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듬뿍 담긴
아빠는 특별한 날에 편지를 써주셨다. 생일이나 취업, 기념일과 같을 때 종종 써주신다. 그렇다고 해서 엄청 로맨틱한 분은 아니시다. 약간의 시크함과 귀여움 그리고 재치도 갖고 계신 멋진 분이시다. 아빠의 영향 때문인지 동생들이랑도 자주 편지를 쓴다. 편리해진 세상에, 이메일이나 카톡으로 보낼 법도 한데 동생들은 항상 손으로 쓴 편지를 줬다. 나도 그렇고 엄마도 그렇다.
편지는 시작부터 특별하다. 주는 이를 생각해 편지지를 고르는 그 순간부터가 시작이다. 아니, 편지를 주겠다고 마음먹은 그 순간부터다. 그때부터 내 머릿속은 그 사람으로 가득 찬다. 아빠는 내게 편지를 줄 때면 내 생각이 많이 난다고 하셨다. 이제야 그 이유를 조금 알 것 같다.
곧 있을 절친한 친구의 생일을 기념해 편지지를 사러 갔다. 많은 편지지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하나를 골랐다. 집에 들어와 편지지를 펴 놓고 생각을 하다가 새삼 편지의 위대함(?)을 느꼈다. 그리곤 파일에 고이 모셔 둔 편지들을 꺼냈다. 친구들과 가족들이 써준 편지에 층층이 먼지가 쌓였다. 입으로 바람을 후 불고, 손으로 쓱 닦아내니 종이들이 자기 색을 찾아갔다.
유독 눈에 띄는 건 엄마의 편지도 아닌 아빠의 편지다. 그 부끄러움을 참고 평소에는 하지 못할 사랑한다는 표현을 많이 써주신다. (가끔 말로 하기엔 쑥스럽다며 (엄지와 검지를 겹쳐) 손가락 하트를 만들어주신다.) 아빠의 편지에는 공통점이 있다. 편지 마무리가 항상 똑같다. '파이팅!' 혹은 '잘 하고 있어!'다. 이 마지막 말은 편지에 잔뜩 써 놓은 내용을 함축해 놓은 표현 같다. 그래서 마지막만 봐도 아빠가 무엇을 말씀하셨는지 짐작할 수 있다.
엄마의 편지는 아빠와 다르다. 온통 걱정 투성이다. '아! 모성애가 이렇게 나타나는 건가' 할 정도다. 아프지 말고, 밥은 잘 챙겨 먹고! 가 주를 이룬다. 파이팅! 이 주된 내용인 아빠의 편지와는 다르다.
앞서 엄마의 편지보다 아빠의 편지가 눈에 띄었다는 것은 '표현' 때문이다. 엄마와 나는 자주 많은 표현을 한다. 매일 통화하면서 엄마의 일상과 감정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사랑해'는 물론이고 '힘내', '할 수 있어'까지 매일 목소리로 듣는다. 표현이 적은 아빠는 목소리 대신 글로 표현하는 셈이다.
편지를 읽으면서 부모님이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자주 느낀다. 힘들 때면 아빠의 파이팅 넘치는 글을 보면서 위안을 삼고, 아프면 엄마의 목소리를 듣는다. 아, 엄마 아빠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