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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잉위잉 May 20. 2016

정신적 왼손잡이 #24.망상

20160509. #24. 망상


#1. 역지사지


 부서지기 시작한 시점부터 나는 필사적으로 연기했다. 멀쩡하고 상식적인 사람을.(#4. 요괴 이야기) 잘 되지는 않는다. 기분이 나쁜 건 숨길 수 없다. 거짓말도 다 들통나버릴만큼 싱거운 사람이다. 남들은 휘파람을 불며 보내는 시간을, 나는 애를 쓰고 버티면서 보낸다. 예를 들면 단순한 식사 조차도 이렇다.


입에 숟가락을 밀어 넣는 행동이 너무나 아찔하게 느껴진다. 밥을 뜬다. 쇠숟가락과 밥을 입에 밀어 넣는다. 혀와 윗니로 밥을 붙잡고, 숟가락만을 손가락으로 당겨 꺼낸다. 숟가락을 내려놓으면서 밥을 씹는다. 그다음엔 젓가락을 들어야 한다. 나는 젓가락질을 능숙하게 잘 하는 편이다. 하지만 너무 쇠젓가락이 가늘면 가끔 삐끗거린다. 반찬을 집어야지. 지금은 조금 짭짤한 반찬이 좋겠다. 반찬을 집어 입에 넣는다. 쇠젓가락 끝이 입 안에 잠깐 스친다. 입 안으로 드나드는 숟가락과 젓가락의 차가움, 단단한 금속성을 느끼면서. 동시에 밥알을 흘리거나 식사 예절에 어긋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밥과 국을 뜨고. 그 결과 난 밥 먹는 속도가 굉장히 느리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1시간의 식사시간도 촉박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시간이 넉넉지 않다면 대충 때우거나 굶는 게 낫다. 그렇지 않으면 탈이 난다. 음식도 체하지만, 저런 감각들이 마구 들어와 목이 메어버린다. 치료 이후로 입맛까지 왔다 갔다 하는 바람에, 사람을 만나 밥을 먹는 일도 녹록지 않다. 내 상황을 모두 설명하기 번거롭기 때문에, 식사 약속을 제안받으면 되도록 커피 한 잔 하는 약속으로 협의한다. 


만약 내가 몹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저런 까다로운 상황이라면 난 어떻게 반응할까? 그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을까? '뭐, 저런 별스러운 사람이 다 있어?'라고 대꾸할 지도 모를 일이다. 밥이 아니라 다른 부분-그러니까 '아, 저도 그래요!'라고 반응할 수 없는 지점이라면 말이다. 



#2.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고등학생 때는 은근한 집단 따돌림을(#03. 그때 왜 그랬어), 중학생 때는 기악 합주부 선배들로부터의 기합을 받은 기억이 있다. (이유는 '선배들보다 연주를 잘 해서'. 선배의 학년에 내 친형제가 재학 중이었는데, 그걸 '백'삼아서 나댄다는 구실이 따라붙었다. 정작 내 친형제는 악기를 하나도 다룰 줄 모르고 그들과 연관이 하나도 없었다.)도 가지 경험은 내 인간 개념을 여러모로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놨다. 성인이 되어 아르바이트와 각종 인턴을 전전할 땐 온갖 부당대우에 시달렸다. 


'저런 건 하지 말아야지. 저런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난 다른 사람에게 저러지 말아야지.'


다짐은 네거티브 리스트의 형태로 차곡차곡 쌓였다. 생전 하지 못하던 일을 어느 날 반짝 해내는 것보다, 할 수도 있는 것들 중에 '웬만하면 하지 않으면 좋겠다'싶은 것들을 차단하는 것이 더 쉽다. 요즘 들어 그 차단 기능이 조금 약해지고 있는 것 같다. 


내 나이나 지위를 내세워 남을 억누르고 싶다. 남이 나를 얕보면 얕본 것 이상으로 복수해주고 싶다. 윗사람이라 해도 내게 부당한 대우를 한다면 대들고 싶다. 시시콜콜한 이유로 내 말 대로 따라주지 않으면 폭언으로라도 내 요구를 관철시키고 싶다. 그 사람은 농담으로 한 말이어도 내 기분에 거슬리면 시비를 걸어서 무안을 주고 싶다. 

그림을 다시 그리게 된 것도 <정신적 왼손잡이>덕분이지만, 스케치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 이 충동을 참느라 하루 종일 머리가 아팠다. 나중엔 몸살이 난 것처럼 온몸이 쑤셨다.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온 몸을 뒤틀고 있었다. 바람도 쐬고 스트레칭도 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괜찮냐고 주변에서 물었다. 거기다 대고-


 X발, 하나도 안 괜찮아. 다 너 때문이니까 나한테서 신경 꺼.


-라고 대꾸할 뻔했다. 입을 틀어막았다.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자리에서 일어날 힘이 없어서 1시간 정도 잔업을 더 하다가 퇴근했다. 


