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새벽에 일어나는 일은 쉽지 않다. 사람들은 습관이 되면 몸이 저절로 반응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내게는 ‘일어남’이 아직 습관이 되지 않은 일이다. 오십 년 가까이 몸에 밴 게으름을 떨쳐내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알지만, 이 정도면 조금은 나아질 법도 한데 여전히 어렵다. 아마 아직 더 해야 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새벽 기상 알람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한참을 고민한다. 그냥 일어나면 될 일인데, 그게 늘 쉽지 않다. 결국 다시 눕게 되는 날이 많다. 오늘도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다가 다시 잠이 들었고, 운동 알람이 울리자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그래도 운동 알람에는 반응하는 걸 보면 아직 가능성은 있는 듯해 다행이다.
오늘도 마루와 함께 산책을 나갔다. 이틀 전부터 더위가 심해 에어컨을 켜고 잠들었더니 오히려 피로가 더했다. 자연의 더위를 스스로 이겨내지 못하고 인공의 바람에 몸을 맡긴 탓인지, 오히려 몸이 더 무거웠다. 새벽 공기에도 미세한 열기가 섞여 있었다. 며칠 전 뺨을 스치던 찬바람은 어디로 간 걸까.
마루도 따뜻한 공기가 낯설었는지 평소보다 일찍 집으로 향했다. 결국 나의 산책도 짧게 끝났다. 집에 돌아와 마루의 발을 씻기고 식탁에 앉았다. 급히 나가느라 미뤄두었던 두 권의 책을 펴고 한 페이지씩 읽은 뒤, 필사 노트에 문장을 옮겼다. 오늘 적은 문장은 “하루를 시작하면서 마음부터 챙겨보게.”
오늘 밑줄 그은 문장은 이렇다.
“누군가를 평가하기에 앞서, 자신은 얼마나 완벽한지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타인을 평가할 때는 냉혹하면서, 자신에게는 유난히 관대하다. 요즘 말로 ‘내로남불’이라 불리는 것도 그런 태도일 것이다.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 — 나 역시 자주 하는 말이다.하지만 그 사람의 자리에, 그 상황에 놓인다면 우리는 과연 다르게 행동할 수 있을까. 한 발짝 떨어져 “그건 아니야, 그렇게 하면 안 돼”라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막상 대안을 제시하라 하면 입을 다문다. 지적은 쉽지만, 대안은 어렵다. 아마 그게 인간일 것이다.
타인을 평가하려면 먼저 기준을 세워야 한다. ‘내가 완벽한가’라는 질문보다 ‘그 행동이 올바른가’라는 기준이 더 정당할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지만, 세상에는 여전히 보편적인 ‘올바름’이라는 기준이 존재한다. 나의 기준이 아닌, 그 보편의 기준 위에서 평가할 때 우리는 공정에 가까워질 수 있다.
결국 정의와 공정은 나의 언어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은 그 잣대 속에서 서로를 인정하고 배려할 때 비로소 모나지 않다. 흐르는 세월에 부딪혀 동글동글해진 돌처럼, 나 또한 모난 부분을 깎아내는 연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