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나간 협회축구대회에서 행운의 여신은 우리 회사팀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16강전 상대팀이 기권을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8강전에 진출한 것이다. 대회날 아침 직접 차를 몰고 2시간 거리의 경기장으로 향했다. 도착 시각은 경기 시작 3시간 전. 예선 날처럼 교통 변수에 발목을 잡히지 않기 위해 이날은 부지런을 떨었다. 팀원 중 가장 먼저 운동장에 도착해 상대팀들의 경기를 지켜보았다. 어쩌면 4강, 결승전에서 만날 수도 있는 팀들이었다.
확실히 8강전 진출팀들은 달랐다. 예선전에서는 축구를 한다기보다는 공차기를 한다는 느낌도 없지 않았는데(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이들은 평소에는 숨쉬기 운동만 하던 평범한 직장인들이다.) 8강전의 선수들은 패스 플레이도 하고 전략적 움직임도 보여줬다. 무엇보다 퍼스트터치가 달랐다. 높게 날아오거나 낮게 굴러오는 공을 순두부터치로 잡는 발놀림에서 '공을 좀 찬다'는 여유가 느껴졌다. '아 잘하네...'라는 감탄은 '아 큰일 났네...'라는 걱정으로 바뀌었다.
경기 시간이 가까워지고 우리 팀원들도 속속 집결했다. 감독 선배와 주장 후배가 짜온 포지션 전략은 '4-3-1-2'. 나는 예선전과 마찬가지로 왼쪽미들 포지션을 맡았다. 공격보다는 수비에 비중을 두고 볼이 떨어졌을 땐 바로 SS(세컨드 스트라이커)에게 연결하는 게 내게 내려진 임무였다. 팀토크를 한 뒤 삼삼오오 모여 몸풀기 운동을 했다. 팀원들과 패스를 하며 실없는 농담도 주거니받거니 했지만, 긴장은 풀리지 않았다. 심장은 점점 더 터질 듯 두근거렸다. '이것이 8강의 무게감이구나'. 비록 아마추어 대회이지만 내가 느끼는 긴장도는 월드컵 국가대표 저리 가라였다.
8강 진출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부서 선후배들이 응원을 왔다. 플래카드까지 예쁘게 만들어서 거리가 먼 경기장까지 와 준 다정한 마음이 고마웠다. 응원단 덕에 팽팽해졌던 긴장감도 조금 풀렸다. 여기까지 온 게 어디냐며 즐기고 오라는 선배의 당부에 힘을 더 냈다.
드디어 경기 시작 휘슬이 올렸다. 상대팀은 매해 출전하는 강호였다. 결과부터 말하자만 2대 0 패배. 잘했다, 상대팀이. 상대팀 공격수들의 티키타카는 아름다웠다. 2골 다 절묘한 패스플레이로 넣은 빌드업의 승리였다. 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경기였다. 우리 팀은 미들에서 공을 배급해 주던 주전선수가 예선전에서 당한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하는 바람에 중원에서 전방으로 공을 끌고 나가는 일조차 힘에 부쳤다. 최선을 다했지만 졌다. 명백한 '졌잘싸'였다.
상대팀은 여자선수가 출전한다는 것에도 전략을 짠 것 같았다. 예선 때처럼 몸싸움을 붙지도 않고, 아예 내 주변으로 오지도 않았다. 밀리면 낙엽처럼 떼구루루 구르면서 파울이라도 유도하려고 했던 얄팍한(?) 전술은 통할 기회조차 없었다.
공이 내게 오는 경우도 많지 않았다. 오른쪽 사이드로 공이 주로 이어져서, 왼쪽 사이드는 계속 비었다. 나는 공을 발에 대보지도 못한 채 죽자고 뛰었다. 공이 날아오면 반드시 잡겠다는 각오로. 전반전에서 한 골을 먹히고 들어온 뒤 팀 전략은 '닥공(닥치고 공격)'으로 방향을 틀었다. 나도 후반전에서는 공격모드로 전환했다. 드디어 상대팀 선수가 놓친 볼이 내 쪽으로 흘러왔다. 인사이드로 공을 잡았다. 순간 뒤에서 상대 수비수가 돌진하는 것이 보였다. 공을 몸 쪽으로 긁는 동시에 몸의 방향을 돌린 다음 사이드로 잽싸게 패스했다. 경기장 밖에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그 장면이 머릿속에 슬로모션으로 아직 남은 것을 보면, 스스로도 좀 뿌듯했던 플레이가 아닌가 한다.
경기는 끝나고 팀은 졌다. 아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대회가 진행되는 3주간 팀원들끼리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는 끈끈한 시간을 보냈다. 사내에서는 데면데면했던 이들이 공 하나로 뭉쳤다.
'축구인력의 법칙'. 공을 중심으로 우리는 서로를 끌어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