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21일째. 나를 사랑하는 이에게 이별 소식 전하기

엄마라는 관문

by 하마

엄마에게 누군가와 사귀고 있다고 제대로 고백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서른이 넘었지만 여전히 엄마는 나를 철없는 여자애처럼 다뤘고, 그런 딸년이 연애를 한다고만 하면 득달같이 감시하거나 꼬치꼬치 캐묻기 일쑤였다. 십 년 넘게 따로 나와 살고 있겠다, 내가 입만 다물면 연애를 숨기기란 아주 쉬웠다. 지금껏 그렇게 들키지 않고 여러 연애를 해왔었다. 하지만 전 애인과 만난 지 100일쯤 되던 날 그만 행복에 겨워 엄마에게 털어놓고 말았다. 나 지금 연애하고 있고 그를 사랑해서 너무 행복하노라고.


초반의 감시와 질문 공세가 지난 뒤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5년 동안 엄마와 애인이 직접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엄마는 내가 말해주는 정보를 들으며 나름의 상상을 펼쳤다. 나는 연애에서의 좋은 점만 말해주었고, 엄마는 그걸 듣고 최고의 남자를 상상해왔다. 언제나 서울에서 혼자 살고 있는 딸년을 걱정해왔는데 내가 아프거나 다쳤을 때 한달음에 달려와줄 사람이 있다는 것에 안심하는 것 같기도 했다. 5년 동안의 연애에서 그는 우리 엄마에게 있어서 딸을 잘 보살펴주는 고맙고 착한 남자친구였다. 실제로 본 적은 없이 오직 딸의 이야기만 듣고 상상한.


그의 외도로 헤어진 뒤 내가 이별 소식을 전하기 가장 두려웠던 사람은 엄마였다. 엄마가 나에게 쏟는 애정은 전형적이지 않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헌신적이고 열정적이다. 그런 엄마에게 고마워하면서도 그 크나큰 애정이 가끔 부담스럽다. 나를 그렇게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사랑이 실패했음을 고백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엄마가 얼마나 걱정하고 안타까워할지 생각하면 내가 더 고통스러웠다.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 자주 전화하고 카톡을 보냈지만 엄마는 귀신같이 금방 알아챘다. 대번 주말마다 왜 남자친구가 아니라 친구랑 노는지 물었다. 더 이상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아서 충동적으로 ‘헤어졌고 자세한 건 묻지 마라’고 했다. 엄마도 더 이상은 묻지 않았다. 그러고 일주일 뒤쯤, 본가를 방문할 일이 생겼다. 질문 공세가 펼쳐질 것을 알고 있기에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지만 불가피한 방문이었다.


2박 3일을 묵는 동안 엄마는 한 번도 그 얘기를 꺼내지 않다가 내가 집에 돌아가기 몇 시간 전, TV를 보고 있는 나에게 대뜸 ‘자초지종을 언제 말해줄 거냐’고 물었다.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묻지 말라고 했지 않냐며 짜증을 내고 넘어갔지만 이미 내 기분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돌아오는 기차역에서 대충 ‘걔가 바람피워서 헤어졌다’ 고만 통보했다. 그 얘기를 듣는 엄마 아빠의 얼굴은 걱정스러움과 안타까움, 그리고 풀리지 않은 궁금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더 자세하게는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무력하고 나약한 부끄러움

엄마는 그 뒤에도 뜬금없이 ‘씩씩한 척하지 말고 밥이나 잘 먹어라’와 같은 말로 내 속을 뒤집어놓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친구들과 동료들처럼 모르는 척해주는 예의조차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엄마 역시 충격을 받았다는 것을 알겠다. 기차역에서 내 이야기를 듣는 엄마와 아빠의 놀라면서도 상처 받은 듯한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헤어졌다는 소식을 전할 때는 왠지 모를 부끄러움도 느꼈다. 마치 취직을 잘해서 엄마 아빠를 자랑스럽게 했다가, 어느 날 그 회사에서 잘리고 돌아온 기분이었다. 친구와 절교하고 돌아와 엄마에게 털어놓으며 펑펑 울던 학창 시절처럼 무력한 존재가 된 것 같았다.


사랑하는 딸이 사랑하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 아프다는 건, 부모에게는 대체 어떤 느낌일까? 딸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데에도 몇 년이 걸렸는데 그 사랑이 아프게 끝났다는 건 또 얼마나 당황스러운 일일까. 아빠는 언제나 내가 그에게 너무 온 마음을 다 내어주는 것은 아닌지 우려했다. 그랬다가 혹시라도 내가 상처를 받지는 않을지, 그는 혹시라도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니면 어쩌나 걱정해왔다. 그러다가 비로소 아빠 입에서 ‘그놈 좀 믿을만한 놈인 것 같네’라는 말이 나온 지가 불과 1년 전쯤인데. 그를 만난 적 없는 내 부모님조차 이제는 그를 믿고 있었는데.


울지 않고 말할 수 있는 그날까지

자초지종을 부모님에게 자세히 털어놓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말하다가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다. 안 그래도 나를 걱정하고 있을 텐데 눈물까지 보이면 최악이라는 생각으로 일부러 밝게 행동했다. 본가에 가면 아빠와 저녁에 반주를 함께 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혹시라도 술이 들어가면 눈물샘이 터질까 봐. 하지만 내 이런 모든 노력은 아마 간파당했을 것이다. 나를 키운 사람들인데 이런 얄팍한 수를 모를 것 같지 않다.


언젠가는, 바싹 마른눈으로 깔깔거리며 ‘글쎄 그 나쁜 새끼가 이런 짓을 했다니까’ 하고 엄마 아빠에게 털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났으니 걱정 말라며 다시 제 잘난 맛에 사는 개딸년으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날까지 잠시만 엄마 아빠가 궁금증을 묻어주기를. 나를 너무 걱정하지는 않기를. ‘난 괜찮아요.’


*표지 이미지 : <100만 번 산 고양이>_사노 요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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