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원 Jul 08. 2022

엄마를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다

엄마를 사랑할 수 없는 딸들의 엄마 넘어서기

당신이 좋은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참회를 하며 무릎으로 백 마일의 사막을 건너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당신 육체 안의 연약한 동물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할 수 있게 하라.

-메리 올리버, <기러기>-



 아이들은 엄마를 온몸과 마음으로 사랑한다. 엄마에 대한 아이들의 사랑이야말로 조건 없는 사랑이다. 사랑을 주지 않아도, 학대하고 방치해도, 아이들은 엄마를 사랑한다. 엄마의 사랑을 받기 위해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포기하고 엄마가 필요로 하는 역할을 떠안는다. 우리는 모두 엄마가 세상의 전부였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왜 나는 지금 엄마를 사랑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일까? 엄마와 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나는 수십 년 동안 엄마를 증오하며 살았다. ‘그 여자’라고 부르며 엄마를 내 인생에서 지워버리려고 애쓰며 살았다. 돌이켜보면 엄마가 없다는 사실보다 엄마를 증오하고 있다는 것이 더 수치스럽고 비참했다. 엄마를 ‘그 여자’라고 부르며 증오하는 나를 신도 용서하지 않을 터였다. 십계명에서도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못 박지 않았던가. 내가 얼마나 엄마를 증오하고 있는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수치심과 죄책감이 내 온몸을 채우고, 죽거나 미쳐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나를 압도할 때까지.    

 

 엄마를 사랑할 수 없는 백인백색의 서로 다른 이야기가 있겠지만 사랑할 수 없게 된 이유는 모두 같을 것이다. 아이에게 반드시 필요했던 돌봄과  사랑을 엄마가 너무 오랫동안 주지 않았고 아이는 그 고통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엄마에 대한 사랑을 내면의 어둠 속에 묻어버린 것이다. 엄마를 지우려고 애써본 사람은 알 것이다. 엄마는 지우려고 애쓸수록 선명해지는 존재이다. 엄마를 사랑할 수 없는 자신이 수치스럽거나, 죄책감을 느끼거나, 엄마를 내 인생에서 걷어내고 싶거나, 엄마가 지긋지긋하거나, 고단한 엄마의 인생을 보상하기 위해 자신의 소중한 부분을 희생하고 있거나, 엄마의 인정과 사랑을 여전히 기다리고 있거나, 엄마를 보호하기 위해 지나치게 애를 쓰고 있다면 당신 내면에는 아직도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가 살고 있는 것이다.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당신의 엄마가 당신이 원하는 것을 줄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사랑받기를 포기해야 한다. 아이에게 반드시 필요했지만 받지 못했던 것들을 어른인 당신이 주기로 결심해야 한다. 당신 내면의 아이를 당신 스스로 양육하기를 선택해야 한다.  그 아이를 끝 없는 기다림에서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은 당신 뿐이다.

  

 엄마를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다. 엄마를 사랑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엄마를 사랑하는 당신이 선한 것도 아니고 엄마를 사랑하지 못하는 당신이 나쁜 것도 아니다. 지금 엄마에 대한 당신의 감정은 어린 시절 당신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과거의 기록이다. 우리는 모두 한 때 엄마와 한 몸이었고 어쩔 수 없이 엄마로부터 많은 것을 물려받았지만 그것들이 엄마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우리의 목표는 엄마를 용서하는 것도 아니고, 엄마를 사랑하는 것도 아니며, 고단했던 엄마의 인생을 보상하는 역할을 떠안는 것도 아니다. 자궁에서부터 이어져온 엄마와의 관계를 통해 배우고 회복하고 성장하고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엄마의 것은 엄마에게 돌려주고 진정한 내가 되는 것이다.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융(Carl Gustav Jung)은 진정한 자기실현은 한 개인의 ‘개성화’라고 말했다. 진정한 나를 회복하는 것은 타인이나 집단의 심리적 영향으로부터 벗어나서 오직 자신만의 선택으로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고유하고 온전한 한 개인이 되는 것이다. 엄마를 떠나보내야 내가 된다. 떠나보내기 위해 엄마를 만나야만 한다. 누구와도 다른 진정한 내가 되기 위해서는 엄마를 소환하고 탐구해야만 한다. 엄마와의 이야기 속에 잃어버린 내가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나만의 지도이다. 무엇을 잃었는지를 알아야 찾을 수 있고, 상처의 정체를 알아야 치유할 수 있는 법이다. 용기를 낸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고백으로 엄마 넘어서기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요. 당신은 하나뿐인 나의 엄마입니다. 나는 당신을 오랫동안 그리워했음을 고백합니다. 사랑할 수는 없었지만 사무치게 그리웠습니다. 당신에 대한 나의 분노와 원망은 그 길고 깊었던 그리움의 증거입니다. 나는 사랑받지 못한 고통과 사랑받기를 기다리는 고통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합니다. 나는 나를 위해 당신과 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탐구할 것입니다. 더 이상 버려진 아이처럼 당신에게 사랑받기만을 기다리지 않겠습니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고 익혀나갈 것입니다. 당신과 나의 이야기 속에서 내가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억압했으며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샅샅이 찾아나갈 것입니다. 지금부터 나는 자신의 필요를 스스로 채울 수 있는 삶의 태도와 방법을 배우고 익힐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사랑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 밟고 일어서기 그리고 나아가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