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술의 매력을 깨달은 지는 꽤 오래됐다. 기원전 9000년경, 고대 문명의 발상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맥주를 제조해 마셨고, 고대 그리스인들은 와인을 대량 생산했다.
서기 8세기경 '제버'라고 알려진 아랍인이 증류주(도수가 높은 술)를 발명했다. 이전까지는 도수가 낮은 양조주(발효주)가 대부분이었다.
증류주 발명은 술의 대중화를 부추겼다. 소량에도 '만취'가 가능해지자, 인간은 근심과 걱정을 술에 자주 의탁했다. 이는 잘못된 믿음으로 이어졌다. 중세 유럽인들은 술을 "불쾌감을 깨끗이 제거하고 마음을 소생시키는 물질"로 생각했다. 근대에도 술은 "불안을 경감하는 효과가 있다"고 인식됐다.
현대 의학계는 술을 "적당히 마시면 괜찮다"고 본다. 소량의 음주는 심혈관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 '적당히 마시기'가 쉽지 않다. 한 잔은 두 잔으로, 한 병은 두 병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시절이 신산해 술을 '현실의 탈출구'처럼 여기는 사람이 늘고 있다. 잦은 음주는 분명 독이다. 하지만 문득, 아주 강렬하게 '혼술(혼자 술 마시기)'이 당길 때가 있다. 그런 상황 11가지를 소개한다.
"시간이 약"이라는 주변의 응원도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 이럴 땐, 따뜻한 위로 보다 차갑고 독한 술 한 잔이 간절하다.
18세기 프랑스 작가 볼테르(Voltaire·1694~1778)는 "사람은 할 일이 없을 때 욕을 한다"는 명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가 틀렸다. 사람은 할 일이 없을 때 '혼술'을 한다.
모든 풍경이 낯선 타지에서 축이는 술 한 잔은 확실히 낭만적이다.
어둠을 비집고 깨어난 공간에는, 나를 뺀 모든 것이 잠들어 있다. 쓸쓸함에 술 한 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반드시 허름해야 한다. '시간의 흔적'이 깃들어 있어야 술맛과 운치를 함께 느낄 수 있다.
"드디어 끝났다"는 해방감, "나쁘지 않았다"는 성취감. 나 혼자만 두고두고 곱씹고 싶다. 거기 술 한 잔까지 더한다면 금상첨화다.
친구·동료가 있는 술자리는 대부분 길어지기 마련이다. 혼자 마시면 그럴 일이 없다.
엄밀히 말하면 '혼술'이 아닌 '홈(Home·집)술'이라고 해야겠다. '홈술'은 집에서 마시는 술을 뜻한다.
낮이든 밤이든 상관없다. 근무나 강의가 취소돼 시간이 확 뜰 때, '술 생각'도 와락 찾아든다.
극장에서는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술. '내 집'에서는 맘껏 즐겨도 된다.
어찌나 외롭고 측은하게 마시는지. 나도 모르게 젖어든 '술 생각'에 입맛을 다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