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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Jul 13. 2022

그렇게 고통은 대물림 되었다

엄마를 사랑할 수 없는 딸들의 엄마 넘어서기

 

“엄마, 나 어렸을 때... 다른 사람들은 엄마가 좋은 엄마라는데... 나는 못 느꼈어.

그래서 난, 내가 정말 못된 애인 줄 알았어... 엄마는 좋은 엄마인데, 내가 못된 애라서 그걸 못 느끼는 줄 알았어... 나는 그때 엄마가... 미친 거 같았거든...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는 걸 느끼게 된 건, 엄마가 엄마 자신을 사랑하면서부터였어...” 

   

대학 기숙사에 살고 있는 딸의 전화였다. 

첫 아이인 딸은 상처투성이인 엄마의 무의식적 결핍을 채우느라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발달심리학 교재를 보다가 문득 내 생각이 났다고 했다. 나는 전화기를 붙잡고 펑펑 울었다. 

당신의 사랑이 예전처럼 숨 막히지는 않다고, 당신이 걸어온 지난했던 회복의 길이 헛되지는 않다고

딸이 전화기 너머에서 말하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의 결핍을 더 이상 아이들에게 보상받을 필요가 없는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엄마의 무의식에 공명하는 딸의 몸이 그것을 내게 알려 주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낳자마자 헌신적인 모성애가 내 몸에서 넘치게 솟아날 거라고 생각했었다. 

갓 태어난 아기를 안고 기쁨과 행복에 겨워 눈물 흘리는 드라마 속의 엄마가 내 모습이 될 줄 알았다. 

그 막연한 생각은 첫 아이를 품에 안는 순간 산산이 부서졌다. 

내 안에서 솟아오른 것은 넘치는 모성애가 아니라 걷잡을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이었다. 

내 안에 살고 있는 어린 아이가 겁에 질려 울고 있었다.  보살핌을 받아본 적 없는 아이가 낯선 아기를 홀로 보살펴야 하는 책임과 두려움에 온 몸을 떨고 있었다. 도망가고 싶어...

안 돼. 나는 엄마야. 엄마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어.  엄마처럼 되고 싶어?

엄마처럼 될 수는 없었다. 절대 그럴수는 없었다.

이 아이가 나처럼 살지 않도록 좋은 엄마가 되리라. 나는 가지지 못했던 좋은 엄마를 내 아이에게 주리라. 

엄마가 없었던 나의 불행을 물려주지 않으리라.  

나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내면의 아이를 다시 깊고 어두운 곳으로 밀어 넣었다.



         

“나는 내가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나는 내가 바라는 것을 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싫어하는 것을 합니다.” 사도 바울은 나의 고통을 적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그의 고통도 나와 다르지 않았다. 세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나의 사랑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사랑하고 있는데 내 사랑은 아이들의 고통이 되어가고 있었다. 내 사랑은 뭔가 잘못되어 있었다. 나는 간절히 사랑 하고 싶었지만, 사랑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두려움과 사랑은 결코 함께 춤출 수 없었다. 


오랫동안 나는 스스로를 아이들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 찬 엄마라고 믿고 있었다. 내가 가지지 못했던 것을 아이들에게 맹목적으로 퍼붓고 있는 나를 사람들은 헌신적인 엄마라고 불렀고, 나는 그것이 무척 만족스러웠다. 나의 내면에 살고 있는, 불안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를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거짓말쟁이 였다. 


나는 미쳐 있었다. 나의 불행을 보상하기 위해 내 아이들은 행복해야 했고, 내가 간절히 원했지만 나는 살지 못했던 인생을 내 아이들은 살아야만 했다. 내 엄마는 나를 불행하게 했지만 나는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는 좋은 엄마임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다. 그것이 나의 수치심을 위안받는 길이었다. 엄마는 깊은 마음의 병을 얻고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지만, 나는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입증하고 싶었다. 

나는 아이들의 필요가 아니라 나의 왜곡된 결핍을 돌보고 있었다.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했고, 여전히 내 무의식속에 새겨진 부모의 욕구-내가 채우지 못한-를 좇고 있었다. 부모의 결핍을 보상하며 살았던 나의 인생을 내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주고 있었다. 내 인생이 아니라 타인의 인생을 사는 고통을 아이들에게 대물림하고 있었다. 나는 미쳐 있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그 때는 알지 못했다. 

엄마 없이 자라 엄마가 된 나의 가장 큰 두려움 중의 하나는 받은 것이 없어 줄 수 없는 엄마가 되는 것이었다. 좋은 엄마 되기에 집착하여  미친듯이 애를 쓰고 있는 동안은 불안과 두려움의 풍랑이 잦아들었다. 진짜 미친 사람은 엄마가 아니라 나였는지도 모르겠다.

     

내면의 결핍을 스스로 채울 수 없었던 나는 내 결핍의 보상을 아이들에게 떠맡겼고, 내가 그러했듯이 나의 아이들도 엄마의 결핍을 메꾸는 역할을 무의식적으로 떠맡았다. 

내가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를 깨닫고 멈출 때까지, 아이들의 삶은 자신의 행복이 아니라 엄마의 불행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불행한 엄마를 내버려두고 자신의 행복에 집중할 수 있는 아이는 없다. 

나는 그렇게 아이들의 인생을 교묘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헌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아이들을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기 자신의 진정한 욕구도 모르고, 욕구를 채우는 방법도 모르는 나처럼 내 아이들도 자신들의 진짜 욕구로부터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었다.  

    

나는 나의 엄마를 넘어서지 못했다. 누구도 자유롭지 않았고 아무도 행복하지 않았다. 사랑은 의지와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사랑하기 위해 애쓸수록 사랑으로부터 멀어져 갔고, 행복하기 위해 애쓸수록 행복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나는 몸에 배인대로 사랑했고, 그것은 나를 아프게 했던 그 사랑이었다.  내 사랑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모르는 자의 맹목적 사랑은 때로 고통이 된다. 

    

“나에게 원의가 있기는 하지만 그 좋은 것을 하지는 못합니다.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맙니다. 로마서 7:19” 


내가 하고 있는 사랑은 내가 하고 싶은 사랑이 아니었다. 나는 새로운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원했다. 내 사랑이 나를 자유롭게 하는 사랑이기 위해, 내 사랑이 나의 내면의 아이를 양육하는 사랑이기 위해, 내 사랑이 누구보다 나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사랑이기 위해, 내 사랑이 아이들의 돌아올 집이 되기 위해, 나는 사랑을 다시 배워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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