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24일째. 잃어버린 섬에 대한 애도

어떤 맘을 준건지 넌 모르겠지만

by 하마

이제 헤어진 지 한 달도 다 되어가겠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좋아하던 취미에 맞는 동네 동호회를 찾아서 첫 모임에 다녀왔다. 새로운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성격이고 분위기도 화기애애해서 나도 놀랄 만큼 왁자지껄 잘 놀았다. 집에 돌아와 혼자 와인 한 잔 하며 나가보길 잘했다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그러고는 아침이 되어 불행한 기분으로 잠에서 깼다. 눈을 뜨기도 전부터 나는 지금 불행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취미 동호회가 흔히 그렇듯 서로에 대해서 거리낌 없이 물을 수 있는 것은 나이뿐이다. 직업, 사는 곳, 평소의 생각이나 관심사는 잘못 질문하면 캐묻는 격이 되고, 물어도 두리뭉실하게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다. 새로 오는 사람도 많고 떠나가는 사람도 많아서 흐르는 강물과 같은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이가 부평초처럼 가볍게 서로를 만났다가 스쳐가는 것이다.


그런 관계가 부담 없을 때도 있다. 오히려 그 가벼움에 위안을 받고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한다. 하지만 수많은 여행에서 친구들을 만나본 결과 관계를 맺는 것은 너무나 쉽지만 깊고 오래 끌고 가는 것은 어렵다. 서로 가볍게 마주친 만큼 가볍게 헤어지게 되고 거기에 느끼는 아쉬움이나 섭섭함도 가볍기 그지없다.


그렇게 가벼운 만남을 오랜만에 겪어보니 새삼 내가 잃은 관계가 얼마나 깊고 신뢰할 수(있다고 믿고) 있었는지 느껴졌다. 오래된 안온한 관계가 이제는 사라졌다는 것이 사무치게 느껴졌고, 불행함을 느꼈다.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로도 사람은 웃고 떠들고 즐거울 수 있다.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믿고 있어도 가장 중요한 것을 모를 수 있듯이.


예를 들면, 오랫동안 살아온 섬이 있다

친숙한 이웃과 익숙한 지형 덕에 그 섬은 나에게 더없는 평온함을 준다. 그런데 어느 날 예고 없이 섬이 지진을 일으켰고, 나는 그 섬에서 벗어나 멀리 대피해야 했다. 텅 빈 호텔방에 앉아 섬을 그리워하고 다시 그곳에 돌아가 볼까 생각도 하지만 섬은 이제 바다에 잠겨버렸다. 나는 다른 곳에 자리를 잡고 어쩌면 새로운 섬을 더 사랑하게 될 수도 있지만, 내가 이 섬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 어떤 섬도 내가 잃은 섬과 완전히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 섬이 사실은 그저 평범한 섬이었다 하더라도. 내가 모르는 새 깊은 곳부터 썩어있었다 하더라도.


그렇다면 나는 섬을 진정으로 사랑한 걸까, 아니면 그저 그곳이 오래 살아온 고향이기에 그리워하는 걸까?

나는 그를 잃는 것과 혼자가 되는 것 중 무엇을 진정으로 두려워했던 걸까?


나는 사람과 관계, 둘 중 무엇을 그리워하는 걸까

헤어지기 전에는 전자라고 확신했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오랫동안 한 사람과 연애를 하다 보면 서로를 잘 알게 되기도 하지만, 연애에 대해 모든 이가 입을 모아 말하듯 나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 난 그를 사랑했지만 5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의 ‘관계’를 그 못지않게 사랑하게 되었다. 그 관계는 5년 간 나 자신의 일부였다. 내가 살던 섬이었다.

테드 창의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와 주기>라는 소설에서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나체로 있는 상황에 따르는 무방비함이나, 기꺼이 나체가 되는 행위를 통해 상대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의 의미’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서로가 완전한 무방비 상태에서 경계하지 않아도 될 때 느끼는 신뢰감과 안도감은 오직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이다. 나체가 되다, 즉 무방비한 상태가 된다는 것은 옷을 벗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애정을 계산 없이 드러낼 수 있다는 것, 내밀한 마음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가령 내가 요즘 가장 그리운 것은 이런 것이다. '대충 입어도 서로 전혀 신경 쓰지 않지만' 굳이 예쁜 옷을 차려입고 나갔던 데이트. 혹여나 내 옷이 상대의 맘에 들지 않아도 우리의 애정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확신. 상대가 웃을 것을 확신하고 던지는 농담. 몇 시간쯤 연락이 두절돼도 상대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 알고 있다는 것. 운동을 마치고 나오면 내가 카톡으로 던진 농담에 답장이 와 있을 것이라는 확신.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확신. 내가 주는 애정이 잘못 읽히거나 거절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 많은 확신들.


오래된 섬이 주는 안온함

이 안도감과 확신은 어쩌면 다시 누군가를 만나서 오랫동안 연애를 하면 똑같이 느낄 수 있을 감정일 것이다. 사람에게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에 귀속되는 감정이기 때문에. 하지만 그러려면 일단 불확신과 떨림, 설렘이 가득한 세계를 지나쳐가야 한다. 데이트에 입고 나간 옷이나 사소한 말실수 때문에 깨질 수도 있고 취향과 성향의 탐색을 통해 거절당할 수도 있는 연애 초반의 살얼음판을. 언제 어떤 이유로 벗겨질지 모를 콩깍지가 씐 얇디얇은 애정의 시간을.


그를 잃은 것보다 빈자리가 주는 외로움 때문에 더 슬프다면 내가 이기적인 걸까? 나는 섬이 그리운 걸까, 섬에서 지낸 나의 아름다운 시간들을 그리워하는 걸까? 그 둘이 사실 같은 것이라면, 이 텅 빈 마음은 그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건 아닐까?


이렇게 헤매다 보면 언젠가는

동호회에 다녀온 다음날 아침에 느낀 불행함은 출근해서 일을 하다 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 스르르 사라졌다. 동호회 단체 카톡에는 2~300개씩 대화가 올라오고 하루 걸러 정모가 열리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시끄럽게 오가는 그 섬을 잠시 구경하다 보면 단 둘이서 오랫동안 머물렀던 고요한 섬에 대한 기억이 흐릿해지기도 한다. 이렇게도 가볍게 누군가와 웃고 떠들 수 있구나, 서로를 이토록 모를 수 있구나, 이런 아쉬움 없는 관계도 있었지, 하며 나뭇잎처럼 둥둥 떠다니고 있다.


한 섬에 오래 머무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누군가를 만나 호감을 갖고 썸을 탈 때의 설렘을 처음 타보는 놀이 기구처럼 즐기던 때도 있었다.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기 전에, 모험가의 기질을 다시 되찾기 전에, 지금은 잠시 잃어버린 내 섬에 대한 묵념의 시간. 내가 어떤 마음을 준 건지 그 섬은 결국 모르겠지만.



*표지 이미지 : <할아버지의 바닷속 집>_가토 구니오, 히라타 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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