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착한 딸로 사는 것은 전체가 아니라 부분으로 사는 것이다
돌봐줄 어른이 없었던 나는 여섯 살에 동네 교회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 입학했다. 평일 오전의 빈 예배당에서 일곱 살 아이들을 모아 운영하던 곳이었다. 말이 없고 낯을 가리는 아이였던 나는 한 살 많은 아이들 틈에서 늘 주눅이 들어 있었다. 놀이에도 끼지 못하고, 언제나 아이들로부터 몇 발자국 떨어져 누군가가 나를 불러주기를 말없이 기다리는 소심한 아이였다.
나는 느껴지는 대로 표현하고, 감춰진 것을 궁금해하고, 제 몸의 욕구를 따라 움직이는 어린아이의 에너지를 진즉에 잃어버린 여섯 살 아이였다. 나는 아버지가 낯설고 무서웠다. 그는 지나치게 엄격했고, 나를 늘 판단하려고 했으며, 분노가 많았고, 냉정한 완벽주의자였다.
사실 밖으로 드러난 그의 감정과 행동들은 그의 진짜 감정인 수치심을 숨기려는 거짓 자아였고, 그로 인해 그는 평생 고통받으며 살았다. 아버지는 성실하고 학구적인 사람이었지만 생의 마지막까지 자신의 진짜 감정과 거짓 자아에 대해서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는 평생 그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고통과 혼란의 해결방법을 자신의 내면이 아니라 외부에서 추구하며 살았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낯설고 무서웠던 그와 나 사이의 거리는 끝내 좁힐 수 없었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것은 아버지의 상처를 건드렸고, 엄마에 대해 묻는 것은 그를 고통스럽게 했으며, 자신의 욕구에 진실한 어린아이의 몸짓은 질서와 통제를 중시하는 그의 신념-아이는 어른에게 순종해야 한다. 언제나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 아이는 어른의 통제 속에 있어야 한다 등등-에 위배되었다.
울지 마라. 너의 느낌을 감추어라. 말대꾸하지 마라. 화내지 마라. 가족의 비밀에 대해 모른 척 해라.
아버지의 집에서 내가 지켜야 규칙들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그리움을 숨겼고, 아버지를 고통스럽게 하지 않기 위해 엄마를 지웠으며, 아버지의 인정과 사랑을 받고 싶어서 그의 신념과 규칙을 몸에 새겼다. 아버지를 성가시게 하거나 괴롭히지 않는 착한 딸이 되기 위해 나는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잘라내야만 했다. 나는 아버지가 보기에 완벽해지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버지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아버지의 결핍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아버지 자신 뿐이라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우리는 경험을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엄마는 나를 떠났고 아버지는 나의 욕구와 감정에 관심이 없었다. 나는 소중한 존재가 아닌 것이 분명했다. 나는 버려지고 소홀히 대해도 마땅한 아이인 거다. 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 숨고 싶었고, 세상이 두려워 모든 것이 불안했으며, 하늘 아래 내 편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내 부모의 수치심은 고스란히 나에게 대물림되어 나의 몸과 무의식에 저장되었다.
어린 시절 만들어진 수치심은 내면 깊이 묻혀 있어서 우리가 성인이 되어도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감춰진 수치심은 분노나 통제, 완벽주의나 포기, 충동적인 행동이나 위축, 비난과 실망 등과 같은 다른 감정이나 행동인 것처럼 위장되어 나타난다.
나 역시 피할 길 없이 아버지와 같은 어른으로 자랐다. 내 무의식 속의 수치심을 의식화하여 해방시킬 때까지 나의 내면은 아버지와 똑 닮아 있었다. 수치심을 대물림하는 우리 가계家系에서 나는 수치심의 정체와 수치심을 위장하는 방식을 배우고 알게 된 최초의 세대世代였다. 무의식 속에 묻혀 대물림되던 판도라의 상자와 열쇠는 이제 내 손안에 있다.
유치원에서는 일주일에 두세 번 간식 시간이 있었다. 기차처럼 옆으로 길게 책상을 이어 붙이고, 책상마다 두 명의 아이들이 마주 보고 앉아서 간식을 먹었다. 선생님이 자리에 앉아있는 아이들에게 간식을 나눠주면, 나는 내 몫의 간식을 들고 아이들의 가방이 나란히 걸려 있는 입구 쪽을 향해 걸어갔다. 간식을 먹고 있는 아이들을 등지고 걷는 동안 입 안에 침이 고였다. 먹고 싶어서 몇 번이나 침을 꼴깍 삼켰다. 내 이름이 새겨진 가방을 찾아 간식을 넣어두고 자리로 돌아와 앉은 후에도 한참 동안 간식 생각이 났다.
