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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잉위잉 May 23. 2016

정신적 왼손잡이 #25.이해할 수 있습니까

20160515. 이해할 수 있습니까


#1. 진짜 큰일이라니까.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다. 어떤 것이 먼저 영향을 주는지는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같은 질문이라고 말한 적 있다.(#17. 유리멘탈) 치료를 처음 시작할 때는 인터넷이나 백과사전에서 우울증에 관한 항목을 읽다 보면 '이거 정말 나잖아?'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지금은 다시 읽어보면 '음, 그렇지.'라고 생각이 든다. 출처가 신빙성이 없어 보일지 몰라도, 꽤 마음에 푹푹 꽂히는 문장으로 서술되어 있어서 종종 읽는다.


-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는 별명이 있으나 이는 감기처럼 쉽게 걸릴 수 있다는 뜻일 뿐이다.


- 우울증은 체인 리액션 (chain reaction)의 마지막이다. 즉, 걸리기 전에 모든 것이 부서진다. 잠을 제대로 못 자거나, 아니면 너무 자거나, 너무 먹거나, 안 먹거나, 너무 움직이거나, 안 움직이거나 등등 건강한 패턴들이 다 부서진다.

- 게다가 우울증 환자라도 운동을 하거나 다른 취미생활을 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운동이나 취미생활 정도로 고쳐질 리 만무하다. 그래서 우울증이 병인 것이다.


- 한국의 경우 대부분 그냥 성격이나 주변 상황의 문제로 치부한다. 주변인들도 '너만 힘든 것도 아닌데 왜 이리 정신력이 약하냐', '시간이 지나면 다 나아질 거다', '네가 나약하고 소심하니까 그렇게 빌빌대는 거다' 등의 차가운 대응을 하면서 무시하는 일이 잦다 보니 속으로 썩히며 곪아가는 일이 많다.


 출처: 나무 위키 [우울증]

너 도대체 왜 이러는데?’라며 매일 밤 내 멱살을 붙잡고 잠든 지가 2년 째.

우울증이란 건 CT를 찍는다고 해서 눈에 띄는 특징이 나오지도 않는다. 치료를 시작하기 직전에 피검사를 하긴 했다. 그건 당시 복용 중이던 약물 문제를 검토하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B형 간염 항체가 없고, 성호르몬 수치가 비정상이며, 비타민 결핍이 있다는 것 정도를 알게 됐다. 이 사람이 이 약물을 먹어도 될지 말지를 검토하는 정도랄까. 예를 들면 '엘카르니틴'은 건강보조제로도 출시되어 있는 친숙한 단백질이다. 대사를 증진시켜주는 기능을 한다. 근데 의료 목적의 엘카르니틴은 부정맥 치료 등 혈관질환에 이용한다.


내가 '검진'이라는 말을 쓰는 건 주변의 반응 때문이다. '상담치료' 또는 '상담'이라고 하면 무엇이 대한 건지 꼭 묻게 되니까. 보통 '검진'이라고 하면 그 사람이 굳이 어디가 아픈지 캐묻는 일은 잘 없다. 사실 엄밀하게 우울증은 질환이다. 몇몇 정신과 치료제들은 도파민과 아드레날린과 긴밀한 관련이 있어서 '항정신성 의약품', '마약류'로 분류된 것도 있다. 그만큼 스트레스에 극도로 취약해지는 병이다. 땅콩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땅콩 껍질만 있어도 재채기를 하고 심하면 쇼크사하는 것처럼, 우울증도 그렇다. 보통 우울증의 끝은 자살이다.


슬픈 건, 땅콩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땅콩 껍질을 보고 '난 땅콩 알레르기가 있으니까 내게 땅콩 주지 마!'라고 말하는 것과, 우울증이 있는 사람이 '난 우울증이 있으니까 내게 스트레스 주지 마!'라는 말의 어감이 너무 다르다는 거다.



