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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꺾이지 않는 버들 Mar 29. 2023

하다하다 한일전

내가 가장 오래 몸 담고 있는 풋살클럽에서 일본 오사카로 친선경기를 가게 됐다. 오사카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나를 포함한 10명의 선수들은 비장했다. 한일전은 가위바위보도 이겨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 팀은 필승의 각오로 전의가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3박 4일 일정에서 이틀 동안 3개의 일본 팀과 경기를 치렀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오사카 대참사'였다.


경기는 6대 6 풋살로 진행됐다. 첫 번째 상대팀은 일본 4부 리그 오사카시 1위 여자축구팀이었다. 연령대는 13살 중학생부터 29살 직장인까지 이뤄져 있었다. 일본팀을 꺾고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외치겠다는 다부진 세리머니까지 준비했던 나는 좌절했다. 아니 좌절도 사치로 느껴졌다. 그들의 플레이는 지금까지 봐왔던 그 어떤 팀들보다 아름다웠다. 개개인의 볼 소유, 탈압박, 돌파 드리블 능력은 물론이고 절묘하게 주고받는 패싱에 넋을 잃었다. 애초에 게임 상대가 안 되는 팀이었다. 원정 첫 경기의 부담과 풋살공이 아닌 축구공을 사용한다는 핸디캡이 있기는 했지만, 그런 변명이 통할 수 없는 경기력을 그들은 보여줬다. 여고생팀 정도로만 듣고 갔던 우리는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다. 우리 팀도 나름 지역에서 실력으로 밀리지 않는 팀이었음에도, 그들 앞에서는 아기 걸음마 수준에 불과했다.


경기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리고 일본팀을 향해 레이저를 쏘던 팀원들의 눈빛은 어느새 선망의 눈빛으로 바뀌었다. 상대팀이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실력이었다. 경기 중에도 절로 "와~" "스고이~"(아는 일본어 감탄사가 이것밖에 없어서)를 연발했다. 자존심 따위? 개나 줘버렸다. 인간이 어찌 신과 대적할 수 있겠는가. 대등한 경기가 되지 않아서 나중에는 일본팀과 섞어서 '친선'으로 뛰었다. 나는 그날 '풋살의 천상계'를 목격했다.


이튿날 두 번째 경기 상대는 진짜 취미로 풋살을 하는 팀이라는 에이전시의 말을 듣고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운동장에 나갔다. 쳇, 에이전시의 말은 '우소'(일본어로 거짓말, 첫 번째 경기 때 일본팀 친구들에게서 배운 단어)였다. 아마추어라더니 죄다 선수급이었다. 일본팀에서 보통 정도의 실력을 가진 선수가 우리 팀 에이스의 실력과 비등했다. 하루 전 풋살의 천상계를 봤다면, 둘째 날에는 제대로 '현타'를 맞았다. 내가 꿈꾸는 드리블인 전력으로 달리면서 롤링을 하는 기술은 그들에겐 기본 탑재 능력이었다. 볼을 몰다가 세우고, 접고 다시 달리며 티키타카가 딱딱 맞는 2대 1 패스 앞에서 우리 팀은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실력 차이가 너무 컸다. 결국 첫날처럼 한국, 일본팀원을 섞어 '한일 친선 경기'로 진행했다. 실력 안배가 된 후 게임은 즐거웠다. 그래도 마음 한편은 분했다. 일본팀에게 이렇게 밀리다니! 일정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박살'이 났다는 이야기를 회사 동료에게 했더니 "졌으면 타고 왔어야지"라고 했다. 웃었지만 웃는 아니었다. 우리 DNA에는 뜨거운 항일정신이 흐르고 있으니까.



 

우리 팀의 패배는 곧 한국의 생활체육 민낯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생활체육 강국인 일본은 아이가 어릴 때부터 축구, 야구, 테니스, 농구 등 온갖 구기종목을 가르친다. 그중 자신에게 맞는 스포츠가 있으면 동네 어디서든 뛸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오사카시를 돌아다니면서도 풋살장, 농구장, 테니스장 등을 여러 곳 목격했다. 두 번째 경기가 있었던 풋살장도 지붕이 있는 돔 형식의 풋살장으로 4개의 구장으로 이뤄져 있었다. 한국에서는 지붕이 있는 풋살장은 찾기 힘들다. 그 구장의 맨 왼쪽에서는 4~5살 정도로 보이는 꼬마들이, 두 번째 구장에서는 20~30대로 보이는 청년들이, 세 번째 구장에서는 머리 희끗한 어르신들이, 맨 끝의 구장에서는 우리 여성팀들이 공을 찼다. 세대를 넘는 생활체육의 현장이었다. 

함께 경기를 했던 선수들에게 풋살을 언제부터 했는지 물어보면 대부분 5살, 6살이었다. 20살 때 시작했다는 친구가 늦은 편에 속했는데 그 친구의 현재 나이가 29살. 풋살 경력이 10년에 가까웠다. 이러니 당할 간이 있으랴. 여자들도 어릴 때부터 공을 차고,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은 그들을 보니 미치도록 부러웠다.

학교에 가면 국영수만 머리에 채우기 바쁘고, 체육은 엘리트 과정만 있는 우리 사회가 이 점은 반드시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스포츠를 평생의 운동으로 삼게 하는 일이 개인의 행복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일본은 일찍이 안 것이다. 나처럼 나이 들어서 평생 공 차겠다는 포부를 가져봤자 이미 굳은 몸은 따라가는 것에 분명 한계가 있다.


이번 일본과의 친선전에서 우리는 '친선'만 제대로 하고 왔다. 훗날을 기약하며 SNS 아이디를 공유한 친구들과 한국에 돌아와서도 연락을 했다. 언젠가 그들이 한국 원정 경기를 오는 날에는 태극전사의 무서움을 제대로 보여주리라. 기다려라, 오사카!


  

노을이 지는 오사카의 하늘 아래서 우리는 최선을 다해 싸웠다. '쪼랩'을 상대로 최선을 다해 싸워준 오사카시 선수들에게도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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