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523 #26. 몸의 통제
여름이 좀 더 가까워진다. 두려움도 커지고, 마음껏 가벼워지고 싶다는 욕심도 커진다. 음식을 먹어도 즐겁지 않고, 배가 부르면 불쾌하다. 붐비는 곳에서 사람과 몸이 닿는 게 무섭다. 그럴수록 나를 좀 더 작고 가볍게 만들면 유리하다.
#1.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지금으로부터 한 20kg 가까이를 덜어낸 적이 있다. 다시 체중이 돌아온 걸 보면 아마 내 핏속에 '마름'유전자는 없는 모양이다. 당시에 가장 편리했던 건, 아무 옷이나 집어 들고 몸에 대어도 대충 맞아서 옷 가게에서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반평생 이상을 '네 몸에 맞는 옷은 없다'는 말을 듣고 살았으니까. '왜 사람이 옷에 맞춰야 하는 걸까?', '평균이 정말 이 정도일까?'라는 의문은 꽤 어릴 때부터 품어왔다. 의류 회사들이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외모로 사람을 가르는 게 정말 저열한 일임을 깨닫게 된 것도 체중이 한번 널을 뛰고서야 비로소 알게 됐다. 늘 놀림을 받아오던 내가, 놀림의 범위 밖으로 나왔을 때 목도한 풍경은 생경했다. 왜 사람 사이에 덩치나 키로 우위가 발생하는 걸까.
체중이 달라진 해의 명절. 볼품없이 헐렁해진 옷을 입고 갔다. 다들 보기 좋다고 칭찬했다. 옷을 더 사주겠다며 시내로 날 끌고 가기도 했다. 나는 바지 허리가 남아서 흘러내리는 걸 해결할 바지만 한벌 샀다. 나머지는 내가 원해서 산 옷이 아니었다.
두려웠다. 다시 체중이 돌아가버리면, 이런 환영과 미소를 다신 볼 수 없겠지. 혀를 차겠지. 날 동정하고 안타까워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일은 일어났다. 역시 내가 예측하는 불행은 어김이 없다.
#2. 자존감의 이름으로 당신을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앞서서 자주 이야기하지만, 먹고 자는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정상적인 생활 자체가 불가능하다. 20년 가까이를 정말 아무런 의심도, 미숙함도 없이 - 심지어 아주 야무지게 잘하던 일도 어긋난다. 우울함과 무력감 속을 헤엄치는 일은 유사에 파묻히는 것 같아서, 발버둥 칠수록 더 잠겨 들고, 힘을 아무리 끌어내서 용을 써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1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식습관까지 송두리째 흔들렸다.
스물두 살 때 큰 이상이 생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작 그때 정신과를 갔어야 했다!) 처음엔 과식해서 탈이 난 줄만 알았다. 그리고 그건 습관이 되었다. 급기야 음식을 사거나 만들면서부터 ‘이따 토하지 뭐’라는 생각을 시작했다. 극심한 경우엔 제일 안쪽 어금니와 구강 점막부터 위액에 의해 부식된다. 얼굴로 압력이 몰려서 눈 주변의 혈관들이 자극받아 터지거나 상기되기도 한다. 그 상태에 이르기 전에 그치긴 했다. 돌이켜보면 아주 끔찍하다.
원인은 단순히 불량한 음식이 아니라, 주변의 시선이었다. 나의 가치를 무섭도록 깎아내려가는 말. 그리고 그것에 설득당하고 결국 좌절하는 내가 있었다. 나를 사랑한다는 사람들로부터 이런 말을 듣고서도 가만히 있었다니. 어린 나를 만난다면 엉덩이를 걷어차 주고 싶을 만큼 화가 난다.
저기 앞에 가는 저 할머니가 너보다 더 OO 하다.
야 연예인 OOO은 너랑 키도 똑같은데.
이건 장난하는 게 아니고 진지하게 너 생각해서 말하는 건데, 외모도 자기 관리야.
꼭 의지 부족인 애들이 굶어서 빼려고만 하더라.
난 머리숱이 많고 머리 색깔이 예쁘다, 키는 작아도 꿈은 높다, 자기 관리의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고 난 학점이 아주 우수하다, 난 매일 운동을 한다,라고. 조목조목 말하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그런 말을 비치면, 돌아온 답은 하나였다.
그럼 살을 빼 보던가. 네 노력이 부족하니까 안 빠지는 거야.
5년 여 전의 일인데도, 잊을만하면 꿈에도 나오는 목소리다.
#3. 아무도 괜찮지 않다
“아무리 남의 말 안 듣고 ‘마이 웨이’라고 외쳐도, 나를 모욕하는 걸 듣고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을 사람은 없어요. 담대하고 멘탈이 강해도, 면전에서 욕을 들으면 누가 가만히 있겠어요, 성인군자도 아니고. 위잉씨가 충격받았을 건 더 말할 것도 없겠죠.”
살이 빠진다고 해서 영화처럼 내 인생이 180도 달라진 것도 아니었거니와 그다지 기쁘지도 않았다. 다시 체중이 불고 나서 신경질이 솟구치면. ‘신이 내 인생을 존나 불쌍하게 여겨서 잠깐 기쁨을 좀 맛보라고 장난친 것’이란 생각이 들만큼 원망스럽다.
