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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떼굴 May 16. 2024

슈퍼 면역자는 개뿔.


강아지 풀로 장난치듯 목이 간질간질 가끔 기침이 터질 때만 해도 코로나는, 내가 떠 올릴 단어는 아니었다. 2019년 12월 중국 후베이성에서 처음 시작된 코로나 역병은 5년이 지난 지금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마스크 착용이 장기화되면서 사람들은 그것의 패션화를 추구했고 입 가림의 기능 외의 장점을 발견하기도 했다. 장점 중 최고는 못생김 커버였다. 하관을 가린 얼굴은 쉽게 미남 미녀가 되었다. 오죽하면 마기꾼이란 신조가가 등장했겠는가. 그러나 내게 유용한 장점은 따로 있었다. 삐죽거림이나 한숨, 작은 욕설 등 입으로 표현되는 부정감정을 가려주는 기능. 여러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직업 상 마스크가 가져온 효용이 뜻밖에도 만족스러웠다. 드러냈으나 드러나지 않은, 너 나 모두에게 득이 되는 소소한 해방이었다. 그래서 소멸시국에도 마스크를 벗지 않았고 그런 내게 한치 의심 없이 슈퍼 면역자라는 믿음이 있었다.


특별한 일정이 없던 휴무에 CGV에서 영화를 봤다. 파묘. 너무 많은 리뷰를 본 탓에 뻔하다는 착각이 일었으나 그럼에도 재미있었다.


며칠 전부터 붕어빵이 먹고 싶었다. CGV 근처 지하철 역 주변은 붕세권이다. 시장 물가가 반영된 것인지 그곳 붕어빵 크기가 지난해에 비해 줄었다. 이천 원에 세 마리, 그걸로 충분했는데 작아진 몸을 보고 세 개를 추가 주문했다. 6마리가 담긴 봉투를 안고 포장마차를 나왔다. 참지 못하고 한 마리를 꺼내 덥석 물었다. 그런데 맛이 없다. 두 마리 째도 세 마리 째도 전에 먹던 맛이 아니다. 실망한 기분은 당분간 붕어빵을 사지 않을 것 같다는 다짐으로 이어졌다.  


몸에서 비적비적 기운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나타난 변화가 느낌인지 실제인지 헷갈렸다. 집으로 오는 길에 슈퍼에 들리려던 계획을 포기할까 말까 고민하며 걸었다. 그러나 기왕 코 앞까지 왔으니 장을 보기로 했다. 무겁지 않게 장을 봤는데도 꾸역꾸역 집에 도착했고 대충 정리 후 침대에 누었다. 혼미한 밤이었다. 밤 사이, 침대 옆에 둔 물컵을 들기 위해 몸을 일으킬 때나 화장실을 가기 위해 침대를 내려올 때나 내 몸은 스스로 건사할 수 없는 상태로 급하게 추락했다. 어처구니없지만 파묘가 떠올랐다. 귀신이 들렸나?


갈증이 심했다. 아무리 물을 마셔도 해갈되지 않는 갈증이었다. 입술이 마르고 혀가 말랐다. 목도 아프고 어지럼증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겁나는 것 폐였다. 호흡할 때마다 폐가 망가지는 분명한 느낌이 있었다. 몇 년 전 사둔 휴대용 산소가 떠올랐다. 평소에 심호흡으로 폐의 기분을 전환시키는 습관을 만들고 있는데 떨어진 기력에 심호흡은 폐의 기분을 조금도 전환시키지 못했다. 휴대용 산소 호흡기도 그랬다. 머리가 띵할 때 쓰면 반짝 기운이 난다던 추천인의 효능이 내게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서야 생각이 났다. 코로나인가?


진단 키트를 찾아 코를 후빈 지 1분 만에 나타난 선명한 두 줄. 코로나였다. 타이레놀을 찾아 먹고 혼미한 밤과 대척했다. 날이 밝기를 기다려 병원을 갔고 약을 처방받았다. 거의 이틀 만에 마신 바깥공기 때문인지 나아지고 있다는 기분이 잠깐 들었다. 그러나 약국을 나와 과일가게에서 바나나값을 결제하려는 순간 세상이 빙빙 돌고 구토감이 들어 바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겨우 계산을 마치고 가게 앞 보도블록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세상은 아직 돌고 있었고 119를 부르면,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면, 이라는 생각을 잠시 했던 것 같다.


어지럼증이 조금 가라앉자 신호 정지가 풀리길 기다리는 버스가 눈에 들어왔다. 버스는 정면으로 내가 보일 위치였다. 운전 가사님은 나를 어떻게 볼까, 지나는 행인들은..이라는 생각을 또 잠깐 했다. 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시선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는 온통 어서 침대와 한 몸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함뿐이었다. 그 간절함이 나를 집에 이르게 했고 끓여 놓는 죽을 억지로 먹게 했다. 한 시간을 잤나 싶었는데 5시간이 흘렀다. 약을 잘 먹지 않는 내게 작동되는 약발. 이럴 때 효과를 보려고 약을 멀리해 왔다.


