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은 단편이고 인생은 단편집이야. 그리고 난 네 편이야.
언제나 강아지이던 네가 어느덧 개가 되어도 언제나 나는 강아지, 우리 강아지. 할머니가 손주 부르듯 우리 강아지 했었다.
나보다도 십 년이나, 십 년이 뭐람, 십오 년 남짓이나 덜 살았으면서도 짐짓 고요하고 잠잠한 눈으로 고즈넉한 시선으로 날 쳐다보면 너무 가슴이 아렸다. 기껏해야 너는 14년, 이제 갓 중학생이 된 나이인데 무얼 그리 아련하게, 할미가 손주를 바라보듯 바라보니?
나를 바라보는 희뿌연 눈에 잔뜩 안개가 낀 것 같았다. 안개는 모든 걸 가리지만 그 속에는 꽃이 자랄는지도 모르지. 파헤쳐 들어가기 전까지는 모르지. 그리고 그 꽃이 너란다. 버스 타고 오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네 눈 안개 속에는 예쁜 꽃이 있어.
'나의 늙은 강아지에게'라는 노래제목이 생각났다. 너는 늙었지만 언제나 나한테 강아지야. 내 늙은 강아지야, 너는 나보다도 한참 적게 살았으면서 왜 벌써 우리를 떠나려고 했던 거니?
장난기로 반짝이던 눈동자가 어느새 고요해지고, 언제부턴가 너는 내가 불러도 시큰둥했고 나를 바라보지 않고 엉뚱한 데를 보았지. 내가 잘해주지 못해서 나한테 삐친 거구나 생각했다. '우리 강아지는 늙지 않아요. 아직도 귀도 잘 들리고 눈도 잘 보이는데 그냥 내가 그동안 잘 못해줘서 삐쳐서 그런 거예요.'
내 늙은 강아지는 언제까지고 늙은 내 강아지일 거다. 내 시간보다 빠르게 흘러가는 내 강아지의 시간은 애석하지만 우리와의 짧은 여행 끝내고 구름나라로 더 기나긴 여행을 떠날 때, 천사에게 너무 늦었다며 기다리느라 지쳤다는 핀잔을 들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