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25일째. 다시 한번, 용서했어야 하는 걸까?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지만

by 하마

꿈을 꾸었다. 내가 그에게 욕이 섞인 카톡을 보냈더니 그가 마지막으로 한번 더 만나고 싶다고 했고, 만나서 잘못을 비는 그를 내가 결국 용서했다.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그의 어깨를 아주 세게 쳤다.(작정하고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정말 세게 때렸다) 꿈에서조차 그의 사죄는 성에 차지 않았고, 결국 그를 용서하는 나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헤어지지 않았음에 안도하기도 했다. 찜찜한 채로 잠에서 깼다.


꿈 덕분에 그와 헤어지던 직후부터 지금까지 줄곧 해왔던 생각을 다시 한번 곱씹어봤다. 나를 줄곧 괴롭혀왔던, 그래서 일부러 머릿속에 떠올리지 않으려 했던 그 생각.


나는 바람피운 그를 용서해야 했던 걸까?

사실 나는 이미 한 번 그를 용서했다. 헤어지기 전 비슷한 전례가 이미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바람피운 연인과 헤어진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알든 모르든 상대를 용서한 전적이 한 번 이상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외도라는 건 평생 안 하다가 갑자기 머리가 돌아서 딱 한 번 실수로 하기에는 어려운 일이다. 그보다는 평생 소소하게 해오다가 잠시 끊었는데 결국 제 성격을 못 버리고 다시 하게 되는 쪽에 가깝다. 연애를 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집적거리고, 사소한 거짓말을 하고, 다른 이에게 여지를 주는 행동은 그 사람의 천성이다.


처음 다른 여자에게 집적거렸던 증거를 발견했을 때 그를 용서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발칵 뒤집고 엉엉 울고 그를 쫓아내고 다시 불러서 무릎을 꿇리고 별 짓을 다했다. 하지만 처음이라는 것이 용서의 빌미가 되었다. ‘그가 한 건 바람이 아니고 실수’라고 스스로 되뇌었다. 내가 이번에 이별을 고할 수밖에 없었던 강력한 증거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줄곧 그건 그의 실수였다고 믿고 있었다. 사실은 실수가 아니고 증거 1호에 가까웠음에도.


누군가는 용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사랑에 빠지는 기준이 다르듯 그 사랑을 끝내는 기준도 다르다. 나의 첫 번째 이별의 기준은 ‘외도’였다. 상대가 연애의 기본적인 룰을 지키지 않았을 때는 지체 없이 연애를 종료한다는 것이 내 룰이었다. 연애 히스토리에 한 번도 그런 경우가 없었고, 그래서 더더욱 그 룰을 강력하게 주장할 수 있었다. 바람피운 상대와 계속 사귀는 사람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곤 했다. 그런 나조차 사귄 지 3년쯤 됐을 때 벌어진 ’첫 번째 증거 발견’ 사건에서 결국은 그를 용서했다. 증거가 아주 꺼림칙하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음에도 결국은 그와 헤어지지 않았다. 친구들에게조차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조금은 부끄러웠다.


두 번째 외도의 증거를 발견한 뒤 그와 헤어진 것은 내 의지였다기보다는 윤리관의 한계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모든 걸 용서하고 계속 사귀고 싶었다. 오래되고 안정된 관계를 끝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 윤리에 따르면, 바람피운 것이 확실한 상대방과의 연애는 독이다. 그런 관계를 계속하는 사람은 바보이고,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이다. 내가 헤어진 이유는 오직 그것이었다. 나는 ‘바람피운 상대와 계속 사귀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는 나와 똑같은 상황에서 그를 용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에 모두 그를 따끔하게 혼낸 뒤 용서하고, 친구들에게도 속시원히 털어놓은 뒤 잊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바람이 아니고 실수였을 뿐이라고, 연애를 오래 하다 보면 그럴 수 있다고 합리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단지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와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5년을 사귄 그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넌 절대 용서 안 할 사람인 걸 알았을 텐데

내가 ‘ㅇㅇ이가 바람피워서 헤어졌어’라고 말하자마자 엄마가 한 대답이다. 주변의 모든 이들은, 난 그런 걸 용납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애인이 그걸 모를 수 없다. 5년 동안 사귀면서 서로 누차 외도에 대해 경고했다. 게다가 전 애인은 나와 사귀기 전에 이미 상대가 바람을 피워서 헤어진 경험이 있었다. 외도의 아픔을 겪어본 사람은 같은 상처를 타인에게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내가 바보였다. 사람은 이기적인 존재이기에 자신이 당한 상처를 남에게 줄 수도 있다. 그것이 같은 행동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로.


즉 그는 바보가 아닌 이상 외도를 저지르면서 ‘들키면 관계가 끝이 날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는 외도를 저질렀다. 나와의 관계가 그에게는 딱 그 정도의 무게였다. 그는 나를 잃는 것이 그리 두렵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내가 평소에 좀 무른 태도를 보였다 해도 마찬가지다. 그랬다면 더더욱 상대는 ‘이런 행동을 해도 결국은 용서받을 것’을 믿고 있었을 것이다. 바람을 피운다는 것은 연인을 ‘어차피 헤어지자고 말하지는 못할 사람’, 또는 ‘헤어져도 그만인 사람’으로 대한다는 뜻이다. 둘 중 어느 쪽이라도 연애를 지속할 수는 없지 않을까.


그런 사람과 연애를 했다는 것

계속 지나간 시간을 곱씹어 생각하게 되는 것은 그와 헤어진 것이 아쉬워서라기 보다는 그런 사람과 5년 간 연애를 했다는 것 때문이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썩었거나, 또는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이 이 정도로 어렵다는 뜻일 텐데 어느 쪽이든 절망스럽다. 대체 어떻게 다시 사람에 대한 확신을 되찾을 수 있을까. 이대로 연애의 종착역에 다다른 것은 아닐까?


아무것도 몰랐던 때가 차라리 행복했다고 회상하는 것은 대체 얼마나 바보 같은 행동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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