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은 단편이고 인생은 단편집이야. 그리고 난 네 편이야.
글을 잘 쓴다, 못 쓴다 하는 말은 이젠 내게 거의 오만방자한 표현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글을 어떻게 하면 잘, 길게 쓸 수 있을까 고민했던 순간들은 이제 필름사진이 돼, '그땐 그랬었지' 하며 반추할 수 있는 끄나풀 하나쯤이 됐다.
그때 나는 '글쓰는 사람'이 아니라 '글을 항상 쓰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가 되기 위해 행했던 노력, 고민들은 이제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회사에서 실수하지 않기, 월말정산 자료 미리 만들어두어 마감에 쫓기지 않기, 타 부서 요청 잊지 않기 등.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매너리즘에 빠진 공무원이 되고 싶다고 친구와 얘기하곤 했는데, 매일 똑같은 업무가 반복되니 공무원은 아니더라도 바라던 매너리즘에 빠질 수는 있겠다 싶다.
참 많은 게 바뀌었다는 걸, 아니, 많은 걸 바꿨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과제 미리미리 끝내 제출일에 쫓기지 않기, 틈틈이 공부하기, 시간 헛되이 보내지 않기, 정말, 정말로 시간 헛되이 보내지 않기. 아, 대학생 시절과 달라졌다고 하기엔 너무 오래 전이니 조금 더 가까운 과거를 가져오는 게 낫겠다. 밀가루 먹지 않기, 몸에 나쁜 음식 먹지 않기, 운동 빼먹지 않기, 오후 2시 이후로 음식 먹지 않기. 않기, 않기, 않기. 그 무수한 강박과 강박이 몰고 오는 불안감들.
이제 그런 불안감들은 흔적도 남지 않았지만, 불안감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회사에서 잘리면 어떡하지? 나는 이곳에서 필요한 존재인가?'
이제 보면 먼지지만 그때는 거대한 우주였던 그 불안감들도 비 오는 날 습기 묻어 뿌얘진 창문처럼 흐려지고 있다. 불안감이라고 거창하게 이름 붙이고 싶진 않지만, 그래도 요즘 꽤나 피곤하기는 하다. 실수하면 안되니까, 잊으면 안되니까. 그래, 불안감이라기보다는 피곤함이라고 하는 게 낫겠다. 그래서 늘 같은 업무를 처리하면서도 집에만 돌아오면 피곤해서 돌아버릴 것 같은 게 그 이유인가 보다.
여하튼, 오랜만에 무언가라도 쓰고 싶어서 타자를 쳐본다. 이유라면 그것뿐이다. 그래도 한때 글쟁이이고 싶었던 사람이니, 타닥타닥 키보드를 두드리며 어떤 내용을 만들어가는 게 퍽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까 세수하면서 이런 글을 써야지 했던 것은 밥 짓고 나니 다 사라져, 그저 '무슨 내용인고' 하는 글이지만, 어쨌든 글은 글이니 지금 내 상태에선 이 정도면 되었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