  집에 돌아와 크게 한 숨을 쉬었다. 내가 나를 찢고 밖으로 튀어나가 버릴 것 같은 날이었다. 내가 쓰고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설명할만한 말이 달리 없다. 난 착한 사람은 못 되어도, 최소한 남에게 그런 부당한 짓을 하지 않기로 다짐한 사람이잖아. 대체 왜 그러는 거야. 나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왜? 이때까지 호구같이 살았는데, 이젠 좀 맘대로 살면 안 돼?"


소름이 돋아서, 잡았던 멱살을 내려놨다. 저녁 약을 삼키고 침대에 누웠다. 내 숨소리를 듣기 위해 청각을 곤두세웠다. 서늘한 바람이 두 발목 어귀를 휘감는 걸 마지막으로 느끼고 잠들었다. 전에도 그랬지만, 내가 남에게 하는 말은 나에게 하는 말이나 똑같다. 머릿속으론 수십번 수백번 분노를 터뜨려도, 실제로는 남에게 손찌검도, 해코지도 한 적 없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정말 죽이고 싶어하는 건, 나를 괴로움으로 몰아넣은 여러 타인이나 사회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예전 같지 않은 자신을, 타인의 사랑마저도 쳐내는 자신을, 사회의 속도와 단 한 발자국 맞추는 것도 괴로운 자신을 끝없이 원망하며 산다. 내 안의 나는 나도 알 수 없다. 그런 내가 혼란스럽고 버거워서 제발 그러지 말라고 내 목을 조르고 칼을 들이미는 것이다. 극심한 우울증으로 자살할 의욕도 없이 살다가, 약간 쾌차하자 죽을 용기가 생겨 자살하는 사람도 있다. 



#3. 다 거짓말이야


그 누구의 말도 온전히 믿을 수 없다는 건 소름 끼치는 일이다. 그 말 뒤에 다른 뭔가가 더 있을 거라는 불안은 자꾸만 부풀어 일상을 지배했다. 사람들은 내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 나를 속이고 있다. 아무도 내게 진심을 보여주지 않는다. 즉 아무도 믿을 수 없다. 


아마도 이건 '내가 남을 잘 믿지 않기 때문에', 남도 나를 잘 믿지 않을 거라고 넘겨짚는 것에서 성립하는 태제다. 조금씩 이건 당연해지고 있다. 믿음을 주지 않는데, 받을 수 있을 리도 없다. 믿음을 주면 믿음을 받을 테고. 그런데 난 후자에 대한 기대도 별로 없다. 즉, 믿음을 주든 안 주든, 타인은 날 별로 믿지 않는다. 즉 나도 타인을 열심히 믿을 이유가 없다.

꾸준한 삽질(*볼펜이다). 카페인으로 정신을 휘어잡아 일에다 매다꽂아 놓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다.

이렇게 살아선, 세상만사가 다 피곤해진다. 특히 타인이 호의를 베풀 때 제일 피곤하다. 잘 지내는지, 밥은 잘 챙겨 먹었는지, 아프다면 어디가 아픈지 걱정해주는 모든 말을, 내가 믿지 않는다면? 호의를 거절당하면 기분이 나쁘잖아? 나는 지나치게 나를 방어한 나머지 타인을 기분 나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겉으로는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속으로는 '내가 밥을 먹던 말든 무슨 상관이야. 지금 날 동정해?'라고 의심해버린다.



#4. 피해망상


"그런 것들이 가득 차서 터져버릴 것 같았어요."


2월쯤부터 그녀와 대화하는 중에도 시선을 잘 마주치지 못하고 있다. 그녀는 말없이 차트에 뭔가를 계속 적는다.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피로해지는 것은 이미 고질병이 됐고, 회사 업무량은 계속 늘어나고 내가 마음을 닫으면서 더욱 골치 아파졌다. 


"나랑 안 맞는 사람과 애써 어울릴 필요 없잖아요. 그런 걸 강제하는 분위기도 아니고."


그렇다. 식사도 맘대로 먹고, 먹기 싫으면 걸러도 된다. 요즘엔 내가 같이 식사하지 않는 걸, 팀원들이 더 좋아하는 눈치라는 생각도 든다. 나도 내가 먹을 만큼 먹고 자리에서 여유롭게 쉬는 것이 더 좋으니까, 서로 좋은 것 아닌가.


"그래도 끝을 나쁘게 마무리하진 말아요. 사회생활이라는 게, 일의 관계는 굉장히 좁아요. 또 어떻게 마주칠지 모르는 사람들이니까. 마무리를 할 땐 '좋게'까진 어렵더라도 무난하게 끝내는 쪽으로 해요."


음, 이걸 어쩌나. 이미 '슬픔이'라고 불린 시점부터 글러먹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망했어.



