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적 인재상의 문제점
순위 차이는 있지만 모두 비슷비슷하다.
‘주인의식, 전문성, 소통협력, 도전정신, 열정 ...’
취준생들은 들어가고 싶은 회사의 인재상을 보고 취업 준비를 한다. 그런데 이 인재상이란 것은 너무도 관념적이고 개념적이어서 취준생들은 모두 자신들이 소통도 잘하고 주인의식도 갖고 있으며, 도전적이고 열정적이라고 말하게 만든다.
"저는 주위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을 정말 좋아합니다."
"어떻게 좋아하죠?"
"서클 회장을 하면서 회원들과 여러가지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소통을 잘하고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었죠?"
"서클 맴버들끼리 다툰 적이 있었는데요. 잘 얘기해서 서로 화해하게 한 적이 있습니다."
'잘 얘기? 무슨 얘기를 한 걸까?'
'소통'이란 개념 하나를 구체화하기위해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개념은 모호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제대로 알기위해서는 반드시 구체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채용 면접은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 개념을 구체화 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회사나 취준생이나 모두 대략 그러려니 하면서 면접을 마치지만 개운치가 않다.
인재상은 개념이다. 개념은 우리의 눈을 속인다. 합리적이고 함축(효율)적인 것으로 보이나 실질을 건드리지 못한 채 서로가 대충 통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서강대 철학과 최진석 교수는 개념을 이렇게 표현했다.
개념이란...
이 세계에 어떤 대상에 대해서 공통된 것만 포착해 놓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개념을 '파악' 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 세계에는 공통된 것만이 아니라 그 개념 안에 들지 못하는 나머지 것들도 많다. 개념은 제한적이다. 개념은 이 세계를 그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이 세계에 어떠한 유형을 어떤 특정한 형식으로 잠시 보여줄 뿐이다. 그러나 개념은 객관적이고 보편적이어서 힘을 갖고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려고 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신념의 형태로 남겨지면 이념이 되고 가치가 된다. 이념과 가치관은 개념의 형태로 존재한다. 실제 존재가 아니다. 이상적인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공통의 것만으로 뽑아 놓았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인정 받는다. 객관적 보편적인 힘을 갖고 있어서 그렇게 해야 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자신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다. 자신을 숨기게 만든다.
우리 자신, 우리 자체는 개념화 될 수 없다. '일할 때 자기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노래!' 이것이 진정 자신 안에서 나오는 것이며, 자유가 되고 상상이 되고 창의가 된다. 일상에서의 무의식 상태의 모습! 이것이 우리 자신이다.
회사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들 혹은 자신들이 원하는 인재상이란 걸 만들어 놨다. 그런데 이 인재상은 개념일 뿐이다. 모호할 수 밖에 없다. 원하는 것을 찾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럴싸해 보일 뿐, 진짜가 아니다. 취준생들은 이 모호함에 자기자신을 짜 맞춘다.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있고 실제 자신들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인재상이란게 쓰이지 않던 옛날이 더 좋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때는 그냥 학벌이나 관상 등 이상한 잣대들이 판치던 시절이었으니까. 이것도 솔직하다고 할 수 없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만나 정들면서 살아온 우리 부모들과 유사하다.
인재상은 남녀가 자신의 이상형을 정해두는 것과 같다. '난 능력 있는 남자가 좋아.', '난 예쁜 여자가 좋아.'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상형과 결혼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상형은 말그대로 이상일 뿐 실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인재상도 이상일 뿐 실제 존재가 아니다.
아래 두 회사의 인재상을 보자.
삼성전자
Create, Learn, Enjoy
세상을 혁신하고, 새로운 가치를 전달합니다.
끊임없는 도전과 성장을 응원합니다.
즐거운 일터와 행복한 삶을 지원합니다.
SK그룹
경영철학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일과 싸워서 이기는 패기를 실천하는 인재
경영 철학에 대한 확신과 VWBE를 통한 SUPEX 추구 문화로 이해관계자 행복 구현
일과 싸워서 이기는 패기를 실천하는 인재
우리나라 가장 크고 잘 되는 두 기업의 인재상이다. ‘창의혁신, 도전, 확신, 패기,...‘ 마찬가지로 개념적 단어들이다. SK는 VWBE, SUPEX라는 개념 약자까지 등장한다.
