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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Jul 29. 2022

새엄마는 엄마를 이길 수 없다

엄마를 사랑할 수 없는 딸들의 엄마 넘어서기

“새엄마한테 찾아가서 묻고 싶어요. 나한테 왜 그랬냐고, 엄마가 되려고 왔으면 아이를 사랑해줘야 맞는 거잖아요... 생모는 저랑 아무 상관없어요. 본 적도 없어요. 나한테 상처를 준 건 새엄마예요.”  

   

지선의 엄마는 지선이 갓 난 아기였을 때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어른들의 말에 의하면 지선의 엄마는 원래 “제 새끼 버리고 나갈만한” 그런 여자였다. 그녀가 정말 그런 여자였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의문을 갖지 않았다. 그래서 어른들의 생각은 지선의 생각이 되었고 ‘제 새끼 버리고 나갈 만한 그런 여자의 몸에서 나와 버려진 아이’가 지선의 숨겨진 정체성이 되었다.  

    

어린 시절 지선에게는 여러 명의 새엄마가 있었다. 그들은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을 지선과 함께 살다가 결국 모두 떠나갔다. 지선은 자신의 불행이 새엄마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생모'는 지선의 몸에 수치심과 두려움으로 새겨져 있을 뿐 지선과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었고, 그들은 "엄마가 되려고 온" 사람들이니 어린 지선을 엄마처럼 사랑해줘야 마땅한 거였다. 그녀는 엄마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어린 나를 버리고 떠난 얼굴도 모르는 여자보다는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을 함께 살았던 여인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고 덜 수치스러웠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지선은 줄곧 엄마를 ‘생모’라고 불렀고,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생모’는 자신의 삶과 절대 무관하다고 몇 번이나 힘주어 말했다. 내가 그러했듯 지선도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하고 있었다. 지울 수 없는 엄마를 지우기 위해 몰두하며 살았을 그녀의 삶이 짐작이 되었다. 아마도 사는 동안 내내 그랬을 것이다. 엄마가 말없이 떠나고, 아무도 엄마의 이름조차 말해주지 않는 고통 속에서 수 십 년의 삶을 이어오려면 누구나 고통으로부터 도망칠 방법이 필요하다.   

    

20년 전 죽거나 미칠 것 같은 고통 때문에 처음 상담실을 찾았을 때 나는 이렇게 말했었다. “새엄마와 잘 지내고 싶어요.” 나 역시 지선과 다르지 않았다. 어린 나를 버리고 떠난 ‘그 여자’는 나와 무관한 사람이었고, 이십 수년간을 ‘엄마’라고 불렀던 새엄마와의 관계가 내 불행의 원인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불편해져만 가는 새엄마와의 관계를 해결하면 내 고통이 해결될 것 같았다. 새엄마가 엄마의 자리를 떠나고 ‘그 여자’를 엄마로 받아들여야 하는 고통 속으로 던져지는 일은 없어야만 했다. 간절하게 새엄마를 붙잡고 싶었다. 나는 여전히 고통과 진실을 피해 도망치고 있었다. 

    

오래된 몸의 기억과 깊은 내면을 탐색해 갈수록 나는 내가 넘어진 자리가 ‘그 여자’ 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느닷없이 엄마를 잃은 두 살 아이의 뼈저린 고통, 바로 그 자리에 넘어져 일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나의 탯줄은 새엄마가 아닌 ‘그 여자’의 몸과 연결되어 있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새엄마가 대신할 수 없는 엄마의 자리를 인정해야만 했다. 새엄마와의 관계는 엄마와의 관계에서 해소되지 못하고 무의식에 묻혀 있는 나의 오래된 감정을 비춰주는 거울일 뿐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엄마를 '그 여자'라고 부르며 증오하고 외면했었다. '그 여자'란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는, 나와는 무관한 사람이었다. 상처받지 않은 척, 괜찮은 척, 당당한 척 사느라 내 삶은 힘겹고 고달팠다.  '엄마'라는 어둡고 무겁고 긴 그림자를 매달고 살아야 하는 아이의 일상에는 온전한 즐거움도 없었다. 

