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22일째. 우리가 헤어졌음을 인정한 날

20여 일이 지난 이제야 비로소

by 하마

집 근처 도서관에서 빌려뒀던 책이 기하급수적으로 연체가 되어 새로운 도서관을 찾아야 했다. 헤어진 뒤에는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 마침 퇴근길에 도서관이 있길래 대여증을 만들러 가던 길에, 이상한 촉이 들어 도서관에 전화를 해보니 리뉴얼로 인한 휴관. 허망한 기분으로 어디인지도 모른 채 타고 있던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깨달았다. 그 정류장은 전 애인이 몇 년 전 술에 취해서 나에게 기대 주정을 부리던 장소였다.


정말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고, 당황스러웠다. 대부분의 추억은 내가 대비할 수 있는 상황에서 나를 덮쳤다. 작정하고 사진 앨범을 열거나 맘을 먹고 그의 선물을 정리하는 등이었다. 이 경우는 달랐다. 예기치 못하게 그 정류장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멈출 새도 없이 눈물이 튀어나왔다.


집에 갈 힘도 없어서 근처 공원에 주저앉았다. 앉아서 하염없이 지나가는 유모차와 조깅하는 사람, 강아지 산책시키는 사람, 연인, 부부와 가족들을 바라봤다. 내가 브런치에 썼던 글도 1일째부터 21일째까지 쭉 다시 읽었다. 그러다가 날이 어둑해질 때쯤 깨달았다. 정말 그와 헤어졌음을.


22일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지금껏 계속 그와 헤어진 상태였다는 걸 안다. 다시 사귈 생각을 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내 맘 한편에는 ‘어쩌면 내가 그를 용서하게 되거나’, ‘혹시나 그가 무릎을 꿇고 며칠 동안 석고대죄를 하거나’, ‘세상이 멸망하거나’, ‘내가 암에 걸리거나’. 만에 하나라도 내가 다시 그와 사귀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해왔다는 걸 순간 깨달으면서 동시에 이제는 그 생각이 깨졌다는 걸 느꼈다. 우리는 정말 헤어졌다. 아마 다시는 서로를 보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를 용서하거나 그가 석고대죄를 하거나 세상이 멸망하거나 누가 암에 걸린다 해도.


내가 헤어지자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별을 진심으로 인정하기가 이렇게나 오래 걸렸다. 헤어진 첫째 날 이미 인정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한편에 있던 '혹시나' 하는 생각이 나를 가로막고 있었다. 이 연애를, 그를 진심으로 포기하는 데에 이만한 시간이 걸린 것이다.


달콤한 포기

그러고 나니 기분이 생각보다 괜찮았다. 스스로도 믿지 않는 ‘만약’에 아등바등 매달려 가능성을 점쳐보느라 쏟던 에너지가 더 이상 낭비되지 않는 기분이었다. 이제야 비로소 나아질 준비가 된 것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이제야 비로소 이 이별이 돌이킬 수 없음을, 내 상실감은 회복될 수 없음을 절감했다. 그와 보낸 5년의 시간이 완전히 끝났다. 그에게 쏟았던 사랑과 열정과 애착도 이제는 땅바닥에 모두 버려졌다. 따스함과 안락함도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는 체형부터 성격까지 거의 반대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래서 더욱 반대의 그에게 끌렸다. 분명 얼마 전까지도 그의 물렁하고 포근한 세계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의 뾰족하고 딱딱한 세계로 쫓겨난 기분이었다. 물론 날 선 나 자신을 사랑한다. 하지만 그만큼 그의 나이브한 세계를 사랑해왔다. 다시는 들어갈 수 없도록 닫힌 문 앞에서 어제의 기억을 아쉬워하고 있는 꼴이었다. 결국 그 물렁함과 허술함 때문에 무너진 세계를. 익숙한 나의 세계에 오도카니 서서.


이젠 문이 정말 닫혔음을 인정하고 다시 내 세계로 돌아섰다. 익숙한 이 세계에서 이제 천천히 이별을 곱씹어 삼킬 것이다. 지금부터야말로 비로소 홀로.


*표지 이미지 : <아름다운 어둠>_파비엥 벨만, 케라스코에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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