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45일차
좋은 회사라는 것은 뭘까.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던 회사를 다니는 동료들이 줄이어 퇴사한다. 인생의 끝은 아니다. 어딘가로 이동하고 또 다른 챕터로 변경되는 것 같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정규직이란 환상 속에서 살아가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해. 우리 딸이 살아갈 세상에는 또 어떤 직장이 주목받고, 뜨고 질까. 직장이란 개념이 살아있긴 하겠지?
때로는 직장을 무사히 다니고 있는 것에 감사할 때도 있어. 직장이라는 게 많은 시간을 빼앗지만 딸과 가족과 행복한 저녁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주말에 근교로 편안하게 놀러갈 수 있는 교환가치를 제공하니까. 어줍잖게 자아실현을 해보기도 하지. 아빠의 경우엔 사무직이라 사실 크게 남는 일이라곤 없어. 사회에 정말 이바지를 할 수 있는 일들은 마치 코로나19 치료를 하는 간호사이거나 딸처럼 어린이를 키워내는 보육교사에게 있는지도 몰라. 대부분의 시간들을 외부에서 보내고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는 시간은 적지. 극단적인 케이스지만 그게 타인과 대체 가능하지 않을수록 돈은 많이 받겠지만 더더욱 시간은 쪼개 쓸 수밖에 없을 가능성이 높지. 이래저래 일이라는 게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을 빼앗는 거 같은 느낌인데? 반면 일이라는 게 더 나은 밥상을 제공해주기도 하고 일을 원활히 수행해낼수록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성취감도 든단다.
주변의 퇴사 케이스들은 전체적 설계가 엉망이었는데 건물이 무너져가니 일하는 사람부터 내쫓는 상황이랄까. 물론 그 와중에 일을 잘하는 순서대로 남겨두는 건 아니라서 또 이래저래 말이 나오기도 한단다. 자기편으로 솎아내는 방식은 매출을 올리는 순위로 매겨지는 게 아니라 자기와 친하느냐 얼마나 궁합이 맞느냐로 판가름나기도 해. 사람 사는 데라 그렇지. 그런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닐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잡설이 길었네. 딸을 보고 있는 순간이 너무 행복한데, 일을 해야지 이 행복이 유지될 수 있겠다는 당위성은 누구보다 잘 아는데, 가족과 시간을 더 보내면서도 경제적으로 힘들지 않는 길이 무엇인지 고민을 더 많이 해보게 되네. 좋은 회사라고 일컬어지던 회사에 충성하던 친구들이 떠나게 되는 상황을 보면서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