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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Jul 08. 2022

엄마는 ‘나’라는 이야기책의 전편(前篇)이다

엄마를 사랑할 수 없는 딸들의 엄마 넘어서기

산다는 것이 그런 거다. 그러나 사람이 삶을 이야기할 때에는 모든 것이 변화한다.  -장 폴 사르트르, <구토> 중에서         




   삶이 고통스러울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내면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이기에 지금 여기에서 이 고통을 겪고 있는가.      

 20년 전 나는 미치거나 죽을 것 같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상담실 문을 두드렸었다. 상담사와 처음 마주 앉았을 때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절박한 심정으로 말했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날 이후 누구에게도 해 본 적 없는 이야기들을 상담실에서 털어놓았다. 묻어두었던 기억들을 입 밖으로 꺼내면서 죽을 것 같은 숨 막힘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지만, 내가 왜 지금의 내가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는 없었다. 여전히 앞 페이지가 뜯겨나간 책처럼 애매하고 혼란스러웠다. 엄마를 잘라내는 것은 기억을 잘라내고 과거를 잘라내는 것과 같았다. 과거 없이 현재를 이해할 수 없었고, 기억을 상실한 채로 내가 누구인지를 말할 수는 없었다. 나는 어디로부터 흘러와서 지금 이 고통을 겪고 있는가?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묻어두었던 엄마를 꺼내어 말해야만 했다. 살려고 지워버린 엄마를 살기 위해 소환해야만 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나를 담을 수 있는 이야기가 필요했다. 1인칭의 언어로 지은 집 한 채가 필요했다.  

                

 인간은 물려받은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며 살아가고 이야기로 자신을 이해한다. 나는 엄마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고, 나의 서사에서 잘려나간 엄마의 자리만큼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찢겨나간 책의 앞 페이지를 모으듯 세상에 남아 있는 엄마의 흔적들을 모았다. 행정 복지센터에서 엄마와 관련된 모든 서류들을 떼고, 학교 생활기록부를 모두 신청해서 받고, 성당의 세례 기록과 혼인성사 기록을 발급받고,  병무청을 찾아가 엄마의 군번을 찾아 관련 기록들을 우편으로 받았다. 엄마는 주민등록번호가 없었고 먼지 쌓인 서류 창고에서 담당 직원이 일일이 관련 서류를 찾아내야만 했다.  





  백방으로 뛰어다닌 끝에 난생 처음 외가 식구들을 만나 엄마 이야기를 듣고, 엄마 고향의 노인 회관을 찾아가서 동네 어르신들을 만나고, 엄마가 아버지와 결혼식을 올렸던 성당을 찾아가 그들의 시작을 축복하고, 엄마가 다녔던 학교를 찾아가 엄마가 뛰어놀던 운동장을 걸었다.   





        

 




눈을 마주치는 사람을 돌로 만들어버리는 신화 속의 괴물 메두사에게도 그녀만의 애달픈 이야기가 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아서 괴물이 되어버린 여자, 남아있는 자들의 수치심이 된 여자인 내 엄마에게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가 있었다. 그것은 내가 지금의 나일 수밖에 없는 나의 이야기였다. 나의 앞 페이지인 엄마, 엄마의 앞 페이지인 엄마의 엄마, 그리고 엄마의 엄마의 엄마... 세상에 없는 그들과 나는 그렇게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내 이야기는 나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이어서 만든 거대한 카펫 속의 한 매듭이었다. 형체 없는 유령처럼 떠돌던 엄마는 그녀의 딸이 땀과 눈물로 모아 온 이야기들을 입고 다시 태어났다. 마침내 그녀와 나는 엄마도 아니고 딸도 아닌, 삶을 뜨겁게 사랑한 두 여자로 마주설 수 있었다.  

              

 엄마를 서사적 존재로 이해하게 되었다고 엄마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보다 먼저 살다 간 한 여인의 삶을 이해하고 연민을 가지게 되는 것과 기억에도 없는 엄마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엄마와 나는 서로 잠시 스쳐 지나갔고 서로를 알고 바라보고 스며들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누가 나에게 엄마를 사랑하냐고 물으면 나는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다. 수십년전 엄마의 아기였던 나는 엄마만 바라보고 사랑했을 것이다. 기억에도 없는 아기의 사랑은 오래전에 흘러갔다. 유령처럼 형체없이 떠도는 엄마에게 서사를 입힌 것은 엄마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고통에 허덕이는 나 자신을 구원하는 방법이었다.  

   

나의 서사는 내 존재를 담는 집이었다. 속을 알 수 없는 좁고 어두운 이야기 속에 웅크리고 갇혀있던 나는 마침내 내 손으로 햇빛이 드는 넓은 집을 마련했다. 나는 더 이상 수치심에 몸을 웅크리지 않는다. 맘껏 기지개를 펴고 햇빛 속을 걷고 뛰고 내가 누구인지를 소리쳐 말하고 친구와 함께 비를 맞는다. 나와 엄마는 이제야 한 집에 담겨 서로에게 익숙해져 가고 있다. 나는 엄마의 이야기가 들어있는 나의 서사를 사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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