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다음 주 예언

by 지서원


신 선생과의 인터뷰는 우리가 퇴근을 한 후 이뤄졌습니다. 우리는 평소에도 자주 가는 술집에 걸터 앉았습니다. 노상. 노상 테이블입니다. 5월의 바람은 모두가 사랑하는 온도를 품고 있습니다. 서늘하지도 더움에 버겁지도 않은 목요일 밤과 닮은 청하를 한 잔씩 기울입니다. 신 선생과 나는 같은 공간에서 n년 째 함께 일하는 팀원 사이입니다. 우스갯소리나 내면의 이야기를 하루에도 몇 겹씩 쌓아가는 동료입니다. 당연하다고만 생각해온 그와의 대화가 "인터뷰"라는 명목하에 조금은 어색해지려 합니다만, 작게 찰랑이는 술잔과 주변의 소음 그리고 초 여름의 공기가 분위기를 살살 개어줍니다. 신 선생은 고등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언어를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좋은 성적을 거둔 아이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학생들의 이야기를 진중하게 듣고 그것을 컨텐츠화 하는 과정입니다. 청자로서의 역할을 수행 중이죠. 오늘은 내가 그의 청자입니다. 신 선생이 말했습니다. ‘요즘 나는 내 이야기를 할 기회가 없습니다. 내 얘기를 할 기회가 생겨서 행복합니다.’ 내가 말했습니다. ‘당신을 힐링 시키기 위한 자리입니다.’ 그리고 나는 대화 카드를 꺼냈습니다. ‘서로의 얼굴 속에서 단서를 찾아 상대의 다음 주 미래를 축복 해줍시다.’ 신 선생이 말했습니다. ‘당신의 얼굴에선 당신이 다음 주 받을 축복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축복을 내리기엔 섣부릅니다. 하지만 시각은 나의 것이니까 내 눈 앞의 당신의 얼굴은 확실히 보입니다. 당신의 얼굴을 유심히 지켜보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아, 신 선생. 이 사람은 느끼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인상을 살짝 쓰며 ‘그 멘트 너무 싫다’ 라고 말했지만 결국 절반 정도 웃으며 청하 한 잔을 들이켰습니다. 우리는 가게 앞 바깥 자리에 앉아있습니다. 내부에서 술자리를 갖던 대학생들이 우르르 나와서 담배를 피우며 수다를 떱니다. 때문에 우리의 대화는 잠시 멈춰집니다. 주변의 소란이 잠잠해지고 다시 둘만이 남게 되었을 때, 우리는 또 다른 차원으로 가는 문을 여는 듯 자연스레 달칵 혹은 기존의 궤도를 이탈하듯 겅중, 새로운 이야기를 이어나갑니다. 그것은 마치 청하를 마시다가 맑은 국물을 한 숟갈 뜨고 다시 병을 들어 잔을 채우다가 슬그머니 일어나 화장실을 다녀오는 것처럼 하나의 박자인 듯. 가령 서로의 얼굴을 이야기하다가 일 년 전에 퇴사한 옛 동료와의 일화를 떠올린다거나, 그녀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 각자의 이유 같은 대화들. 연락을 하고 싶었던 구간들. ‘편의점에서 파는 과자 봉지에 적힌 의성어를 보니 그녀가 떠올랐어요. 잘 지내고 있냐고 물어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연락하지 않았어요. 마음이 먹어지지 않아서.’ 어쩌면 그녀는 우리에게 약간의 상처를 주고 갔나 보지요. 그러다가 신 선생은 내가 쓴 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이상 혹은 이상화의 시에 나오는 화자와 닮았다고 말하고, 이상의 <날개>에 나오는 아스피린과 아달린 그리고 창호지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여타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을 하다가 내일 보자며 헤어졌습니다. 나는 집에 와서 생각했습니다. '서로'의 다음 주를 축복해 주기로 했는데 나만 답변을 받아버렸네. 나는 신 선생에게 메시지를 보냅니다.

‘저도 선생님의 다음 주 예언을 하나 하겠습니다. 종종 잡히는 선생님의 미간 주름을 근거 삼아 당신의 다음 주는 역시나 비옥할 것입니다. 어제와 오늘만큼 다음 주에도 지난 4월처럼 고민하고 고뇌하고 하루 끝엔 결국 후련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매일 입고 다니는 검은 착장들을 말미암아 선생님의 다음 주는 여전히 안정적일 것입니다. 검은 티와 검은 바지는 습관처럼 사명처럼 선생님을 지킬 테고 나를 포함한 우리 동료들 그리고 당신의 철옹성 같은 여러 보호자들이 여전히 그대의 곁을 지키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에요. 잘 자세요.’

메시지를 전송한 후 평소엔 자주 쓰지 않는 스마일 이모티콘을 하나 더 눌렀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몽환 수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