지금도 일러스트를 그릴 땐 가늘고 긴 사람을 그린다. 성별의 구분이 모호한 사람을. 저렇게 되고 싶은 욕망도 조금은 투영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둥둥 떠있거나, 휘날리거나 하는 동세를 좋아한다. 여태껏 가져본 적이 없는 가벼움. 남들의 시선은 다 빼고서 그때의 가벼움이 그립다. 그림으로나마 희망사항을 이루는 것은 아닐까.
#4. 제일 괴로운 건 나야, 그러니까 좀
격한 표현이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기 위해 옷을 갈아입는 순간부터 죽어버리고 싶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쓰는 '죽고 싶다'는 말의 정확한 해석은 '이렇게 살기 싫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렇게 살기 싫은데도 이렇게 살 수밖에 없게 떠밀려서, 다른 방안이 없어 그저 '죽고 싶다'는 말 외엔 할 수가 없다. 표현이 줄어드는 건 분명 위험신호다. 살이 쪄서 꽉 끼는 옷들. 옷을 입고 움직이는 순간마다 구역감이 난다. 내가 내 몸이 싫으면 대체 어떡해야 하나. 작년에 샀던 옷들은 입을 수 없게 됐다. 옷장에 걸려있는 것만으로도 그 옷들은 내게 이렇게 말한다.
'그땐 참 옷 입으면 잘 어울렸는데 말이지, 어쩌다 다시 이렇게 됐니.'
그리고 이 말을 나의 가족들이 내게 한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커다란 칼로 내 몸을 도륙 내는 상상을 한다. 당시 체중이 줄었던 건 체력을 많이 쓰는 일을 하면서 동시에, 빈궁한 사정 탓에 음식을 거의 못 먹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때보단 정상적인 식사를 하지만 사무직이라 움직임이 적고, 주말에도 외출이 줄어 활동량이 없기 때문이다. 즉, 나는 내가 왜 체중이 늘어났는지 알고 있다. 가족에게 '그런 말을 들으면 죽고 싶으니까 그런 말하지 마'라고 대꾸하는 대신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난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알아. 제일 괴로운 사람도 나야. 그러니까 엄마 아빠가 괴로워하지는 말았으면 좋겠어."
(참 잘했어요, 과거의 나야.)
나도 이미 괴로운데, 그런 나를 보고 누군가가 더 괴롭다니! 나의 괴로움은 아무리 작아도 계속 눈덩이처럼 불어서 다시 돌아온다.
#5. 컨트롤 비트 다운 받았습니다
"식이장애가 있었다고 했잖아요. 혹시 부모님이나 특히 어머님이 체중에 관해 민감한가요?"
어머니는 나를 임신했을 때 10kg가 불었던 것 외엔 평생 50-60kg대로 살았다. 키가 165cm니 결코 뚱뚱한 사람은 아니다. 다이어트를 일부러 하셨던 적도 없다.
"제가 갖고 있는 문제 중에서, 제가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건 신체적인 부분뿐이잖아요. 이 마저도 잘 안 되지만요."
"거식증을 비롯한 식사 거부 증상은 어릴 때 부모님으로부터 강제되거나, 그게 아니라면 - 방금 위잉씨가 말한 연유에서 시작돼요. 그 생각이 너무 강하면 좋지 않아요."
"......"
"내 몸을, 내 식사를 내가 컨트롤하겠다는 것."
무슨 말인지 사실 한 번에 이해되지 않았다. 당연히 음식을 모두 조절하며 살고 있지 않나. 물론 난 그게 잘 안 되었던 적이 있지만. 여기서 위험한 건, 내 컨트롤이 닿는 범위를 그것 하나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미 정신도 생활도 엉망인데, 그나마 여기서 내가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은 몸을 변화시키는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
"... 현실적으로 당연하잖아요."
"......"
"누가 날 함부로, 외관으로 쉽게 판단하는 게 싫어요."
난 광대뼈가 크고 높은 편이다. 살이 빠지면 무섭도록 얼굴에 각이 진다. 숏컷이 잘 어울리는 편이다. 단기간이었지만 강한 운동의 결과로 아직도 어깨가 다부지다. 근육이 많고 지방이 적을수록, 타투나 헤나를 새기면 잘 그려지고 오래간다고 한다.
... 어쩌면 조금씩 더욱, 성별이나 성격을 판단하기 모호한 쪽으로 무게추를 옮겨가기 위해서 체중을 줄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6. 걱정과 화를 먹고 살이 찌는 사람
다른 의학과에 내원하겠다고 했다. 대사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궁금해서. 작년 여름에 어지간히 술을 마셔댄 것도 있고, 스트레스를 못 견딜수록 체중이 는다. 변비에 걸린다거나, 식사가 불규칙해진다거나 잠을 제대로 못 자거나 하는 것들의 축적이다. 나는 걱정과 화를 먹고 살이 찌는 사람이라는 억울함에 목이 메어온다.
"만약 그 의과에서, 전에 먹던 약처럼 강한 정제를 준다고 하면 잠시 보류하세요. 대사 관련 약이면 모를까, 신경 용제는 더 먹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진료 기록을 서로 볼 수는 없지만, 어떤 약을 처방했는지는 볼 수 있으니까. 다음 진료 때 제가 검토해볼게요."
"네."
업무 중 휴대전화가 가볍게 진동했다. 다가오는 토요일에 내원하라는, 다른 의과의 안내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녀는 주말엔 진료를 하지 않는다.
정신적 왼손잡이. Fin.
※에세이 <정신적 왼손잡이>는, 필자 위잉위잉이 2015년 6월부터 현재까지 모 병원 정신건강의학과로 통원 상담 및 약물 치료를 병행하며 기록한 치료 일지로부터 시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