회사는 굉장히 다양한 사람을 필요로 한다. 몇가지 개념으로 인재를 정의하는 것은 굉장히 무모한 짓이다. 특히 큰 회사일수록 더 그렇다. 그러나 큰 회사들이라고 해도 자신들이 갖고 있는 컬러는 분명히 존재한다. 이 것을 조직문화라고 한다.
조직문화 관점에서 두 회사의 인재상을 보니 재미있는 점을 발견했다. 삼성전자와 SK는 자신들이 갖고 있는 조직문화나 개성과 다른 인재상을 정한 듯하다.
누구도 삼성전자에 가면 '도전하면서 즐겁고 행복하게' 일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하지 않는다. 반도체와 휴대폰 시장에서 세계적인 성공을 이루며 높은 보수와 프라이드로 엄청 빡샘을 견뎌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회사는 근태관리 시스템과 제도를 통해 강제적으로 직원들의 빡샘을 줄여나가고 있다. 노조 활동 방해로 감옥에 가는 삼성전자 임원을 보면 '즐겁고 행복하게'라는 말은 이 회사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반면에 SK는 경영철학에 대한 확신으로 일과 싸우는 패기를 강조하고 있다. '정신무장과 빡세게 일함'을 추구하는 가치로 보인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SK는 M&A에 강한 회사다. 치열하게 경쟁하기 보다는 아주 좋은 회사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성장한 회사다. 그래서 SK는 빡세게 일하는 것보다 Smart함에 더 가깝다. 채용도 SKY출신을 더 선호하고 실행보다는 기획에 더 중심을 두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삼성은 지방대 출신도 많고, 기획보다는 실행과 관리에 더 중심을 둔다.)
현재 조직문화나 회사이미지로 볼 때, 삼성전자와 SK는 서로 상대의 인재상을 바꾸는 것이 더 잘 어울린다. 이러한 미스매칭은 현실과 다른 희망사항, 꾸미려고 하는 마음이 작용하며 발생한 부작용이다. 취준생들도 다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일단 취직을 해야 하기때문에 회사가 제시하는 인재상에 자신을 맞춰준다. 철저하게 개념적 화장을 한다. '혁신, 창의, 도전, 열정, 패기, 소통'이란 화장품으로 자신을 꾸민다.
회사와 취준생은 서로를 위장한(속이는) 상태에서 근로계약을 하게 된다. 일을 하면서 서서히 본색이 드러난다. 서로 속았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입사 초기 퇴직율이 높은 것이다. 삼성전자 선배들은 '요즘은 열정을 갖고 빡세게 일하는 친구가 없어.'라고 생각하고, SK 선배들은 '요즘 신입들은 Smart한 아이들이 별로 없어.'라고 말한다.
취준생들은 '창의, 도전? 그런 건 믿지 않아. 그냥 우선 합격이 먼저야.' 라고 생각한다. 이렇다 보니 채용 때 좋은 평가를 받았던 지원자가 입사 후에도 좋은 평가를 받는 우수직원으로 이어진다고 장담할 수 없다..
우리 좀 더 솔직해지면 안되는 걸까? 개념짓지 말자! 그냥 솔직하게 우리는 누구이며, 누가 필요하며, 어떤 것이 좋은지 한번 얘기 해보자.
무식할 정도로 자신의 일에 매달리며,
한번이라도 더 새로운 테스트를 해보려는 개발자
불량품을 하나라도 더 없애려는 생산자
한 개라도 더 팔려는 영업사원
꼼꼼하고 논리적인 보고서를 잘 쓰는 기획자
아니면 여기저기 집적거리며 투자처나 구매처를 찾는 늑대같은 사람은 아닌지..
도덕적이고 성실한 것보다는 조금은 교활하고 영리한 걸 더 좋아하는 건 아닌지..
아니면 진짜 아무 생각 없는지..
어떤 것이라도 좋다. 솔직하다면 무엇이든 좋다. 개념적인 인재상으로 서로를 속이는 것은 이제 그만 때려치우자. 회사와 취준생은 서로를 진심으로 표현하고 알아간다면, 진짜 맞는 짝을 찾을 확률이 높아질 것이고, 오래오래 서로를 의지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금실 좋은 노부부처럼…
Falling in love is easy but staying in love is very spec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