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웠던 협회축구대회의 열기는 가고 남은 건 '보잘것없는 실력'을 확인하는 시간. 대회가 끝나면 나의 단점이 무엇인지 여실히 깨닫게 된다. 협회축구대회에서 나는 남자선수들 사이에서 뛰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순발력이 가장 부족했다. 공을 잡으면 다음 동작인 드리블, 패스, 슈팅 등 2차 동작으로 연결해야 하는데 자꾸 한발 늦었다. 축구에서의 순발력은 단순히 빨리 달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공을 치고 나가거나 페이크 동작을 할 때, 순간적인 속도변화를 잘 주는 것이 축구에서 요구하는 순발력이다.
드리블 레슨을 받을 때였다. 시저스나 스텝오버를 한 뒤 공을 아웃사이드로 치고 나가는 동작을 훈련했다. 난 분명히! 코치님이 알려준 대로 따라 했는데, 내 동작은 어딘가 고장이 난 듯 어설펐다. 고구마 100개를 먹은 듯 답답했다. "전 왜 코치님처럼 폼이 나지 않는 걸까요?" 제자의 우문에 돌아온 코치님의 현답은 "스피드 변화 때문이죠".
치달(치고 달리기)은 드리블이지만, 드리블이 치달은 아니다. 드리블은 페이크 동작을 내포한다. 상대 선수를 제치는 기술인 시저스와 스텝오버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속도변화다. 공을 끌고 가는 시작 동작에서는 천천히, 기술 동작에서는 빠르게 '타당'하고 밀고 나가야 상대를 확실하게 속일 수가 있다.
나의 몸뚱이는 '변화'를 싫어했다. '슬로우-슬로우-퀵-퀵'하면 되는데 '스으을로오우우-스으을로오우우`만 반복했다. 성격은 급한데 몸은 왜 느긋한가. 미스터리 그 잡채다.
그러던 어느 날, 몸이 변화했다. 환골탈태, 일취월장, 개과천선(?)했다. 비록 남에게 보여주기에는 미약한 변화이지만, '타당'하는 순간을 경험한 것이다. 거듭하고 거듭했던 훈련 끝에 나는 거듭났다. 변화의 경험은 감각적인 것이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몸의 감각. 나도 모르게 '절로 나오는 순간'을 획득하는 것. 축구는 그런 감각이 쌓이는 스포츠다.
내가 변할 수 있었던 건 코치님의 조언 덕분이었다. 나는 드리블을 할 때 생각이 너무 많았다. 가는 방향, 기술의 선택, 치는 타이밍을 '생각하고 행동'했다. 코치님은 이런 성향을 알아보시고 "정답은 없다"라고 말했다. 드리블에 정답은 없다. 생각나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당부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난 뒤 가슴을 죄어오던 어떤 긴장감이 누그러졌다. 긴장감이 간 자리에는 자신감이 자리 잡았다.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은 보다 자연스러운 동작을 불러왔다.
에필로그.
여전히 나의 드리블 속도변화는 미미하다. 하지만 안다. 내가 어떤 감각을 익혔다는 것을. 그 감각은 '정답은 없다'라는 의식의 자유가 불러온 결과다. 드리블이든 슈팅이든 기술적인 부분에 정답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당연히 교과서적 동작은 존재한다. 내 마음에 자유를 부여해야 '정답'에 가까운 동작이 나온다는 말이다. 선수 개인의 기술 동작부터 팀의 전략까지, 축구는 정답이 없는 스포츠다. 모두가 다른 선수, 다른 팀이다. 각자에 맞게 정답을 입히면 된다.
생은 환희로만 가득 차지 않는다. 상실과 우울, 실수와 후회, 배신과 증오가 예고편 없이 라이브를 켠다. 그럴 때마다 축구가 나를 일으켜 세웠다. 골대를 향해 드리블을 하듯, 맹목적으로.
축구도 인생도 정답은 없다. 그 정답 없음 사이를 누비며 자유롭게 뻥 찰 것이다.
오늘도 어제처럼, 내일도 오늘과 같이. 나의 플레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시 훈련의 계절이다. 5년간 공을 차며 내 다리에도 자잘한 근육이 붙기 시작했다. 나는 세상에서 나의 다리가 가장 예쁘다. 튼튼하고 든든한 나의 두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