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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스 Nov 17. 2020

내시경을 받다

위내시경 받고 왔음.

수면 내시경과 생 내시경이 있는 데 남자면 생이지! 하고 처음으로 생을 선택했음.

검사 끝난 지금, 다음 생에는 남자로 안 태어나기로 결심함.      


굵디 굵은 검정 호스가 내 입 구멍을 통해 십이지장까지 들어가는데...

정말 보아뱀 한 마리가 안에서 꾸물거리는 것 같아 구역질 나오고 눈물이 엄청 나왔음.

그래도 푸아그라 생각하며 참았음. 거위는 죽어서 큰 간 만들기 위해 평생 호스를 물고 산다는데 불과 3~4분만 참으면 되는 걸 뭘 그렇게 야단법석인가! 반문하면서 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검은 뱀을 견뎠음.    

 

 허나 십이지장인가 뭔가 지나갈 때... 나도 모르게 숨 막혀 살아보겠다고 죄 없는 간호사 멱살을 잡을 뻔했으나... 날 짓누르는 두 간호사의 완력에 그저 냉동 동태처럼 눈을 멀겋게 뜨고 화면 안에 내 식도를 바라볼 뿐이었음. 내시경에도 ‘현자 타임’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됨.     


 그렇게 파리가 앉든 말든 어물전 생선이 되어 옆으로 누워 세상과 도태되고 있는데 갑자기 반대편 침대 커튼이 걷히더니(아마 실수로 간호사가 안 닫은 것 같음) 우리 회사 여자 아나운서 한 분의 얼굴이 보였음. 그분도 입에 긴 호스를 문 채로 무기력하게 내 쪽을 보며 누워 있었음. 내가 애써 모르는 척했지만 그래도 그분은  심성이  너무 고우신지라 내가 선배랍시고 그 와중에 인사함. 인사를 안 받아줄 수 없어서 나도 고개를 까닥하며 답례했음. 둘 다 침 질질 흘리면서 눈물범벅된 채로... 그렇게 1분 넘게 어쩔 수 없이 서로를 바라보는데 서글퍼서 그런지 아니면 창피해서 그런지 눈물이 더 나왔음. 하지만 손이 묶여있는지라 닦아낼 수 없었음.

 ‘제발 오늘 모습은 잊기로 해요!’

회사에서 봐도 당분간 아는 척 안 하기로 무언의 약속을 하며... 우리는 새끼손가락을 힘겹게 올렸음.


 내시경이 끝나자 의사 선생님은 다행히 아무 이상 없다고 웃으면서 말씀하셨는데... 나는 그러면 건강한데 왜 남의 목을 그렇게 쑤셔댔냐고 따질 뻔했음. 하지만 의료진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지라 그저 흐르는 눈물을 의사의 차트에 소심하게 찍고 나올 뿐이었음.      


 개인적으로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으나 한번 즈음은 해볼 만한 경험이었다고 사료됨. 게다가 내 식도와 위와 십이지장은 상당히 예뻤음! 그것만으로 만족함.


P.S  그냥 심심해서 '하루 스케치' 한 번 써 봤어용.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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