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14일째. 치료의 과정

의사도 환자도 나

by 하마

마음의 상처가 이렇게 선연하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다. 실제로 다친 곳이 없어도 스스로가 아프다는 것이 분명히 느껴졌다. 살아오면서 타인이 주는 크고 작은 상처를 적지 않게 받아왔다고 생각했다. 소울메이트라고 느낄 만큼 친했던 친구와 헤어지기도 했고 연애에 따른 이별도 꽤 겪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완전한 타인을 연인으로서 깊이 사랑했고 5년 동안 마치 내 몸처럼 그를 아꼈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무방비로 키워왔던 마음이 나를 공격하는 기분이다. 언젠가는 배신당할 줄도 모르고 키워왔던 내 맘이.


이 병에는 차도가 있는 걸까?

이별마다 아파야 하는 총량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늦든 빠르든 그 분량을 다 채워서 아파야 치료의 과정이 끝나는 것이다. 미루면 후폭풍으로 올 것이고 몇 달 동안 미친 사람처럼 아프다가 어느 날 개운해질 수도, 느리고 꾸준하게 오래 아플 수도 있다. 실제로 20대 초반의 이별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헤어졌다가 몇 년 뒤 걸려온 전화 한 통에 병이 난 적이 있었다. 연애의 기억과 사람의 성격에 따라 통증의 양과 길이가 결정될 것이다.


문제는 내가 지금 어느 정도까지 왔는지를 도저히 모르겠다는 것이다. 어제까지는 꽤 괜찮아진 것 같고 생각도 덜 나는 것 같았는데 오늘 비슷한 체형의 사람을 봤다는 이유로 다시 이별 첫날로 돌아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2주 정도면 꽤 지났네 싶다가 2년이 지나도 지금처럼 괴로울 것 같기도 하다.


슬픔이 밀려올 때마다 내가 지금 아픔의 총량을 채우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나아졌다. 지금 이렇게 슬프다는 건 나중에 느낄 슬픔이 적어진다는 뜻이라고 스스로 위안 삼았다. 낫고 있다고 믿는 수밖에 없었다.


아픈 것도 나, 치료자도 나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생각을 하며 치료해야겠다- 싶다가도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에잇, 술이나 퍼먹어! 하는 상태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운동을 가야 전 애인 생각을 안 하지- 싶지만 발걸음이 도저히 떨어지질 않아서 다니던 요가원을 잠시 그만두었다. 밥을 잘 챙겨 먹어야 몸이라도 안 아프지- 했지만 헤어진 지 2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혼자 있을 땐 밥 생각이 전혀 없어서 저녁 대신 맥주를 2캔씩 까고 있다. 덕분에 살이 빠지긴 하는데 예쁘게 빠지는 게 아니고 피골이 상접한 느낌으로 빠진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별 때문에 힘든가 봐’라는 안쓰러운 표정을 짓고, 그럼 난 속이 상해서 또 맥주 1캔을 더 딴다. 무한 반복.


손가락이 다치면 대일밴드를 감고 그 손을 안 쓰는 게 가장 좋다. 마음은 그럴 수가 없다. 잠시 내려놓을 수도 숨길 수도 없이 매 순간 다친 마음을 데리고 다녀야 한다. 그러다가 가끔 좋은 음악, 좋은 위로, 그리고 귀여운 고양이 동영상 같은 걸 볼 때면 그 마음의 상처에 무언가가 살짝 덮이는 것까지도 느껴진다.(치료까지는 아니고 얇은 막이 덮인 정도랄까) 평소에는 가볍게 듣던 음악들이 어찌나 차곡히 아픈 마음에 쌓여가는지. 노래 가사들이 선연한 상처에 얼마나 가까이 와 닿는지.



남의 연애에는 이런저런 간섭을 잘해

근데 니가 토라져버리면

나는 그냥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하겠어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

금마가 사람이가

내 사랑에 초연한

금마가 사람이가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 중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의 가사다. '금마가 사람이가-' 부분이 너무 귀엽고도 좋아서 왠지 모르게 위로가 되는 노래다. 이별 후 노련하게 체력 관리를 하고 집을 깨끗하게 치우고 친구들과 깔끔하게 술 한잔 마시고 털어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금마가 사람이겠나. 모든 이별은 이렇게 엉망진창 못생기고 냄새나고 구질구질한 상태로 지나가는 걸까. 그도 이렇게 나처럼 아프고 있을까.


*표지 이미지 : <WHERE'S WALLY?>_MARTIN HANDFORD

keyword
이전 13화이별 13일째. 위로의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