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13일째. 위로의 기술

내가 했던 모든 위로는 부디 잊어주세요

by 하마

꽤 연애 상담을 잘하는 사람이었다고 자부해왔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편이기도 하고 5년간 연애를 하며 주변 친구들이 헤어지고 만나는 과정을 줄곧 지켜봐 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헤어지는 당사자가 되어보니 지금까지 내가 했던 위로의 말들이 모두 쓰레기였다는 걸 깨달았다. '나 헤어졌어'라고 말했던 친구들에게 대체 내가 뭐라고 주절거렸더라. 마치 다 아는 듯이 뭐라고 위로를 건넸더라. 미안해, 다 잊어줘요 여러분.


가장 힘이 되었던 위로는 가장 친한 친구의 말 없는 토닥임이었다. 내 결정을 지지해주고 이 시간이 곧 지나갈 거라고 격려해주며 어떤 판단도 하지 않고 그저 곁에 있어 주는 것. 저녁이면 외로울까 봐 나를 불러내 같이 밥을 먹고 평상시처럼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내주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네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난 너를 지지했을 거야'라는 친구의 말이 그 어떤 위로보다 든든했다.


화는 내가 낼게요

전 애인이 바람을 피웠다는 말을 듣고 불같이 화를 낸 사람도 있었다. 뭐 그런 쓰레기 같은 새끼가 다 있냐며 길길이 날뛰었는데, 사실 나도 친구의 애인이 바람을 피웠다고 하면 내가 더 분노하는 축이었다. 이게 그리 좋은 반응이 아니라는 걸 이번에 깨달았다. 이야기를 듣는 상대가 화를 내면서 전 애인을 욕하면, 아직 완벽히 극복하지 못한 나는 이상하게도 전 애인을 감싸고 싶어 진다. 그러면서 동시에 상대가 나의 연애 자체를 욕하는 것으로 들려서 마치 공격당하는 기분이 든다. 속상하고 화나는 기분은 이해하지만 이 자리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곳이 아니고 나를 위로하기 위한 자리다. 내 분노를 빌려가지 말자.


무엇보다 상대의 연애나 이별에 대해 '판단'을 하면 안 된다. '왜 더 일찍 헤어지지 않았냐', '쓰레기 같은 놈을 왜 생각해주고 있냐' 등등 나의 마음이나 행동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자. 나 아닌 어느 누구도 내 연애에 판결을 내릴 권리는 없다.


농담은 다른 데 가서 해요

가장 어이없었던 반응은 '찼어 차였어?'였다. 회사 동료들에게 고백했을 때 상사가 내뱉은 말이다. 오랫동안 사귄 관계였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고 내가 조심스럽게 헤어졌다고 고백하는 자리였다. 자기 딴에는 농담처럼 넘기고 싶어서 가볍게 물어본 것 같은데 '올해의 무례함' 1등으로 기억해둘 작정이다.


다행히도 주변에는 상식적인 사람들이 더 많았다. 헤어졌다고 말하면 꼬치꼬치 캐묻거나 나이 얘기를 해서 내 마음을 상하게 할까 봐 걱정했는데 그런 이는 다행히 없었다. 다들 '그랬구나' 하고 나를 토닥이고는 상처를 밟지 않으려 조심해주었다.


잃어버린 인류애를 찾는 시간

이별은 신기하게도 가장 가까웠던 한 명을 잃어버리는 대신 주변 사람들의 고마움을 여실히 깨닫는 계기가 된다.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를 이토록 예민하게 느낀 적이 없었다. 무감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가장 여리게 아픔에 공감해주기도 하고 가깝다고 생각한 이가 상처를 건드리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친구와 동료가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다독여줬다. 그게 이토록 힘이 될 줄은 몰랐다.


물론 괴로움은 결국 혼자 겪어내야 한다. 친구와 함께 한참을 놀다가도 집에 돌아오면 다시 슬픔이 사무쳤다. 외출이 즐거울수록 혼자 있는 시간이 더 적막하기도 했다. 친구에게는 연인에게 하듯 어리광을 부리거나 기댈 수 없기에 더 외로울 때도 있었다. 놀다가도 친구가 애인에게 카톡을 보내는 걸 보면 괜히 분노가 치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별을 겪는 나를 걱정해주는 이가 있다는 건 큰 위로가 된다. 속에 천불이 날 때 함께 소주를 마셔줄 이가 있다는 게, 펑펑 울 때 옆에서 휴지를 뽑아줄 친구가 있다는 것이.


이제 친구들이 애인과 헤어지고 오면 특급 서비스로 위로해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일단 이번엔, 날 좀 토닥여주세요.


*표지 이미지 : <할아버지의 바닷속 집>_카토 구니오, 히라타 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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