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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스 Sep 25. 2019

즐거운 나의 집

이상형이랑 같이 산다면....


'띠리리리 띠리리리리~~~ (B. G. M 즐거운 나의 집)'


벨이 울리고 남편이 들어온다. 이로 살짝 입술을 깨물고 슬쩍 미소를 흘리며 남편은 내게 다가온다. 나는 소파에 앉아서 남편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자기! 다녀왔어?"     

남편은 내게 달려와서 나를 안아 준다. 근육질의 남편의 품속으로 나는 쏘옥 들어가 안긴다. 2분이 지났을까? 남편은 내 볼에 키스를 하며 나를 위해 준비한 것이 있다고 내 귀에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이번엔 또 뭐야?"

내 말에는 아랑곳 않고 남편은 등 뒤에서 꽃다발과 반지를 꺼낸다. 짜잔! 이란 그의 목소리가 냉랭한 거실에 울려 퍼진다.


 내가 좋아하는 데이지다. 한번 고개를 내밀어 냄새를 맡아보았다. 문득 꽃잎에 달려 있는 물방울에 데이지의 향기가 가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남편 손안에 든 반지를 보면서 귀찮다는 듯 말한다.

"오늘은 또 뭐야?"

"우리 사랑하는 자기! 오늘이 올해의 과학자상 탄지 500일째 되는 날이잖아."

형광등 아래서 남편의 콧날이 번쩍번쩍하게 빛난다.

"그딴 거 집어치우고 빨리 밥이나 해! 배고파 죽겠어? 거실에 있는 쓰레기도 버리고."

 나는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남편에게 지시한다. 점심 먹고 나서 설거지를 안 해놔서 싱크대 위에 그릇이 잔뜩 쌓여 있다. 내 이런 명령에도 남편의 표정은 일도 변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너무 행복해 볼따구가 터질 듯한 표정으로 고개 끄덕이더니 저녁 차리러 서둘러 주방으로 들어간다.


 내 남편은 완벽하다. 정우성 닮은 외모에 연봉 2억이 넘는 회사에 다닐 만큼 능력도 출중하다. 이벤트도 잘해주고 불평불만 없는 완벽한 성격에 무엇보다도 여자인 내 마음을 잘 헤아려주는 그런 남자다. 다시 말해서 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엄친아가 바로 내 남편이다.





 남편이 해주는 요리는 언제나 맛있다. 내 기분과 바이오리듬을 철저히 계산해 요리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 먹어도 완벽한 요리는 쉽게 질리는 법이다. 혓바늘을 황홀하게 만들어주는 이 요리에는 내가 절대로 계산할 수 없는 공포가 들어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난 몇 숟갈 뜨다가 그릇을 식탁에 툭 내려놓는다. 그릇은 좌우로 떨리더니 점차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정'의 상태로 되돌아간다. 앞을 바라보니 남편은 사랑스러운 얼굴로 날 보고 있다. 괜스레 그런 표정을 보니 짜증이 밀려온다.


 "이걸 지금 사람 먹으라는 거야?"

 "미안!"

 "이런 건 개나 줘!"

나는 그릇을 집어던진다. 쨍그랑! 접시가 바닥에 산산조각 난다. 남편은 놀랐는지 움직이지 않는다. 그저 날 빤히 보고 있을 뿐.

 "뭐야! 지금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나는 언성을 높이며 삿대질한다. 하지만...  여전히 남편의 눈동자는 미동도 않는다.

 그렇게 2초, 3초.. 10초가 흐른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나는 냉장고에 가서 커다란 배터리를 가지고 와서 남편에게 다가간다. 남편의 웃옷을 벗긴 다음 등짝을 열고 이틀 전에 넣었던 배터리를 뺀다. 새 배터리로 교체하고 등짝 문을 닫자, 10초간 팔을 휘젓는 등 혼자서 발광을 하더니 내게 다가와 이마에 키스를 한다.


 


"고마워 늘"

"빨리 설거지나 해! 이 병신 기계야"

"그런 말 하면 안 되지. 자기야!"

