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pport에 대하여...
오랜만에 동기 모임에 갔다. 벌써 40대 중반을 넘은 녀석들. 많이 늙었네. 오랜만에 만난 중년 남자들의 수다는 건강과 가족 얘기로 시작한다. 술이 서너 잔 들어가니 새로운 주제로 바뀌었다.
'미투', '괴롭힘'
이제 실장과 팀장이 된 놈들은 같이 일하는 후배들 대하기가 겁난다 고 한다. 과거 선배들은 이런 것에 부담 없이 일했을 텐데 자신들은 낀 세대라 힘들다는 거다.
어떤 놈은 혹시 실수할까 봐 아예 직원들과 술자리를 절대 갖지 않는다고 하고, 또 다른 놈은 혹시 오해 살까 봐 단 둘이는 절대 얘기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미친 거 아닌가?’ 한 조직의 리더가 그렇게 조직원을 못 믿고 두려워하는게 맞나? 리더가 맞나? 동기지만 참 짜증나는 인간들이다. 동기라는 명분 하에 우리들끼리만이라도 끈끈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난 그들이 싫다. 모든 것을 자기중심으로 판단하고, 옳다고 주장하는 중년 아재들. 나도 아재지만 이런 중년이 정말 싫다.
문제의 핵심으로 돌아가보자. ‘미투’, ‘괴롭힘’에 기본적 구조는 서로간의 관계에서 오는 트러블이다. 즉 친밀도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친밀도는 영어로 'Rapport'다. 친밀도가 높아지면 말과 행동의 제약이 적어진다.
내동기들과는 다른 아주 친한 동료가 있다. 그와는 서로 쌍욕도 하고 갈구기도 하지만, 우린 수치심을 느끼거나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 동기들 보다 훨씬 나중에 만났지만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공감하고 이해해가며 다투기도 또 위로하기도 했다. 상대의 발전을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상대의 무모함에 대해 따끔하게 비난하거나 충고하면서 신뢰가 쌓여갔다.
물론 일터에서 이런 관계 형성은 쉽지 않다. 팀장, 선배라는 서열의 힘, 권력이 형성되면 더욱 그렇다. 상사의 언어 폭력에 권력이 더해지면 후배의 상처는 더욱 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과는 반드시 가까워져야 한다. 인생의 반은 일이다. 서먹서먹한 관계로 소중한 삶의 시간을 보내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몇 년도안 서먹하고 건조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보다 몇 개월을 투자하더라도 Rapport를 형성하는 것이 서로의 정신건강에도 좋고 팀워크에도 좋고 성과는 두 말할 것도 없다.
단, 급하게 서둘러서는 절대 안 된다. "휴가 언제가?", "어디로 가?", "누구랑 가?", "남친? 엄마?"... 질문을 한 번에 쏟아부어서는 안된다.
"휴가 언제가?", "그래 재밌고 즐겁게 보내고 와~!" 며칠 지나고, "어디로 가?", "와 나도 가보고 싶었는데, 멋지다!" 또 며칠이 지나, "누구랑 가?", "그렇지. 여행은 동반자가 너무 중요하지~!"라고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차분히 시간을 갖고 친밀해져야 한다.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의 관계 형성 작업은 정말 쉽지 않다. 낯선 사람과 금방 사귈 있다는 사람의 말을 믿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모래성과 같다. 관계 형성에는 에너지와 시간이 많이 소모된다. 그 에너지의 원천은 '사랑' 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으로 만든 관계는 정말 튼튼하다. 어떠한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아주 튼튼한 그와 나의 교량이 된다. 그리고 그 교량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중간 점검해야 한다. 그 사람이 싫어지게 되면 무슨 말을 해도 싫어진다. 그 사람이 좋아지면 무슨 말을 해도 넘어갈 수 있다.
동기들에게 Rapport에 대한 얘기, 관계에 대한 얘기, 사랑에 대한 얘기를 해줘도 관심 없다.
"그럴 에너지가 있으면 주식 투자에 쓰지. 내가 미쳤냐?" 라고 말한다. 회사는 이런 놈들을 실장, 팀장 시키면 안 된다. 소중한 조직과 일을 맡기면 안 된다. 그냥 평생 삶의 노예로 살게 두어야 한다.
직원, 후배들과 위험한(?) 자리를 만들지 않는다고 위험을 피할 순 없다. 위험은 언제 어디서든 닥친다. 그리고 Rapport가 없으면 위험은 더 커진다. 후배들이 휴대폰으로 녹음을 하거나 메시지를 캡처할 것 같다며 두려워하면 안 된다. 그들의 마음 속 휴대폰 전원은 항상 켜져있다. 같이 일하는 동안 그들의 마음 휴대폰은 절대 피할 순 없다.
'튼튼한 관계의 다리'를 만들어 그들의 휴대폰에 '사랑의 메시지와 이모티콘'을 항상 남겨야 한다. 이것이 바보들이 말하는 위험(?)을 피하는 방법이다. 진정한 리더로서, 선배로서 인정받는 방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