자는 동안 흠뻑 젖은 옷과 머리. 샤워를 할 엄두가 난 것에서 호전의 기미를 읽는다. 내일은 더 괜찮아지겠지., 는 무슨.



코로나를 견딘 지 한 달이 되었다. 통증도 기간도 각오했던 모든 증세가 내 예상치를 웃돌았다. 가장 끝까지 물고 늘어진 건 호흡기였다. 들숨과 날숨이 억지스러웠고 운동직후처럼 짧고 가빴다. 모름지기 태평성대란 잊고 사는 것이다. 팔다리를 비롯한 배의 안쪽 사정이 거슬리고 신경 쓰인다면 그건 태평성대가 아닌 것이다. 내 호흡도 그랬다. 손톱 밑 가시나 돌부리에 차인 발가락의 아픔과는 다른 차원으로, 존망의 열쇠일 수 있는 폐의 위치 확인이 그래서 심각하게 다가왔다.


‘코로나 폐 증상’을 검색했다. 폐 섬유 종. 내 증세와 거의 흡사했다. 생존기간 3년에서 5년이라는 설명에 짧게 아득했다. 코로나에 먼저 걸렸던 친구들이 폐 엑스레이를 찍으라 권할 때만 해도 흘러들었다. 친구들 모두 이상이 없다는 소견을 받았다는 결론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도 찍어봐야 할 것 같았다. 결과에 따라 앞으로의 처신을 정해야 하니까. 3년에서 5년을 상정한 마음이 다소 차분해졌다.


이기는 게 뭐라고, 지는 게 뭐라고. 젊을 때는 사소한 곳에도 자주 목숨을 걸었다. 그러나 나이 드는 비용을 몇 차례 세게 치르다 보면 아무 곳에나 목숨을 걸 지 않게 된다. 월요일 오후가 한가하여 문을 닫고 병원으로 갔다. 카페가 뭐라고.


병원행을 주저했던 이유 중 하나는 시절의 시끄러움도 있었다. 지금은 중환자에게 의사를 양보할 때였다.


호흡 관찰 겸 탄천길을 걸어 정자 역 부근에 있는 병원에 도착했다. 도착 5분 만에 폐사진을 찍었고 다시 5분 만에 결과를 들었다. 그 짧은 시간이 마치 안전지대 같았다. 내 폐는 깨끗하단다.


나에게서 자주 간사함의 극치를 본다. 중앙공원을 내 집 마당처럼 드나들었는데 코로나로 근손실을 체감한 최근엔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간사함이 꼬리 아홉 달린 여우처럼 재주를 부리니 카페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호흡도 갈 때와 사뭇 달라졌다고 확신한다.ㅋ. 오고 간 걸음 수가 오랜만에 만보를 넘어섰다.


폐 엑스레이 사진을 찍은 날을 기점으로 몸은 빠르게 회복되었다. 붕어빵에서 시작된 입맛은 거의 돌아왔지만 침대에서 잃어버린 근육은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운동 기피자의 근손실이 어떤 절망을 가져다줄지를 코로나를 통해 체험했다. 아침마다 스트레칭을 하고 본격적인 스쿼트 운동도 도전했다. 처음 며칠 동안은 10개 언저리에서 헐떡였지만 조금씩 늘려가고 있다.


운동도 싫어하고 건강 보조 식품도 싫어한다. 내 나이 육십. 그동안 잘 버티고 살았으니 더 고집부릴 때가 아니란 걸 알았다. 약을 처방받을 때 피검사도 같이 했더니 또 고지혈증이 나왔다. 몇 년 전, 처음 고지혈 증세를 고지받고는 야채 식단인 내가? 에이 설마.. 하면서 수긍하지 않고 모른 척해버렸다.


우기지 말자. 쉰 중반에 들어서며 친구들끼리 약속한 게 있다. 우리의 기억력이 믿을 수 있는 단계를 지났으니 한 번은 의심해 보고 의견을 내라는 뜻이었다. 따지고 보니 나는 탄수화물 성애자다. 냉면. 막국수, 잔치국수, 파스타까지 온갖 국수류를 즐긴다. 그러면서 오직 빵을 즐기지 않는다는 이유로 탄수화물 과다섭취를 인정하지 않았다.


최근 시청하는 유튜브는 건강과 관련된 알고리즘을 엮는다. 그중 비트가 눈에 걸렸다. 선운사 동백보다 진한 비트의 눈물은 피클 담을 때나 유용한 작물이라 여겼는데 효능이 따로 있단다. 혈관 청소부로 강력한 효능. 그래서 사 왔다. 미량의 독소가 있으니 생식하지 말고 익혀 먹으래서 살짝 익혀 올리브유만 뿌려 먹는다. 맛있다. 식감과 단맛은 단감 수준이다. 비트 취저. 내 혈관 청소는 비트에게 맡겨야겠다.


이게 머선 일이고~

비트를 만끽한 다음 날 아침. 변기를 가득 채운 붉은 빛깔에 3초간 저승엘 다녀왔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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