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꺾이지 않는 버들 May 31. 2023

'선수'라면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

선수는 대회에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회에 나가서 죽자고 뛰어봐야 나의 한계를 확인할 수 있고, 나의 한계를 넘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지난봄 시축구협회장배 대회를 마친 뒤 나는 무조건 대회에 나가야만 한다는 평소의 소신에 물음표를 던졌다.

시축구협회장배 대회는 아마추어계에서는 제법 큰 대회에 속한다. 시축구협회에 등록된 6개의 여성팀이 리그전으로 본선을 치렀다. 우리 팀은 본선 두 게임에서 모두 패하며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패배도 뼈아팠지만,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미묘하게 마음을 끓였다. 그건 '선수는 대회에 나가야 한다'라는 나의 강박적 신념에서 비롯됐다.


몇 달 전 축구팀의 감코진이 바뀌었다. 새로 부임한 감독님은 인품, 실력 어느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훌륭한 분이셨다. 새 감독님은 우리 팀원에게 즐기는 축구를 하자고 당부했다. 감독님이 말씀하실 때마다 고개를 끄덕끄덕거렸다. 주옥같은 감독님의 멘트마다 웃고 감동하고 감탄했다. 나는 감독님을 전적으로 신뢰했다.

연습 경기나 친선 매치에서 감독님은 나를 포워드, 윙어, 미드필더로 뛰라고 명하며 내게 맞는 포지션을 찾아주려고 하셨다. 열심히 공격라인에서 뛰었다. 나도 스스로를 '공격형'이라고 정의 내리고 있었다(물론 공격형이 곧 '골'격형은 아니다). 

운동장 여기에도 저기에도 넣어보며 감독님이 결정한 나의 포지션은 사이드백이었다. 대회를 일주일 앞두고 내려진 지령이었다. 사이드백이라고? 수비를 하라고?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풋살을 할 때도 상대 선수를 제치고 골대를 향해 돌진하는 스타일인 내가 수비를 한다고? 자신이 없었다. 그렇지만 나를 지켜본 감독님의 깊은 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팀을 위해서도 젊고 빠른 친구들이 공격에 서고, 나는 철벽수비를 하면서 팀의 방패가 되어야 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벼락치기를 하듯, 개인레슨 코치님들에게 사이드백 자세와 기술을 속성으로 배웠다. 팀의 1인분이 너무나 되고 싶었다.




두둥. 드디어 대회가 열리는 날의 태양이 밝았다. 이른 아침 개회식에 참석했다. 종합운동장 보조구장에 모인 수백 명의 축구인들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쿵쾅거렸다. 아, 내가 선수(비록 아마추어이지만)로 이들 속에 있구나. 어느 때보다 선수라는 자긍심이 샘솟았다. 모든 개회식 행사가 끝나고 우리 팀은 경기가 펼쳐질 운동장으로 이동했다. 예선 2게임은 홈그라운드전이었다. 익숙한 구장은 우리 팀에게 유리한 조건이었다.

축구는 역시 종료 휘슬이 불려야만 그 결과를 알 수 있는 스포츠다. 첫 상대팀은 약체라고 알았는데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비등비등 경기를 이어가다 역전골을 먹고 지고 말았다. 두 번째 팀은 디팬딩 챔피언팀이자 올해도 강력한 우승 후보인 팀이었다. 이 경기는 처참했다. 1 대 3으로 패배의 아픔을 삼켰다.


팀이 고전분투할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냐고? 축구화 끈을 묶었다, 풀었다를 반복하다가 두 번째 경기 종료 7분여를 앞두고 투입됐다. 그것도 윙으로. 어리둥절 끝판의 날이었다. 팀이 생각보다 수세에 몰리는 것을 봐서인지 감독님은 선발로 나간 선수들을 교체하려고 하지 않았다. 교체하면 더 박살이 날까 두려웠던 것일까. 다음 타임에 들어갈 거니까 몸 풀고 준비하라고 하는 말만 내게 반복하셨다. 나는 벤치에서 몸을 풀었다, 몸이 풀렸다를 반복하다가 경기가 더 이상 뒤집을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이 되자, '네 마음대로 해봐'라는 말과 함께 교체 투입됐다.

일단 뛰어야 했다. 죽자고 뛰었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게 죽자고 뛰는 거니까. 드디어 내게 공이 왔다. 나는 공을 받고 사이드에서 드리블을 치고 나갔다. 그런데 상대 선수가 전속력으로, 그것도 나를 향해 직진으로 달려왔다. 나는 그 선수의 팔꿈치에 코를 가격 당하고 그라운드에 쓰러졌다. 코뼈가 부러진 것처럼 아팠다(다행히 부러지지는 않았다). 시간이 없는데. 일어나야 하는데.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쓰러진 몇 초 동안 경기장 밖에서 감독님의 고함 소리, 그라운드에서는 동료들의 걱정 섞인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일어났다. 만회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고 일어났는데. 삐-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다.


이 대회는 나에게 엄청난 마상(마음의 상처)을 남겼다. 회사에 휴가까지 내고 평일 내내 연습을 하며 대회를 준비했다. 팀에 필요한 선수라고 얘기하신 감독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팀의 1인분이 반드시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축구는 변수의 변수의 변수의 스포츠였다. 그 변수에는 선수 명단도 들어간다는 것을 나는 간과했다.

그렇다. 나는 뛰지 못해서, 많이 뛰지 못해서, 잘 뛰지 못해서 화가 났다. 대회 당일 언제 투입될까 마음을 졸이며 벤치를 지키고 있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승리는 물 건너간 상황에서 '경험치' 획득을 위해 교체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마음은 어느새 간장종지만 해져서 감독님의 결정을 희망고문이라고 단정 지어버렸다. 교체 투입된 상황에서도 운동장에 낙엽처럼 나뒹굴던 나의 꼬락서니가 창피했다. 축구 인생 가장 최악의 날이었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화나게 하는 걸까. 며칠을 혼자 끙끙대며 고민했다. 희망고문만 하고 나를 믿지 못한 감독님? 감독님 옆에서 선수 명단에 훈수를 두는 팀원들? 절호의 찬스를 날려버린 괴물 같은 상대팀 선수? 속성이지만 일주일간 연습한 수비 연습이 아까워서?

나를 괴롭게 한 건 '선수는 대회에 나가야 한다'라는 내 신념이었다. 결국 대회에 나가야 한다, 뛰어야 한다는 강박이 나의 마음을 칭칭 옥죄었다.

'선수는 대회에 안 나갈 수도 있어'라고 생각을 해봤다. 마음이 가벼워졌다. 상황이나 환경은 내가 바꿀 수가 없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나 자신뿐이다. 대회에 안 나갈 수도, 못 나갈 수도 있는 게 선수라고 생각하니 부글부글 끓었던 마음이 잔잔해졌다. 생각의 전복이 가져온 강 같은 평화. 축구는 혼자 하는 운동이 아니다. 선수뿐만 아니라 감독, 코치님도 우리 팀이다. 그리고 축구에서 감독의 결정은 결정적이며 절대적이다. 선수는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것. 선수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인 것이다.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이날, 나는 선수에 더 가까워졌다. '선수다운' 마음가짐으로.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결정적 찬스에서 나는 쓰러졌다. 쓰러진 몸뚱이보다 일으켜기 어려운 건 마음이었다. 늘 가장 어려운 건 내 속에 있는 것이다.



 

이전 19화 하다하다 한일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