나는 유치원에서 받은 간식을 먹지 않고 고스란히 집으로 가져가 동생에게 건넸다.
제 몫의 간식을 먹고 싶은 여섯 살 아이의 욕구보다 더 강렬한 갈망이 나를 제어하고 있었다.
간식이 들어있는 가방을 메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왠지 뿌듯하고 당당해서 가슴이 펴지고 몸이 가벼웠다. 늘 내 몸에 붙어 다니던, 나는 뭔가 잘못되었고 나쁜 아이이며 홀로 고립된 것 같은 느낌도 잦아들었다. 아버지에게 제법 쓸모 있고 착한 아이가 된 것 같아서 행복했고, 아버지와 연결된 것 같은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여섯 살 아이가 자신의 욕구를 희생시켜 얻고 싶었던 것은 아버지의 기쁨과 인정과 평화였다. 아버지는 내게 엄마 같은 언니가 되기를 원했다. 나를 희생해서라도 동생의 감정을 돌보고 동생의 필요를 해결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나는 그 역할을 잘 감당해서 아버지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아버지가 편안하면 나의 긴장도 줄어들었다. 내 감정은 아버지의 감정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엄마 없는 아이로 자라 세 아이의 엄마가 되고, 아버지의 몸을 떠나보내고, 내 속에 내가 없음을 발견하고, 잃어버린 나를 찾아 길을 떠나고, 그 길 위에서 잃어버린 내 감정을 되찾고, 그 감정들을 온몸으로 살았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자유를 쟁취할 수 있었다. 그 누구의 감정에도 휘둘리지 않고 타인의 감정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 아플 수는 있지만 소중한 나의 것을 함부로 넘겨주지 않는, 언제나 나로 돌아와서 나만의 감정으로 사는 자유.
우리 모두는 조각나지 않은 온전한 존재로 태어난다. 막힘없는 강물처럼 자연스럽게 흐르는 존재로 이 세상에 온다. 느낀 대로 표현할 수 있어야 분열되지 않는다. 느낌대로 움직일 수 있어야 자연스럽다. 나 자신에게 진실해야만 자유롭다. 우리는 본래 그런 존재이다.
우리는 타고난 본래의 모습인 전체로 살 수 있어야 행복하다.
느낀 대로 표현해서는 안 되고, 느낌대로 움직여서도 안 되고, 궁금해도 물을 수 없는 곳에서 나는 나를 조각내야만 했다. 어린아이의 생생함과 진실함과 야생성을 잘라내 버리고, 애쓰며 살아야 하는 착한 아이만 남겼다. 그리고 스스로 잘라낸 그것들을 ‘철없는, 감정적인, 위험한, 미성숙한, 부끄러운, 쓸데없는’ 것들로 분류해서 내 무의식 속에 가두었다. 그것들이야말로 내 삶의 모든 순간을 살아있게 만들고, 자연스럽게 하고, 한 바탕 놀이처럼 살게 하는 원초적인 힘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고 인정할 수도 없었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고 싶다면 반드시 잃어버린 자리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무의식 속에 가두었던 상처받은 그 아이에게 이야기하게 하라. 그 아이가 나의 잃어버린 조각이며, 그 아이의 이야기 속에 나를 구원할 답이 들어 있다. 그때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가. 나는 어떤 감정을 느꼈는가. 나의 진짜 욕구는 무엇이었는가.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지나치게 애쓰며 살아야 하는 착한 딸은 언젠가는 지치고 병들고 피폐해지기 마련이다.
더 이상 살아온 대로 살고 싶지 않은 혼란과 고통이 찾아왔다면 좋은 일이다. 그것들은 본연의 나로부터 너무 멀리 도망쳐왔다는 생명의 신호이다. 삶은 우리가 자유롭고 행복하기를 원한다.
고통을 환대하시라. 고통은 ‘전체로 살도록 태어난 커다란 나’가 작은 조각으로 애쓰며 살아온 나에게 보내는 기쁜 소식이다.
‘나인 그대여, 이제 잃어버린 조각을 되찾아 전체로 살아야 할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