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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Jul 11. 2022

어떤 엄마도 당신을 훼손할 수 없다

엄마를 사랑할 수 없는 딸들의 엄마 넘어서기

 대여섯 살 무렵의 나는 소심하고 말이 없는 속을 알 수 없는 아이였다.

유치원 봄소풍날 과자 따먹기 게임에서 나는 과자를 따먹지 못한 유일한 아이가 되었다. 선생님의 출발 호루라기 소리에도 나는 꼼짝할 수가 없었다. 저기 보이는 반환점이 내가 아무리 달려도 도달할 수 없는 신기루 같았다. 고개를 숙인 채 모래밭 위에 얼어붙었고 결국 출발선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반환점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빨간 줄무늬의 동그란 과자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간절히 원했지만 나는 가질 수 없었다. 엄마가 떠나던 날은 기억에도 없는데, 나는 소중한 것을 잡을 수 없고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는 바보가 되어 있었다.

 

 어딘가에 묶여있는 듯한, 뿌연 안갯속에 갇혀 앞을 볼 수 없는, 길을 잃은, 가슴 언저리가 짓눌리는, 갇혀 있는, 혼란스러운, 긴장을 풀 수 없는, 내가 있는데 없는 것 같은, 숨고 싶은, 답답한, 사라지고 싶은, 두려운, 무서운, 혼자 남겨진 듯한,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듯한, 나쁜 일이 생길 것 같은, 멀리 갈 수 없는... 

 어릴 때부터 내 몸에는 이런 느낌들이 항상 빼곡하게 들러붙어 있었다. 어린 시절 겪었던  충격과 상실, 결핍과 충족되지 못한 욕구들이 무의식 속에서 몸을 통해 보내는 신호들이었다. 몸은 무의식의 전령이며 무의식 자체이다. 엄마와 아버지의 불화가 정점으로 치닫고, 생후 8개월 된 엄마의 첫 아이가 죽고, 이 죽음으로 인해 엄마와 아버지 사이의 불신이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내고 있을 때 나는 엄마의 자궁 속에 있었다. 엄마의 기억과 감정들은 고스란히 내 몸에 새겨졌을 것이다. 엄마의 발병과 잦은 가출, 엄마의 격리, 아버지의 방황으로 이어지는 시간 속에 내 고통을 담을 자리는 없었다. 모두 나의 무의식 속으로 밀어 넣었다.  


 고통스러운 몸의 감각들은 차곡차곡 쌓여 병이 되었다. 열두세 살 무렵까지 잦은 병치레를 했고 일 년에 한 번은 음식을 삼키지 못할 정도로 며칠씩 앓아누웠다.  나는 뭔가 잘못되어 있었고 정상적이지 않았다. 지속적으로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몸의 느낌들은 분별과 생각을 지어냈다. '나는 뭔가 이상해. 엄마가 제정신이 아니니 나도 멀쩡할 리가 없지.  내가 어떤 사람이지 알면 누구도 날 좋아하지 않을 거야. 한 발자국만 줄 밖으로 내딛으면 나도 엄마처럼 미치는 거야. 나는 버려졌어.  나는 운이 없어. 나는 초라해. 나는 형편없어. 나는 행복할 수 없어. 나는 미친 여자의 딸이야. ' 모든 것은 엄마 때문이었다. 엄마 때문에 나는 망가지고 부서졌으며 불행했다. 반복되는 생각은 신념이 된다. 나는 엄마처럼 살다 갈 운명이 분명했다. 


  7세 이전의 기억들은 우리의 무의식에 각인되고, 마치 컴퓨터에 저장된 프로그램처럼 평생에 걸쳐 자동 재생된다. 우리가 무의식의 내용을 인식하고 그것들을 온몸으로 느끼고 표현하여 해방시킬 때까지.

융 Carl Gustav Jung은 의식화하지 않은 무의식은 운명이 된다고 말했다. 우리의 현실은 우리 무의식의 내용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다. 나는 수십 년 동안 무의식 속의 기억들을 현실에서 반복 재생하며 살았다. 도망갈 길이 없다고 생각했다. 불행하고 수치스러운 엄마를 둔 딸의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여겼다.   


 10대와 20대, 30대 초반의 시간이 암흑의 터널 속에서 느리게 흘러갔다. 불행과 나약함과 수치심을 감추느라 내 몸은 24시간 긴장되어 있었고 좋은 엄마라는 이름에 집착하느라 내면은 더 고갈되어 갔다. 30대 중반 나의 엄격한 법이자 감옥이었던 아버지의 죽음이 판도라의 상자였던 내 무의식의 뚜껑을 열어젖혔다.

죽음과 광기의 충동이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오기 시작했다. 죽거나 미치는 것 말고는 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길이 없어 보였다. 나는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었고 너덜너덜했으며 절망뿐이었다. 더 이상 살고 싶은 욕구가 남아 있지 않았다. 내가 더 살아야 하는 이유는 한 가지뿐이었다. 나를 버리고 간 엄마처럼 아이들을 두고 떠나버리는 짓만은 하고 싶지 않았다. 같은 고통을 내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줄 수는 없었다.     

 

 엄마처럼 살다 가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해야만 했다. 무기력한 몸을 질질 끌고 처음 찾아간 곳은 성령 기도회였다. 신의 은총이 나의 지푸라기가 되어주기를 바랐다. 5-6명 정도 되는 소그룹 형태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는데 첫날 저녁에 나를 제외한 모든 그룹원이 하느님의 사랑 때문에 행복하다는 고백을 해버리는 바람에 나는 신에게조차 버림받은 존재가 되어 내 발로 그곳을 걸어 나왔다.      

