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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Jul 18. 2022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엄마’가 아니다.

엄마를 사랑할 수 없는 딸들의 엄마 넘어서기

한 사람이 타고난 잠재력을 맘껏 발휘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의 기본적인 욕구들이 충분히 충족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아기에게는 아기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엄마가 필요하다. 아기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엄마란, 늘 아기의 곁을 지키면서 아기의 신호를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아기의 고유한 신체적 정서적인 욕구를 정확하고 만족스럽게 채워주는 존재를 말한다. 이런 엄마가 아기의 인생에 중요한 이유는 아기와 엄마의 관계와 같은 일관되고 안정된 일대 일의 방식으로만 아기는 자신과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욕구가 만족스럽게 충족되는 경험이 지속되면 아기는 자신과 외부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형성하고 건강한 자아의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우리의 삶은 외부의 자극에 의해 욕구가 생겨나고, 그 욕구가 충족되거나 좌절되는 과정의 연속이다. 우리의 정체성도 욕구가 좌절되거나 충족된 기억에 의해 형성된다. 자신의 욕구가 수용되고 만족스럽게 채워졌을 때 우리는 사랑받는다고 느끼고, 이런 느낌이 반복적으로 경험되면서 나는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라는 자아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나의 고유한 욕구가 정확하고 섬세하게 채워져서 좋은 느낌이 온몸을 채우는 경험이 반복될수록 우리의 자아는 당당해지고 강인 해지는 것이다.   

   

자신의 욕구가 거부되고 좌절되는 경험이 이어지면 아이는 자신을 가치 없는 존재로 느끼게 된다. 자신의 욕구에 수치심을 느끼게 되고, 채울 수 없는 욕구를 만들어내는 자신의 몸을 신뢰할 수 없게 된다. 흔히 ‘상처받았다’라는 표현도 나의 중요한 욕구가 거부당하고 좌절되었던 기억에 대한 표현이다. 자신을 신뢰할 수 없는 아이는 타인의 욕구와 감정에 의존하여 타인을 중심으로 살아가게 된다. 자신의 욕구나 감정과는 단절된 가짜 자기로 살아가는 것이다.    

  

천둥 번개가 내리치는 칠흑 같은 밤에 믿고 달려가 안길 엄마의 품이 있는 아이는 그 품 안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을 몸에 새기고, 두려움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는 힘을 배운다. 든든한 보호처에서 충분히 보호받은 아이는 세상이 안전하다는 내면의 안정감을 갖게 되고,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을 지켜내고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 매진할 수 있다. 어린 시절 천둥 번개가 내리치는 세상 속에서 엄마 없이 살아가야 했던 나의 공포는 아무도 받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어른들은 모두 각자의 고통에 허덕이고 있었고, 어린 나의 고통에 관심을 두는 이는 없었다. 갈 곳 없는 나의 공포는 혼자라는 깊은 슬픔과 함께 내면 깊숙이 묻혔고, 밖으로 드러내서는 안 되는 수치스럽고 가치 없는 것이 되었다. 나는 두려움으로부터 나를 지켜내는 힘과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늘 온몸이 긴장되어 있었고, 쉴 수 없었으며, 툭하면 도망쳤다. 아이의 욕구와 감정은 안전하게 읽어주고 받아내는 존재가 있어야만 아이와 함께 건강하게 성장한다. 그리하여 그것들은 평생 동안 세상을 살아가는 동력이 되고, 자신을 지키는 힘이 되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보물이 된다.   

   

아기의 곁을 지키면서 아기의 신호를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아기의 고유한 신체적 정서적인 욕구를 정확하고 만족스럽게 채워주는 엄마가 나에게는 없었다. 나 자신과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엄마와의 관계도 없었다. 나는 엄마가 없었던 과거의 상처로부터 해방되고 싶었다. 엄마를 되찾기 위해 무작정 길을 나섰고, 내게 없었던 엄마를 부르고 잃어버린 나를 찾는 길 위에서 15년을 보냈다. 그 길 위에서 결국 내가 찾은 것은 엄마가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힘’이었다. 이미 어른이 된 내 고통의 원인은 ‘엄마 없음’ 이 아니라 ‘나를 사랑할 수 없음’이었다. 나의 고유한 욕구를 알아차리고, 그 욕구를 환영하고,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나의 욕구를 채울 수 있는 힘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엄마가 없었던 과거는 돌이킬 수 없지만 엄마로부터 받지 못한 힘을 스스로 채울 수 있고, 엄마로부터 배워야 했던 것들을 엄마 없이 배우고 익힐 수 있다. 엄마 없는 제2의 탄생이다.


신은 우리 삶의 곳곳에 선물을 숨겨 놓았다. 잃어버린 엄마를 다시 찾을 수는 없지만 ‘나를 사랑하는 힘’은 얼마든지 되찾을 수 있다. 우리는 이미 많은 방법을 알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엄마가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힘이며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식당에 가면 음식 주문을 해야 하는데, 내가 무얼 먹고 싶은지를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엄마가 뭘 먹고 싶은지는 너무 잘 알겠어요...”

미란은 아버지의 폭력과 외도를 견디며 살아온 엄마를 평생 돌보며 지낸 맏딸이다. 그녀의 엄마는 남편의 욕구와 감정을 돌보며 평생을 살았고, 미란은 불행한 엄마를 돌보느라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버리고 살았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엄마의 대리 배우자이자 해결사였다. 어린 미란의 머릿속은 “내가 어떻게 해야 엄마가 좋아할까?”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미란은 엄마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느라 자기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으로 자라났다.  

