때마다 이런 잔실수가 많은지 모르겠다. 좀 더 신경 쓰고 꼼꼼히 봐 달라.'
그 말을 들었을 때 든 생각의 순서.
1. 먼저 일하고 있는 나보다 더욱, 실수 없이 착실히 일하고 있는 신규 직원들이 대견했다.
2. 4개월 먼저 일했는데도 일을 못하니, 급여를 못 받아도 난 할 말이 없다.
3. 내가 당장 내일부터 회사에 나가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회사는 굴러갈 수 있다.
4. 실수를 내고 싶어 낸 게 아니니 억울하지만, 죄송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5. 내게만 왜 이런 실수가 생기는지, 신이 날 괴롭히고 있는 게 아닌가?
6. 지금까지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면 뭐하나. 이런 사소한 것에서 두 번 세 번 실수하는데.
월요일 아침, 현관을 나서면서 한 번에 두 봉지의 약을 까서 입에 털어 넣었다. 머리카락을 통째로 누가 잡아 올리는 듯 신경이 곤두섰다. 실수하지 말자, 오늘은. 제발. 약의 힘을 빌어서라도 실수하고 싶지 않았다.
#3. 나의 몸값
201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니면서 수많은 일을 목도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슈부터 시작해 최저임금 문제, 청년 주거빈곤 문제 등. 그건 모두 나와 연결되어 있었다. 각종 험난한 아르바이트와 무급 인턴을 비롯해 각종 부당대우를 겪다 보면, 내 노동력과 내 인적 가치를 제대로 쳐준다는 생각은 가히 갖기 어렵다. 그렇게 허덕이다가 고개를 들면,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이 사회는 청년을 너무나 당연하게 착취한다.
노동의 대가를 무시한다.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는다.
고급 인력의 가치를 후려치려 한다.
선배들이 늘 하는 말-직장이 중요하다는 말은, 그때 받은 월급 또는 연봉으로부터 차츰차츰 올려나간다는 뜻이었다. 어렵다. 대졸자가 되어 사회에 던져진 직후부터, 나는 나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다.
이곳은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거나 개선을 건의하는 일이 자유롭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열심히 헤엄치고 발버둥 치고 있다. 일부러 능동적으로 나서려니 삐끗거리기도 하지만, 더 눈에 띄고 싶어서다. 더 나은 직원으로 보이고 싶어서. 내 능력을 더 펼치면, 뭔가 될 것만 같은 분위기니까.... 그건 사실 미치도록 어렵다. 내가 아무리 날뛰어도 그게 날 승진이나 임금 인상으로 인도해주리란 보장은 없으니까.
그리고 이번 달 명세서를 보고 그런 보장은 '절대' 없다고 확신해버렸다. 그간, 새 부서에 적응하고 신규 직원들을 돕느라(고작 4개월 먼저 일했다는 책임감으로) 쏟아부은 노력과 야근, 정신력, 그 와중에도 소화해냈던 프로젝트들의 값이 '-10만 원'이었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4. 돈과 가치의 시간
졸업 후 첫 계약직에서 나는 카드빚을 진 적이 있다. 백이십만 원가량인데, 그만큼의 돈을 겨우 버는 내겐 큰 빚이었다. 사무실 회비정산을 이상하게 인계받은 탓이었다. 한 시점의 현금가치, 그리고 그와 다른 시점에 모두 금액을 치르는 신용 가치는 분명 다르다. 경제학을 조금이라도 배웠다면 누구나 아는 사실. 내 상사는 그렇지 못했다. 생활비부터 카드값까지 너덜너덜해진 채 사직서를 낸 나에게 상사는 동정하듯 사비로 퇴직금을 마련해 쥐어주었다. 그 돈은 카드값을 갚는 데와 병원비, 약값으로 모두 사라졌다. 그 달은 쌀을 먹지 못했다.
나중에 받은 10만 원.
지금 이 찝찝하고 서러운-인정받지 못한 기분. 소외당한 기분.
더 좋은 직장이라고. 퇴근이 싫을 만큼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던 지난 시간이 서럽게 사라지려 한다.
'대체 지난 4개월간 이 곳에, 위잉위잉이란 사람이 근무했다는 사실은 알아요? 나 이것도 했고 저것도 하고... 이것도 했고... 그 글도 썼어요... 나, 알아요? 내가 지금도 있다는 건, 알고 있어요?'
자취방에 돌아와 맥주를 마셨다. 뿌듯한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눌러썼던 4개월 간의 업무일지를 읽었다. 일의 호흡이 빨라진 와중에, 약도 떨어져 고비를 넘겼던 지난 몇 주를 생각했다. 서러움이 뭉게뭉게 밀려와 목까지 눈물을 마구 밀었다. 울지 않았다.
#5. 언젠가 쓸모가 있겠지.
준다고 하니 됐다. 사과도 받았다. 3월분 월급에, 2월에 받지 못한 10만 원이 추가로 입금되었다. 그러니까 됐다. 그 10만 원을 받으면 나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기분은 좀처럼 나아질 줄 몰랐다. 열심히 해보자고 눈을 빛냈던 날들은 오탈자 하나하나에, 회의 시간 1분 1초마다 팍팍 터져 없어진다.
"회사는 다른 곳이에요. 다른 인간관계죠. 대학교나 가족과는 다른."
"제가 깨달은 바로는, 정 붙여봤자 나만 손해라는 건데요. 그건 내 모든 인간관계 불변의 법칙이에요."
"너무 마음을 많이 주고 있어서일까나..."
"너무 믿었나봐요. 너무 좋아했어요. 연애도 그랬고. 이번엔 사회생활도 그렇고."
"긍정적인 피드백이 많이 부족한가요?"
칭찬이 없을 거라면 인정이라도 받고 싶었을 뿐이다. 물론 여러 가지 데이터 수치가 있지만 난 그것까지 접근할 권한이 없다. 대신 회사에서의 내 가치는 급여가 증명해준다고 생각한다. 제때 정확한 급여를 주는 것. 회사 다니면서 칭찬을 바라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회사에 정 주는 거 아니라고, 회사 동료는 친구가 아니라고. 선배들은 그렇게 말했다.
"글쎄요. 고작 10만 원에 맘 상하고, 일할 의욕도 잃는 건 제가 아무래도 이상한 거죠? 다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데, 내가 너무 다른 걸, 너무 대단히 특별한 걸 바라는 거죠?"
"......."
"아직 내가 많이 모자라 서죠? 내가 너무 나를 과대평가하고 있는 거죠? 난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내가 너무 욕심이 많은 거죠? 난 딱 이만큼의 돈을 받고 일하는 게 마땅한, 딱 이만큼이 내 분수고 능력인 사람인 거죠?"
그녀의 그다음의 대답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입금된 10만 원은 서울교통요금과 한 달치 약값으로 자취를 감췄다.
정신적 왼손잡이. Fin.
※에세이 <정신적 왼손잡이>는, 필자 위잉위잉이 2015년 6월부터 현재까지 모 병원 정신건강의학과로 통원 상담 및 약물 치료를 병행하며 기록한 치료 일지로부터 시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