가뭄으로 쩍쩍 갈라진 광야에 혼자 버려진 듯한 시간이 흘러갔고, 나의 절망은 깊어지고 있었다. 어느 날 성당 주보에서 '잃어버린 나를 찾는 여정'이라는 사목 상담사 양성과정의 홍보 문구가 눈에 들어와 박혔다.

'잃어버린 나'라는 말이 내 갈비뼈 안 쪽을 건드렸다. 나는 여전히 고통 속에 갇혀있었지만, 고통받는 나를 바라보고 있던 또 다른 내가 속삭였다. '여기서 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가 보자.' 갑자기 간절하고 절박해졌다. 왜 잃어버렸는지,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어떻게 찾을 수 있는 건지 알아야만 했다. 잃어버린 나를 찾는 긴 여행이 그렇게 우연히 그리고 필연적으로 시작되었다.         

 

 무언가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그것과 분리되기 시작한다. 나는 몸에 새겨진 고통스러운 감각과 감정을 집요하게 따라가서, 그것이 시작된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소환하고, 난생처음 그것들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혹독하고 날카롭고 고통스러운 3년간의 자기 분석과 복기의 시간이 이어졌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기억들을 끌어올리고, 별거 아니라고 회피했던 기억들의 무게와 내용을 다시 헤집었다. 생선을 도마 위에 올려 속이 비치도록 저미듯 내 기억들을 촘촘히 탐색하고 분석하고 내 것이 아닌 것은 버렸다. 무의식의 감옥문을 열고 갇혀있던 감정들을 해방시켜야만 했다. 그림을 그리고 춤을 추고 말을 하고 글을 썼다. 묻어두었던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안전한 곳으로 들어가 감정을 쏟아냈다. 통곡하고 절규하고 몸부림치며 바닥을 굴러다녔다.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해 만들고 키워 온  가짜 나 - 강하고, 정의롭고, 담대하고, 이타적이고, 유능하고, 똑똑한- 도 함께 무너져 내려야만 했다. 수십 년을 쌓아 만든 나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동안 얼굴 반쪽에 마비가 왔다. 먹을 때마다 일그러진 입술 사이로 음식물이 흘러내렸다. 나라고 생각했던 내가 가짜임을 깨달았고, 가짜로 사느라 긴 시간 고통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익숙한 내가 사라지는 두려움 때문에 지금 이대로를 고집하는 질긴 자아를 매일 확인하며 1년 반의 시간이 흘러갔다. 나라고 믿어 온 내가 모조리 불에 타서 재가 되었다. 나는 약하고 비겁하고 이기적이고 무능하고 보잘것없는 사람이어도 상관없는 자유를 얻었다.    

  

  멀어졌던 나의 몸, 외면했던 나의 욕구, 억압했던 나의 감정들과 만나고 알아가고 존중해가면서 옛 것이 다 타버린 잿더미 위에서 새로운 나를 재건해갔다. 여전히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회복의 여정에 확신이 생기면서 1년 후, 2년 후, 10년 후의 내가 기대되기 시작했다. 절망의 구름이 걷히고 있었다. 진정한 나를 회복해 가는 한걸음 한걸음이 나를 가슴 뛰게 했다. 나는 매일 조금씩 자유로워지고 있었다. 마치 살아남기 위해 뒤집어썼던 껍질들을 하나씩 벗는 것과 같았다. 시나브로 벗겨진 껍질 사이로 진짜 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 번도 훼손된 적 없는 본래의 내가 거기에 있었다. 생명력 가득한 나의 빛나는 자아가 언제나 거기에 있었다. 나는 버려진 적도 없고 버릴 수도 없는 존재였다. 훼손할 수도 없고 훼손될 수도 없는 존재였다. 자기 비난이 완전히 사라지고 존재의 수치심과 나를 갉아먹던 죄책감으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리고 나는 원하는 것을 가지기 위해 전력을 다해 뛸 수 있고, 소중한 것을 잡기 위해 온 몸을 던져 물고 늘어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엄마는 내 생각만큼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엄마의 몸을 빌어 태어났지만 엄마로부터 시작된 존재가 아니었다. 엄마가 없었으면 나도 태어나지 않았을 그런 예속된 존재가 아니었다. 나는 누구로부터도 독립되어 있고 누구로부터도 자유로운 존재였다. 어떤 엄마를 가졌든, 어떤 일을 경험했든, 나는 단 한 번도 훼손된 적이 없었다. 나는 언제나 부족함이 없었고, 늘 온전했으며, 본래의 빛을 잃은 적이 없었다. 내가 그러하듯 당신도 그런 존재이다.       

 

  '엄마'라는 이름은 힘이 세다. 엄마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엄마라면 그럴 수 없지, 엄마밖에 없어, 엄마 때문에 살아, 엄마니까 그런 거야... 엄마에게만 허용되고 엄마에게만 요구되는 것들이 세상에는 많다. 엄마라는 이름에 압도되지 말라.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서 엄마를 만들었다.'라는 말 따위는 쓰레기통에 던져 버려라.  엄마가 나를 떠나 돌아오지 않았다고 내가 훼손되는 것이 아니다. 엄마라는 존재로부터 고통을 받았다고 내가 수치스러워지는 것도 아니다. 엄마라는 이름에 속지 말라. 엄마는 엄연한 타인이다.


 당신은 어떤 엄마를 가졌는가. 어떤 엄마이든, 엄마와 당신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든, 그녀의 딸로 사느라 당신이 어떤 일을 겪었든 상관없다. 분명한 것은 당신은 단 한 번도 훼손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세상 누구도, 세상 그 무엇도 당신을 훼손할 수 없다. 당신은 근원적 존재는 언제나 빛나고 온전하며 완전하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는 ‘나’라는 이야기책의 전편(前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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