    

미란은 몇 달 전 엄마와 함께 살던 집에서 독립했다. 언제부터인가 엄마와 사는 것이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워졌다. 마흔이 넘은 나이지만 엄마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엄마를 떠나지 못했었는데 직장을 핑계 삼아 집을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란은 여전히 고통스럽다. 늙은 엄마를 혼자 버려둔 못된 딸이 된 죄책감이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괜찮다. 못된 딸도 착한 딸도 본래 없다. 진정한 나 자신이 되어가는 한 인간이 있을 뿐이다. 우리 삶의 궁극적 목적은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와도 다른 고유한 '나'가 되는 것이다. 

     

착한 딸로 살기를 끝내야 ‘진짜 나로 살기’가 시작된다. 착한 딸의 삶은 내 몸의 욕구와 감정을 버리고 엄마의 욕구와 감정이 중심이 되는 삶이다. 그 삶은 엄마에게 “Yes.”하기 위해 나에게는 “No.”해야 하는 삶이다. 아직 그 삶을 끝내지 못했다 하더라도 착한 딸로만 살아온 자신을 비난하지는 말자. 나의 욕구와 감정조차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 던져졌던 과거가 아직 내 발목을 잡고 있을 뿐이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다만 그 방법을 알지 못하거나 잘못 알고 있을 뿐이다. 살아남기 위해(아이에게 엄마의 사랑은 생존이 걸린 문제이다), 버려지지 않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착한 딸로 살아온 당신의 치열했던 삶에 박수를 보낸다.


착한 딸로 살기를 끝내고 나면 뜻하지 않은 순간에 문득 억울함이 밀려올 수 있다. 내가 나로 살지 못했던 과거의 시간들이 아깝고 억울하고 슬프고 화나는 순간이 닥쳐올 것이다. 괜찮다. 반드시 거쳐야 하는 애도의 시간이다. 온몸을 덮쳐오는 억울함, 슬픔, 분노를 억누르지도 말고 피하지도 말고 온 몸으로 환대하시길 바란다. 하늘을 향해 삿대질하며 울부짖고 땅을 치며 통곡하시길 바란다. 애처롭게 살았던 외로운 그 아이를 위해 온 몸으로 울어주는 단 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무도 그 아이를 위해 울지 않았었다. 당신 조차도.

    

완전한 엄마는 없다. 대부분의 엄마는 자신의 어린 시절의 결핍을 해결하지 못한 채 엄마가 되었다. 우리가 엄마와의 관계에서 결핍과 고통을 굳이 찾아내는 이유는 엄마를 비난하기 위함도 아니고, 내가 피해자임을 주장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더 이상 엄마처럼 나를 대하지 않기 위해서이고, 어린 시절 엄마에게 배워야 했지만 배우지 못한 진짜 사랑을 배우기 위해서이다. 진정한 사랑은 타인이 아닌 나 자신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타인을 사랑할 수 있고 타인의 사랑을 흔쾌히 받을 수도 있다.

      

"신기해요. 엄마 없이는 못 살 줄 알았는데 저 잘 지내요. 가끔 죄책감이 올라오긴 하지만 생각했던 만큼 괴롭지는 않아요. 너무 가볍고 자유로워요." 지금 미란에게 필요한 것은 엄마가 아니다. 이제 그녀는 엄마 없이 씩씩하게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나갈 것이다. 미란은 새로운 만남을 시작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동생들에게 양보하고 엄마를 먼저 챙기느라 자신의 식욕과 미각은 잊고 살아야만 했던 어린 미란에게 따뜻한 목소리로 자꾸만  말을 건넨다. 미란아, 뭐 먹고 싶어? 너는 뭘 좋아해? 괜찮아, 뭐가 먹고 싶은지 몰라도 괜찮아. 네가 뭘 좋아하는지 우리 함께 천천히 찾아보자. 함께 이것도 먹어보고 저것도 먹어보면서 탐험해보자. 네 옆에서 내가 기다려줄게. 너와 함께 할게.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당신을 사랑하는 힘과 당신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구체적인 방법이다. 외면당하고 버려졌던 당신 내면의 아이를 보살피고 성장시키는 것은 당신을 사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 아이를 어둠 속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당신뿐이다. 사랑은 ‘나는 너를 이미 알고 있어. 네가 말하지 않아도 나는 너에 대해 잘 알고 있어. 내가 알아서 해줄게.’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나와 너를 모두 자유롭게 하는 사랑은 ‘나는 너를 몰라. 이제부터 너를 알아가고 싶어. 너에 대해 다 말해 줘. 내가 들어줄게.’에서 시작한다.  

    

아마도 당신은 엄마가 당신의 눈을 바라보며 이렇게 물어주기를 오랫동안 기다렸을 것이다. 사랑하는 내 딸아. 괜찮니? 엄마랑 사는 것은 어떠니? 너는 무엇을 좋아하니? 기분은 어떠니? 지금 네가 원하는 것은 뭐니?

이제 당신은 오지 않는 엄마 기다리기를 끝내고, 당신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와 일대 일의 관계를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당신이 과거의 상처로부터 해방되는 여정의 시작이다. 어른이 된 당신과 당신 내면의 상처받은 아이, 둘 만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관계를 통해 당신 자신과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당신은 너무 오랫동안 그 아이를 내버려 두었고 그 아이와 단절되었었다. 그 아이가 과거의 당신이고, 당신은 그 아이를 알고 있다는 생각은 버려라. 당신은 그 아이를 모른다. 그 아이를 만난 적도 없다. 단 한 번도 그 아이의 욕구와 감정과 생각을 환대하고 들어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당신이 되찾아야 할 당신의 잃어버린 한 부분이다. 그 아이를 당신 인생의 가장 낯설고 소중한 손님으로 맞이하라. 그리고 뜨겁게 사랑하라. 온종일 “우리 엄마는 내가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까?”라고 생각하는 아이처럼.    



*미란은 여러 사례를 참조하여 만들어진 가상의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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