  

오랫동안 버려져 썩어가는 감정을 독처럼 품은 두 살배기 아이가 수십 년간 내 안에 살고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버려진 아이는 내 의지로 통제할 수 없는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되었다. 아이의 두려움은 세상으로 나가는 내 발목을 붙들었고, 아이의 외로움은 사람들 속에서도 언제나 혼자인 단절의 고통이 되었다.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분노가 치솟았고, 이해할 수 없는 슬픔이 피처럼 몸속을 흘러 다녔다.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던 아이의 고통과 슬픔과 두려움과 분노를 어른인 내가 온몸으로 들어주고 함께 통곡하며 해방시켜주어야만 했다. 그것이 내가 엄마와의 관계를 앞으로의 삶에서 반복 재생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Until you make the unconscious conscious, it will direct your life and you will call it fate."

(출처: Jung, Collected Works 13, 1967, p.265X)


당신이 무의식을 의식화할 때까지, 무의식은 당신 삶의 방향을 결정할 것이고 당신은 그것을 운명이라고 부를 것이다.   -칼 구스타프 융




어둠 속에 갇혀 있는 그 아이를 매일 만나러 갔다. 아이와 나는 만난 적이 없었다. 상처받지 않은 척 살았던 나는 그 아이의 존재를 외면해왔고, 아이는 나의 내면 깊은 곳에 홀로 감금되어 있었다. 엄마가 아이를 버렸던 것처럼 나도 아이를 버렸다. 한 때 나 자신이었던 그 아이를 나로부터 단절시킨 것은 엄마가 아니라 바로 나였다. 낯설어하던 아이가 나를 안전하고 편안하게 느낄 때까지 조심스럽고 따뜻하게, 그리고 규칙적으로 아이를 만나러 갔다. 우리는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고 신뢰를 쌓아갔다. 


건강한 엄마가 아기를 돌보듯 나는 아이의 욕구와 감정에 온전히 귀 기울이며 정성을 다해 돌보았다. 

누구에게도 받아본 적 없는 것을  아이에게 주면서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고 몸에 새겼다. 

시나브로 때가 이르러 아이는 독처럼 품고 있던 묵은 감정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움츠렸던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나와 함께 여한 없이 통곡하고 절규하고 울부짖고 바닥을 뒹굴었다. 

나는 엄마로부터 버림받았습니다. 나도 엄마를 버렸습니다. 나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습니다. 나도 세상을 버렸습니다. 내 몸은 분노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분노가 두렵습니다. 나는 세상에 혼자 남았습니다. 엄마에게조차 버려진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나는 버려도 되는 하찮은 존재입니다. 나는 함께 있어 줄 누군가를 항상 그리워합니다. 그러나 나는 버림받을까 봐 언제나 두렵습니다. 버려질까 봐 먼저 버리고 도망칩니다. 나는 매일매일 사는 것이 두렵습니다. 

온몸을 활짝 열고 수 십 년을 어둠 속에 꽁꽁 묶어두었던 감정들을 남김없이 풀어냈다. 오래된 결박에서 풀려난 아이는 내 손을 잡고 내면의 감옥으로부터 걸어 나왔고, 우리는 난생처음 햇빛 속을 함께 걸었다.  그리고 그날을 이렇게 기록했다. ‘엄마가 떠나던 날, 내 몸은 갈기갈기 찢겨 흩어졌다.’     


이 길은 엄마를 찾는 길도 아니며, 새엄마를 찾는 길도 아니다. 엄마도 필요 없고 새엄마도 필요 없는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길이다. 엄마에게 받지 못해서 새엄마에게 받기 원했던 것들을 내가 나 자신에게 줄 수 있는 힘을 되찾는 길이다. 좋거나 나쁘거나 어떠한 새엄마가 있었다고 해도, 혹은 수많은 새엄마가 있었다고 해도, 나를 낳은 그 여인에서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세상의 전부였던 사람을 잃은 내 몸의 아픈 기억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고통 속을 헤치고 나아가지 않는다면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길은 없다. 인정하고 싶지 않고, 잊고 싶고, 버리고 싶어도 나의 가장 아픈 상처인 엄마로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가장 깊고 두려운 상처를 외면하고 돌아갈 수 있는 회복의 길이란 없다.     


     

*지선은 여러 사례들을 참조하여 만들어진 가상의 인물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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