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은 단편이고 인생은 단편집이야. 그리고 난 네 편이야.
과제로 블로그를 이용하는 것 외에는 정말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쓴다. 생각이 많을 때 글을 쓰곤 했는데, 글이 하나도 없는 요즘, 그렇다고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단지 그럴 에너지가 없다고 해야 하나. 전에는 힘들어도 글로 풀었고 울적해도 글로 풀었다면, 이젠 힘이 들고 울적해도 글을 쓸 에너지가 없다. 그저 힘들면 '아휴' 하면서 혼자 침잠하다가 잠에 들고, 다음 날 일어나고는 그저 다음 날을 연명해가는 것이다. 이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걸까.
나이 든 사람과 어른은 다른 거라고 말하고 다녔고, 어른은 책임을 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단지 나이를 먹어간 사람이 아닌 그 많은 세월의 편린을 쌓아가면서 책임감을 느끼고 그를 나이만큼 짊어지는 사람.
지금 생각해보니 책임감이라는 건 포기가 아닐까. 책임감 때문에 해야 할 것은 많으니 당연히 포기해야 할 것도 많다. 책임감이 많은 요즘, 그저 나이만 든 건 아니라는 생각에 안도도 되지만 굳이 또 어른이 되어야 할 건 뭔가 싶어서 여러모로 착잡하다.
덫에 다리가 잘려 다친 길고양이가 안락사 당하지 않도록 임시보호를 하고, 몇 년 동안 밥을 주며 돌보던 마을고양이가 아파서 또 병원에 입원시키고. 그러면서 나는 내가 맡은 바를 해내야 하고. 소정이라는 건 경품에만 해당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책임감에도 해당되는 거더라. '당신이 두 손으로 쥔 책임감은 당신의 선택에 따라 이미 정해진 책임감입니다'. 선택에 후회하지 않으려 해도 후회가 되는 게 괴롭고, 자책한다. 과연 내가 너희를 살리지 않았으면 행복했을까 하는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대답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지금 내게 주어진 책임감의 무게에 짓눌려 울적한 것도 제대로 된 상황인가 싶어 갸우뚱 한다.
너희를 어떻게 해야 하니? 별을 보며 걷고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위로받지만, 낭만적이지는 못한 서글픈 길생활을 하다가 별안간 다리가 잘려 세 다리로 삶의 무게를 지탱해야 하는 네가 답을 알 수는 없으련다. 피부가 뜯겨 근육이 드러나는 쓰라린 상처를 얻은 너 또한 그 답을 알 수 없으련다. 결국 그 답은 또 내게 '소정된' 몫이다.
나는 부디 네가 좋은 집사를 만나서 네 여생의 복을 편히 누리다가 고양이별에 갔으면 좋겠어, 보리야. 예상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입양/임보 문의 없는 이 상황이 너무 슬퍼서 나는 또 자조한다. 너를 어쩌면 좋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