#2. 낙인


인정하는 데엔 시간이 많이 걸린다. 지금도 환멸감에 빠질 때가 종종 있다. 사람들이 우울증이라는 질환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환자를 인식하고 배려해준다면 정말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 역시도 너무 오래 들어왔던 것이다.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들을.


내가 그런 배려와 인식을 원하면, 난 내가 '정신병 환자'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내 안에 내재된 편견을 내가 깨야만 한다. 내 안의 편견을 내치는 것도 힘든데, 사회적 편견은... 더 설명하기도 지친다.

사실 전자의 변화도 꿈처럼 요원하기 때문에, 치료를 한지 1년이 넘어가도 현상 유지만 겨우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향적인 사람이란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내향성을 긍정하는 트렌드가 부상하기 전부터 그랬다. 인간은 다중적인 존재라는 사실은 겪고 배워서 알고 있으니까.


낙인이론. 여전히 '정신병자'라는 말은 욕이다.


'정신적 왼손잡이'라는 워딩을 써도 좋은지 고민이 될 때가 있다. 나는 신체는 오른손잡이지만, 정신은 '조금' 소수라는 의미-그렇다고 아주 희귀하고 각별할 것 없는 소수라는 의미에서 쓴 말이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은 왼손잡이만큼이나 많을 수도 있다.(#1. 프롤로그) 다만 왼손잡이는 질환이 아니다. 좀 섬세하고 예민한 사람. 그 정도만 하려고 했지만 내 상태는 그렇게 되질 않고 있다. 특히 신체 건강이 최근 들어 더 망가지면서, '질환'이라는 점을 너무 명백하게 실감하고 있어서다.





#3. 날 이해할 수 있습니까


   팀 회식이 있었다. 요 근래에 가장 재미없었던 회식이었다. 회식을 강요하는 문화는 없기 때문에 언제든 빠져나와 집에 가도 좋았다. 그래서 3차는 가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

   2차 회식 자리에서 독서 이야길 했다. 그런 얘기가 나왔다. '내가 OO시인을 좋아해서 그 시를 즐겨 읽었는데, 나중에 문학회 선배들에게 얘기하니 다들 놀라더라.'라고 했다. 난 시집을 읽지 않아서 그 시인도, 그 사람의 시도 모른다.


"그 시인, 정신병자라고. 이상한 시라고 읽지 말라고 하더라고."


거기서 1차로 한번 띵. 술잔을 한번 꺾었다. 그러자 누군가 반문했다.


"그럴수록 더 읽어야지. 정신세계가 일반 인하고 다르다는 뜻이잖아. 그 시인은 일반인이 절대로 경험할 수 없는 세계를 시로 쓰고 있는 거니까. 오히려 정신병자인 시인이 더 대단한 거잖아."


여기서 2차로 한번 더 띵. 술잔은 비었다. 이만하고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지금까지 썼던 원고들이 한번 확 지나갔다. 그리고 입 끝까지 올라왔던 말들. 술김인 척 말할까 하다가, 그때 나를 제외한 모두가 취해있었기 때문에 그냥 말을 삼켰다.


만약 당신의 동료가 정신병 환자라면, 그런 의미에서 존중할 수 있습니까?



 갓 입사했을 무렵, 약물을 복용 중이라는 이유로 회사 직원 보험이 거절됐다. 정신과라서 그런 건 아니었다. 다리를 다쳐 입원한 사람의 보험 가입이 되지 않는 이유와 같다.


 지극히 평범하고 재기 발랄한 삶을 이야기하는 동료들을 먼발치에서 보다가 마지막 술잔을 부딪히고 헤어졌다. 사랑과 여행, 음식과 패션,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웹툰과 가수 이야기를 하며 즐거워하는 그들이 편안해 보였다. 내 스케줄러에는 다른 회사들의 공채 일정과 이직조건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회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정신적 왼손잡이. Fin.

※에세이 <정신적 왼손잡이>는, 필자 위잉위잉이 2015년 6월부터 현재까지 모 병원 정신건강의학과로 통원 상담 및 약물 치료를 병행하며 기록한 치료 일지로부터 시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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