#5. 넌 잘하고 있어


이 정도면 비판적인 게 아니라 염세적인 게 아닐까. (내가 그토록 경계해왔던) 시각이 다른 게 아니라 생각이 글러먹은, 삐딱선 탄 거 아닌가. 뭔 말을 해도 되묻고 대들고 싶으면 그건 사회성 실격 아닌가.


"그게 위잉씨의 장점일지도 몰라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말했잖아요? 위잉씨는 '일반적인 사람과는 다른' 톤을 갖고 있다고."


"......"


"다른 사람과 같은 방식으로 살려고, 거기에 물들어 살려고 하면 자기 스스로가 행복할 수 없다는 걸 알잖아요. 물론 어느 정도는 사회의 약속을 지키며 살아야겠지만, 삶의 태도와 지향까지 모두 남에게 맞춰서 살 수 없어요."


그랬지. 그래서 이 에세이의 제목도 '정신적 왼손잡이'라고 지었으니까. 입사할 때 쓴 자기소개서, 그리고 새로 마련하고 있는 자기소개서를 읽어봤다. 정말 속된 말로 '싸가지가 없는' 말투로 썼다. 내가 면접관이고 이런 자기소개서를 받았다면 '이 미친놈은 뭐지?'라는 생각이 들 것 같다. 근데 진짜 날 표현할 수 있는 문장과 말이 이것밖에 없잖아.


"비판적인 게 위잉씨의 장점일 수도 있다고, 그렇게 전 생각해요."


"...... 버틸 수가 없으면 어떡하죠."


약은 2주 치만 처방받았다. 2주 뒤, 한번 더 상담을 하기로 했다. 약은 변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약과 함께 내가 일상의 리듬을 맞춰가는 것이다. 줄넘기를 하듯, 좋은 타이밍에 뛰어야 줄이 발목에 걸리지 않는 것처럼. 약은 계속 돌아가는 줄넘기 줄이다. 그리고 나는 시도 때도 없이 그것에 걸려 발목에 채찍 자국이 수두룩하다. 



어느 날 저녁, 고등학교 친구 Y가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왔다. 나와 비슷한 연유로 저녁에 수면유도제를 간간히 먹고 있는, 석사 과정을 마치고 뭘 할지 고민 중인 친구다. 술자리에서 잠시 빠져나와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들어가서 술 마저 먹지 않고 뭐하느냐, 술도 좋아하는 애가.


- 너, 단체 메신저 방에 말한 거 봤어.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 7명이 모인 방이 있다.)


아? 그거, 그냥 화나서 충동적으로 쓴 거야. 짜증 나서. 너무 신경 쓰지 마, 나 항상 이러잖아.


- 너 충분히 대단하고 능력 있거든? 만약 네가 지금 쓸모없다고 느낀다면, 지금 네가 있는 곳이 네 능력을 다 이끌어주지 못하는 거야.


아무래도 난 사회성 실격인데, 내가 여기에 못 맞춰가고 있는 거 아닐까.


사람 사는 건 다 쌍방향이야. 네가 회사에 적응하지 못한다고만 생각하지 마. 회사가 너라는 인력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는 거라곤 생각 안 드냐.

 시간을 알려주는 나무. 작년 여름과 비슷하게 푸른 잎이 난 모습이 새삼 무섭다.

뭐, 그냥 내가 앞으로도 미디어 계열에서 일할 수 있을까 싶어. 취향도 감성도 마이너하고, 글도 못 쓰고. 시키는 일도 맨날 실수하는데... 이쯤 되면 그냥 내 안엔 누가 잡아 끌어낼 능력도 없는 게 아닐까.


- 넌 능력 있고, 착하고, 어디 가서 뭐라도 할 놈이야.


...... 내가 착해보이냐? 나 오늘 머릿속으로 사람 한 백 명 죽였다.  


- 진짜 사람 백 명을 죽인 놈이 나쁜 놈이지. 네가 너무 착해서 남 생각을 너무 많이 하니까, 네가 힘든 거야. 그렇게 따지면 나도 오늘 한 이백 명 머릿속으로 죽였다.


그래서 뭐? 나 아주 성격 꼬여서 큰일 났어. 별명이 '슬픔이'라니까. 망했어.


- 넌 지금도 잘 해.


뭔 소리야, 아주 사회성 패망이라니까.


- 아니야. 너 지금도 잘 살고 있고, 잘 하고, 착하고, 능력 있고, 대단하다고.


너 술 취했냐.


- 아니, 아직 한 잔도 안 마셨어. 그냥 닥치고 고맙다고나 말해.


...... 어, 칭찬 고맙다.


-나 술 마시러 간다. 다음에 또 전화할게. 



전화는 끊겼다. 침대에 반쯤 널브러져서 전화를 받았는데, 그 자세로 한 동안 멈춰있었다.


정신적 왼손잡이. Fin.

※에세이 <정신적 왼손잡이>는, 필자 위잉위잉이 2015년 6월부터 현재까지 모 병원 정신건강의학과로 통원 상담 및 약물 치료를 병행하며 기록한 치료 일지로부터 시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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