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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린신문 Feb 10. 2020

노인 근육 사용금지 구역

01. 노인 근육 사용금지

노인 근육 사용금지 구역

 

명절이 되면, 어김없이 고향 고흥으로 향한다. 장장 6시간의 대장정이다. 어찌나 먼지. 그래도 오랜 시간 운전하고, 도착하면 어머니 표 닭 떡국과 항아리에서 막 꺼낸 멸치젓갈 가득한 김장 김치가 필자를 반긴다. 


도착 1시간 전 순천쯤이면 반드시 미리 전화를 걸어 '닭 떡국'을 준비해달라고 얘기한다. 일 년에 딱 두 번 먹을 수 있는 '닭 떡국'이다. 김치와 함께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나면, 6시간의 피로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다음 날이 되면, 어머니께 매생이 굴국을 부탁한다. 고흥에서는 부담 없이 맛있게 먹었던 매생이가 서울에서는 한 그릇에 만 오천 원, 가끔씩 먹어줘야 하는 고급 음식이 돼 버렸다. 서울 생활 10년을 넘기면서 질리도록 먹었던 그 시절 어머니의 모든 요리들이 고급 요리로 비치기도 하면서 그리워지기도 하는 시점에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나약한 노인으로 만드는 건 주변인

차례를 지낼 때면, 커다란 차례 상에 각종 차례음식이 놓인다. 하나둘씩 음식을 나르고 차례가 끝나면 다시 그릇을 나른다. 커다란 차례 상을 정리하는 일은 언제나 칠순 중반 아버지의 몫이다. 힘들고, 무겁고, 번거로운 일은 죄다 부모님을 시킨다. 그때 필자는 마냥 쉰다. 불효다. 보통의 자녀들은 부모님 힘드실까 쉬게 하고 직접 정리할 테지만, 필자는 아니다. 버르장머리 없는 불효자이기 때문이다.      


부모님께 안마기, 마사지기, 건강식품 등의 선물은 절대 하지 않는다. 이유는 하나다. 부모님을 나약하게 만드는 요소들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대신 현금을 드리지만, 부모님은 그 현금으로 안마기, 마사지기, 건강식품을 직접 구입하지는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활동량은 줄어든다. 단순히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다. 가족, 친지들을 비롯한 주변인들 때문에 활동량이 줄어드는 것이다. 지금의 스마트세대들 역시 노인들만큼이나 활동량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기는 하나 이들에게 안마기나, 마사지기, 건강식품 등을 선물하지는 않는다. 


자녀들이 첫 직장을 얻고, 돈을 벌어 부모에게 선물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대부분은 부모님의 나이에 상관없이 건강 관련 선물을 하곤 한다. 건강하게 오래 사시라는 의미일 것이다. 건강 관련 선물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부모님의 남은 일생은 건강과 장수에만 집중하게 된다. 자녀들의 입장에서 말이다.      


가족, 친지들은 건강하고, 장수하기 위해 편히 쉬라 하고, 지하철은 나이 많다고 돈도 내지 말라하고, 노약자로 취급하며 계단으로 가지 말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라 권한다. 노인 전용 좌석은 항상 출입구 가까이에 배치되어 있고, 무거워 보이는 짐 좀 들고 가려 치면, 어느샌가 젊은이가 짐을 들어준다 한다. 온통 노인 근육 사용금지 구역뿐이다. 노인을 나약한 노인으로 만드는 건 주변인들이다. 배려, 공경의 이유가 우선이겠지만, 결과적으로 계속된 배려와 공경이 스스로 활동할 수 있는 욕구를 조금씩 억제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노인과 아기

저출산 고령화로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 젊은 세대가 줄어들고 있고, 이로 인해 노인 1명당 부양 인력은 점차 줄어든다며 걱정들을 한다. 걱정은 걱정이다. 퇴직 후 족히 30~50년은 더 살아갈 텐데 일자리는 없고, 돈도 없으니 말이다. 퇴직 전까지 당당하게 멀쩡하게 일하던 사람이 퇴직 다음 날이 되면, 기지도 걷지도 못하는 아기들보다 못한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스스로 걷기도 하고, 스스로 똥, 오줌도 가리고, 스스로 밥도 챙겨 먹을 뿐만 아니라 50~60년 인생의 지혜와 인적 네트워크를 가졌음에도 말이다. 


차이가 있다면, 아기는 귀엽지만, 노인들은 귀엽지 않다는 점 정도. 귀여운 아기는 품 안에 안고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 수 있지만, 노인을 품 안에 안고 수다를 떨 수는 없다. 그래서일까 그러한 귀여움이 직접적인 부양과 간접적인 부양의 기준이 되어버린 현실이다.     

 

점차 노인들이 아기들과 같은 직접적인 부양의 대상으로 사회적인 분위기가 옮겨가고 있다. 지나친 생각일 수 있지만, 이러다간 노인들의 밥까지 부드럽게 씹어서 먹여줘야 할지 모른다.      


스스로 활동에 대한 욕구가 억제되다 보니 부양에 대한 부담은 더더욱 커져가고 있다. 노인복지에 지출할 충분한 여유는 없는데, 누군가는 계속해서 필요로 한다. 충분한 여유가 없는데, 선거 공약에는 온통 복지 관련 내용들뿐이고, 경제 분야에서는 실버산업에 대한 긍정적인 추측들만 난무하고 있을 뿐이다. 


스스로 활동하고자 하는 욕구를 북돋아주는 주변인이 많아져야 한다.



'노인 근육 사용금지' 

글쓴이 밀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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