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계절은 어김이 없다. 어느새 시린 공기는 물러나고 이는 바람이 몰랑몰랑하다. 겨우내 팀 훈련에 매진했던 우리 축구팀은 4월 대회를 앞두고 두 개의 여성팀과 친선경기를 치렀다.
예능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이 방영된 뒤로 축구에 관심을 가지는 여성들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아마추어 여성축구팀은 많지 않다. 풋살팀이 아닌 제대로 조직을 갖춘 여성축구팀은 지역마다 손에 꼽을 정도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축구장은 대부분 남성팀들이 독식하고 있다. 지자체에 등록되지 않은 여성축구팀들은 운동장을 빌리기 어려워서 대학교 운동장이나 사설 운동장을 대여하는 게 현실이다.
몇 주 전 시축구협회 신년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단상 위에 걸린 현수막에는 무려 83개의 아마추어 축구팀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 많은 팀들 중에 남성팀이 77개, 여성축구팀은 6개에 불과했다. 나는 인구 100만이 넘는 이른바 '특례시'에 살고 있다. 이렇게 큰 도시에 여성축구팀의 비율이 전체 축구팀의 10%도 안다. 베알이 꼬였다. '이 재미있는 걸 남자들끼리만 하고 있었네?'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축구협회는 보수적이라서 시축구협회에 새로 가입하려면 회원들의 찬반 투표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여성축구팀이 새로 가입하는 것은 더 힘들다는 이야기도 우리 팀 회장님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아니, 여성축구팀 육성에 앞장서도 모자랄 판에 팀 가입부터 힘들게 한다고? 너무하네!'라는 반감이 들었다. 친선경기 이야기를 하려다 여성축구팀 숫자 이야기로 샌 이유는 여성축구팀이 그만큼 적으며 그래서, 여성축구팀과의 친선매치는 소중하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자,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봄이 왔고, 우리 팀은 두 개의 여성축구팀과 친선경기를 치렀다.
첫 경기 상대는 지역에서 나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여성축구클럽이었다. 상대팀 구장으로 초대받은 원정경기였다. 토요일 아침부터 운동장에 모인 양 팀의 선수들에게서는 A매치 버금가는 긴장감이 흘렀다. 각 팀끼리 몸을 푼 뒤 경기가 시작됐다. 총 3 쿼터(20분씩)를 모두 뛴 나의 포지션은 왼쪽 윙, 오른쪽 윙, 포워드였다. 쿼터마다 다른 포지션으로 뛰게 된 건 새로 부임한 감독님의 지시였다. 상대팀은 선출이 4명이나 되었다. 우리 팀은 선출이 없었지만 든든한 수문장 골키퍼가 있었다. 선수 구성만 보면 밀릴 수밖에 없는 경기였지만 골키퍼의 무시무시한 선방과 열심히 뛴 선수들 덕에 결과는 2대 1패배. 졌지만 잘 싸운 경기였다.
두 번째 경기는 우리 구장으로 초청한 안양●●팀과 치렀다. 안양팀은 선수 연령층이 대부분 20~30대인 '젊은 피'의 팀인 데다가 선출 느낌이 나는(몇 명이 선출인지 구체적으로 확인하지는 않았다) 선수만 절반이 넘는 듯했다. 4 쿼터로 진행된 경기에서 우리 팀은 2골을 넣었고, 상대팀은 6골? 7골? 정도를 넣은 것 같다. 하도 골을 많이 먹혀서 나중에는 골 수를 세는 것도 포기했다. 완패였다. 이 경기에서 나는 2 쿼터와 4 쿼터에 출전했는데 2 쿼터 때는 오른쪽 윙을, 4 쿼터 때는 왼쪽 윙을 하다 감독님이 갑자기 MF로 들어가라고 하셔서 중원에서 뛰었다. 미들 포지션이 익숙하지 않은 나는 우왕좌왕. 여기로 저기로 헉헉대며 뛰어다녔다. 경기 막판에 골문 앞에서 골을 넣을 찬스가 있었는데 하필 공이 오른발에 걸렸다. 오른발로 찬 공은 비실비실 날아가 상대 골키퍼의 손에 착 안겼다. 좌파인 내 발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여성팀과의 매치에서 우리 팀은 많은 것을 확인했다. 체력도 부족했고 기술도 부족했고 호흡도 맞지 않았다. 포지션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다. 오합지졸이었다. 감독님은 이제부터 만들어가면 된다고 하셨다. "아마추어 축구에서 가장 무서운 건 악착이다. 우리 팀이랑 붙는다고 하면 상대팀이 고개부터 절레절레 젓게 되는 팀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도 마음속으로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내가 축구를 하는 이유는 승리를 위해서가 아니다. 물론 이기면 기분이 좋다. 하지만 상대를 끈질기게 쫓고, 공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 과정에서 더 희열을 느낀다. 우리는 국가대표가 아니다. 국가대표는 아니지만 국가대표의 마음으로 뛰는 선수다. 선수의 기본은 멈추지 않는 열정이 아니겠는가.
3월 두 여성팀과 볼을 두고 치열하게 다퉜다. 죽자고 달리고 발에 걷어차이고 몸싸움에 밀려 쓰러졌다. 그래도 선수들은 오뚝이처럼 일어나 골대를 향해 뛰었다. 드넓은 운동장에서 22명의 여자들이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는 장면은 웅장했으며 뭉클했다. 경기가 끝난 뒤 언제 '싸웠냐는 듯' 수줍게 웃으며 악수를 하는 모습은 또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여자들도 싸우면서 큰다. 여성팀과의 매치를 통해 우리 팀도 개개인의 선수도 성장했다. 어제보다 한 발 더.
안양팀과의 친선 매치 전 인사를 나누는 모습. 여성팀들이 더 많이 생겨서 여성 아마추어 리그까지 생기길 바라는 건 내 생에는 불가능한 꿈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