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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떼굴 May 23. 2024

몸의 경고

허리 삐끗 이 알려준 의미


암막 커튼 사이로 아침이 왔다. 그 기척에 눈을 뜬 나는 기지개 없이 침대를 내려와 거실로 향했다. 9월이지만 밤만 되면 모기들이 거실 안쪽을 노렸다. 해가 뜨면 방충망 없이도 안전하다. 잠금장치는 엄지와 검지 사이를 7센티쯤 벌렸다 누르면 해제될 것이다. 창틀 아래 걸린 잠금장치를 해제하기 위해 엉덩이를 하늘로 추켜올렸다. 그 순간이었다. 허리에서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팽팽히 당겨진 현에 면도날이 스친 듯, 신경다발이 쨍하고 끊어진 것 같았다. 짧고 선명한 느낌뒤로 꽁지뼈 위쪽으로 강렬한 통증이 난무를 시작했다.


작년 이맘때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그때 친구가 말하는 허리 삐끗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했었다. 걸핏하면 허리를 감싸고 나타나던 친구는 반복될지 모를 내 허리의 앞날을 걱정했다.


가게를 운영하니 화분 옮기는 일이 일상이다. 1년 전에는 화분이 화근이었다. 분갈이 뒤 끝이 귀찮아 마지막 분갈이를 포기하고 대형 나무 화분에 고무화분을 겹쳐 넣은 게 4월이었다. 추위가 오기 전에 넣어둔 화분을 꺼내야 했다. 두 겹이라곤 하나 외부에서 겨울을 날 수 있는 식물이 아니었다. 9월이 되어 화분 양 옆을 단단히 잡고 굽혔던 허리를 세울 때였다. 어디선가 표창이 날아와 내 허리에 정확히 꽂혔다. 요추 5번과 천추 1번 사이에서 빠직 번갯불이 일었다. 나는 어정쩡한 자세로 얼음 땡이 되었다.


정형외과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실험실 개구리처럼 버둥거린 일, 바닥에 떨어트린 차 키를 줍지 못해 그저 멍청히 내려다보던 기억. 도스, 추나, 침 등 치료를 위해 뻔질나게 가게 문을 닫았던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긴 치료 끝에 허리 존재를 겨우 잊을만한 했는데 다시 사달이라니. 마침 9월이라니. 나도 이렇게 고질이 되는구나 싶었다.  


이번 사달이 가져온 통증은 표창에 비할 바 없는 융단 폭격이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극명의 통증이 달려들었고 다리까지 저렸다. 주저앉을 때 포개진 다리에 피가 돌지 않는 모양이다. 하나, 둘, 셋! 심호흡과 함께 몸을 바닥에 던졌다. 어떻게든 지금 상황을 탈출해야 했다. 비명이 터졌으나 성과 있는 고통이었다. 나는 다리를 펴고 곧게 누웠다.

 

집엔 덜렁 혼자였다. 안방을 나오며 무심히 떨군 젠장할 핸드폰이 식탁 위에 있다.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이제 냉기로 변하고 있었다. 원피스 잠옷은 민소매에다 냉기를 견디기에 얇은 소재다. 시리를 불렀다. 응답이 없다. 망할 것. 부르지도 않았는데 수시로 끼어들 땐 언제고.


핸드폰을 손에 넣을 때까지의 고통을 떠올리고 싶지 않다. 목이 쉬도록 비명을 지르고 빰이 따끔하도록 울기를 한 시간여. 드디어 식탁 밑에 도달했다.

 

전화를 받은 언니가 달려왔고 119도 도착했다. 나는 구급대원의 손길에 여지없이 비명으로 응대했다. 들것에 옮겨질 때 치마 끝자락이 올라갔다. 속옷이 보였겠지만 부끄럽지 않았다. 트렁크 팬티를 겹쳐 입는 습관에 잠깐 안도했다. 들것에 떠오른 내 몸에 가을비가 내렸다.


병원에 도착 후 엑스레이를 촬영실로 옮겨졌다. 촬영사는 나를 도울 기색 없이 어이없는 눈으로 바라봤다. 내 비명이 할리우드 액션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오해받기 싫다며 스스로 엑스레이 판 위로 옮겨 누우라 했다. 젊은 촬영사와 늙은 여인이 오해받을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말 같지도 않은 증명을 위해 내 허리는 너덜너덜 하다못해 거덜이 났다.


 엑스레이상에선 큰 문제가 없는 것 같다고 의사가 말했다. 그러면서 해 줄 수 있는 건 없지만 입원할지 집으로 돌아 갈지를 물었다. 해줄 수 있는 게 없는데 입원은 왜 권하냐고 묻자 그 상태로 집에 갈 수 있겠냐고 돼 물었다.


코로나 시국에 병원은 전쟁의 최전선이었다. 면회와 간병이 자유롭지 못했고 지키지 못한 임종도 허다했다. 호전을 장담하지 못하는 입원을 위해 언니까지 병실에 가둬 둘 순 없었다. 119를 불러 달라 했다. 간호사가 퇴원 호출은 안된다고 알려 주었다. 사설 구급대를 불러 집으로 왔다. 6시간 만에 제자리, 아직도 비가 내렸다.


내 손으로 밥을 먹을 수가 없는 나는 약을 위한 최소한의 음식과 물만 받아먹었다. 그래도 생리현상은 찾아왔다. 할 수 없이 기저귀에 쌌다. 누워 볼일을 보면서 소변이라거나 생리현상이라거나의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나는 싼 거다. 어쩔 수 없음으로 창피함을 눌렀지만 기분은 아주 참담했다. 훗날 내 모습일 수 있다는 상상으로 이어져 더 끔찍했다.


꼬박 이틀을 똑바로 누워 지냈다. 기침과 웃음에도 허리가 끊어져 뒤척일 생각은 꿈도 꾸지 않았다. 등 전체가 결리고 아팠다. 어쩐지 욕창의 경로가 이해되는 것 같았다.


무작정 천장만 보는 시간이 지루해 ‘허리를 삐끗했을 때’라고 검색을 해 봤다. 검색에서 나와 판박이 경험담을 발견했다. 3-4일은 무조건 누워있어야 한다. 하지만 반드시 호전된다. 일주일 정도 참고 기다리면 거의 정상으로 돌아올 거라는 내용이었다. 반가운 포스팅을 읽고 나니 영원할 것 같은 시간이 드디어 분절되었다.


5일 만에 관악산 정상 같은 침대를 빠져나왔다. 몰골을 수습해야 할 일이 생겨서다. 암벽 타듯 조심조심 벽을 타고 옆으로 한 발 한 발씩, 아주 더디지만 어쨌든 걸어서 화장실로 갔다. 머리를 감았고 어찌어찌 샤워도 했다. 아무 일도 없는 척은 할 수 없지만 가능하면 딸아이에게 아주 조금 불편한 상태로 보여야 한다. 2주 뒤면 딸의 결혼식이 있다. 미리 합가 한 딸이 한 달 만에 집에 온 거다. 사달이 한 주만 늦게 터졌으면 나는 딸의 결혼을 망칠 뻔했다.


기적이 일어났다.

재채기와 기침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 서서 세수하고 엎드려 머리 감고 이쪽저쪽 돌아 눕고 털썩 주저앉는 소소하고 자연스러운 행위들. 허리를 굽혀 떨어뜨린 것을 줍고 까치발 세워 높은 곳에 있는 물건을 꺼내는 것은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허리 삐끗 경험은 무료한 몸의 일상에서 의지가 시키는 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일상이 다름 아닌 기적임을 알게 한 깊은 자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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