남편은 귀엽다는 듯 내 볼을 살짝 꼬집고는 싱크대로 간다.


보통 남편들은 부부싸움할 때마다 아내에게 이런 식으로 말한다.

'야! 내가 무슨 돈 벌어 오는 기계냐?'

하지만, 우리 집에 내 남편은 정말 돈 벌어오는 기계다. 그것도 내가 만든.....



 그를 처음 만난 것은 대학원 1학년 여름방학 직전 도서관에서였다. 기말고사 준비하고 있는데  주변에 여자들이 웅성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 있나 싶어 백치들 시선을 따라 고개를 내미니 저 멀리서 어깨 위에 오스람 전구 달린 사람이 성큼성큼 이쪽으로 걸어오는 게 아닌가!


 그때부터였다. 책을 펴도 책 위에, 잠을 자도 꿈속에 그가 나왔다. 초승달 눈웃음 위에 걸린 짙은 눈썹이 날 향해 꿈틀꿈틀 거리는 것 같아서 나는 도저히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다. 한마디로 사랑에 빠져버렸다.


 하지만 그를 좋아하는 것은 비단 나뿐만 아니었다. 나보다 더 예쁜 (과학자로서 객관적인 사실로 말하자면 나보다 상위 97.8%의 미모 지수를 가진) 여자들이 늘 그의 주위에서 짱나게 얼쩡거렸다. 나는 그런 백치들보다 똑똑했고 무엇보다 학교가 자랑하는 엘리트였지만(그렇다고 학교 홍보물에는 얼굴 한번 실린 적 없지만) 그에게 다가가기에는 그는 너무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이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가 이러다 죽을 것 같아... 결국 그에게 가슴 떨리는 고백을 하고 말았다.

"선배! 저 선배 좋아해요. 이거 몸에 좋은 건데 드세요."

"아! 난 쌍화탕 별로 안 좋아하는데.. 어쩌지?"

 하지만 그는 싱긋 웃으면서 내 진심을 농담처럼 받아들이더니 다른 여자에게 가버리고 말았다.


 울분에 휩싸이던 그날 밤, 혼자 도서관에서 펑펑 울고 자정이 훌쩍 지나 집에 가는데  저 멀리서 술 취해서 비틀비틀 거리는 한 남자가 보였다. 자세히 보니 그 사람은 바로 선배였다. 나도 모르게 선배를 따라갔다. 그림자만 밟아도 같이 걷는 기분이었으니까.


 그렇게 뒤에서 종종 따라가던 그 순간, 횡단보도 근처에서 승합차가 가속도로 달려오더니 그만 선배를 치어버리고 도망가버렸다.

 "선배!! 선배!!"

 나는 그를 향해  미친 듯이 뛰어갔지만 이미 선배는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길가에 홀로 남겨진 선배의 차디찬 시신을 붙잡으며 나는 펑펑 울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서 슬펐고 더 이상 사랑할 사람이 없다는 것에 가슴이 미친 듯이 아려왔다. 하지만 그때! 불현듯 떠오른 생각!



 '선배를 기계로 만들어 버리자!'


 최근에 나는 정부 지원금을 받으며 인간 사이버 모듈을 개발하고 있었다. 아직 인체에 실험한 적 없지만... 혹시 내 노력이 성공한다면 그를 영원히 내 곁에 둘 수 있잖아! 그런 생각이 들어서일까? 나는 그를 몰래 업고 실험실에 왔다.

  석 달간의 실험은 성공했고, 나는 실험실에서 내 반려자를 만날 수 아니 만들 수 있었다. 그를 영원히 살 수 있는 사이버 기계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매일매일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들로 프로그램화시켜 그에게 학습시켰다. 그렇게 나만의 '완벽한 남편'이 완성되었다.      


 까칠한 내 성격을 언제나 이해할 줄 알고, 화 낼 줄도 모르며 한 달에 한번, 혹은 두 번씩 랜덤으로 폭발적인 카리스마도 보여줄 수도 있다. 요리도 청소도 일도 게다가 잠자리까지 완벽하다. 게다가 이런 날 영원히 사랑해주고 날 떠나지 않는다. 완벽한 프로그램에 의해 움직이기에 완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하지만... 내가 원하는 완벽한 음식을 먹을 때면 괜스레 슬퍼진다. 내가 한없이 짜증내고 불평을 해도, 흥분 없이 차분하게 날 달래는 남편을 볼 때면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뒤로 꽁돈 챙기지 않고 내게 월급봉투 그대로 주는 남편,

 쇼핑할 때 지나가는 예쁜 여자에게 눈길 한번 안주는 남편,

 그저 내 얼굴만 바라보고 내 손만 잡으며 환하게 웃는 남편을 볼 때마다 지독하게 숨이 막힌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꼭 나를 2분 동안 안아주는 남자, 매일매일 색다른 이벤트로 나를 즐겁게 해 주려고는 남자......


 



 내게 완벽한 사람, 아니 완벽하게 설계된 사람이라서 더 슬프다. 세상에는 '이상형'이라는 말이 있다. Mr, right, Soul mate 등 갖가지 종류의 이상형을 나타내는 용어가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좇는 '이상형'은 말 그대로 '이상'에 그치고 만다. 처음에 흠이 없다 생각한 사람도 오래 보면 단점이 드러나고, 말다툼 한번 없을 것 같은 커플도 결국에는 전화기를 붙잡고 울면서 헤어진다. 언제나 이 세상에 없는 '이상형'을 만나기를 꿈꾸고, 만났다고 해도 '이상형'이 아닌 것을 알고 결국 실망하고 마는.... 그래서 이상한 것이 바로 사람이란 존재니까!


 누구도 100% 남자, 100% 여자를 가질 수 없겠지만 나는 100%의 남편을 가졌다. 그런데 왜 이렇게 그를 볼 때마다 화가 나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걸까? 나는 남편의 시스템을 더욱더 내 마음에 들도록 프로그램화시켰지만 그것은 언제나 한시적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또 숨이 막히고 만다.

 '도대체 왜 그런 걸까?'

이유를 찾고자 계속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한참을 생각했을까? 어렴풋한 대답을 알 수 있었다.


 '내 '이상'은 고정된 게 아니구나!'

 왜냐면 '이상'이란 건 마음 안에서 언제나 돌고 도는 거니까! 어제 좋은 게 오늘 싫을 수도 있고,  배 아프게 웃은 유머가 컨디션에 따라 기분 나쁘게 느껴질 수 있으니까.... 그 상태에서 '이상형'이라는 걸 만들려고 하다니 헛수고만 한 거다. 틀이 없는 상태에서 주조물만 순도 높이려 애쓴 거니까. 바보 같게도...


 결과적으로 아내와 남편, 부부가 평생 행복한 집을 만들기 위해서는 두 가지 선택을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100% 남편에 맞는 100% 아내가 있거나, 둘 다 인간적인 흠이 있어 서로 보완해주고 또 이해하며 살아가거나...


 하지만 나는 내 완벽한 남편을 흠 있게 만들고 싶지 않다. 언제나 나만을 사랑하고 날 위해 모든 걸 다 해줄 수 있는 그런 남편을 원한다. 그렇다면 어쩔 수밖에..



 나는 1년 만에 실험실로 향한다. 그리고 수술대에 올라선다. 나 스스로를 프로그램화시켜 100%의 아내로 만들 수 있는..  


 두렵기도 하지만, 동시에 흥분도 된다. 수술대의 환한 불빛 너머로 '즐거운 나의 집'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안에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언제나 행복한 미소를 띤 미미가 들어있다


 





- PD 입사 준비하던 시절에  썼던 글입니다.

  이걸 각색해서 2016년에  <드라마 스페셜 -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제목의 드라마로 만들었네요. 이상엽 손여은 박하나 김명수 이일화 정희태 옥태연 그리고 제 영원한 뮤즈인 송윤아 님이 나온 드라마에요^^ 이상형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면 좋겠단 취지로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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