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51일차
멀리 독일서 편지와 함께 우리 딸 선물이 가득 왔다. 세부 사용법 가이드까지 함께. 벌써 20년 가까이 된 친구에게서 말이야. 예전엔 동아리 친구였지만 이젠 육아 동지가 된 걸까. 육아템들을 한박스 보냈네. 육아템은 독일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이 좋다고 말로만 들었는데 바로 입혀보니 참 좋다.
어쩜 이렇게 고마울까. 서울에 올 때마다 친구들을 모이게 하는 친구. 3년만에 봐도 어색하지 않고 말이 잘 통하는 재밌는 친구. 예전엔 함께 여행도 다니고 사진도 찍어주고 했었는데 어느새 부모가 돼 육아 선물을 주다니. 어느 새 시간이 이렇게 흘렀네.
오래된 친구들도 소원했다가 다시 만나기도 하고 친했다가 연락을 뜸하게 되기도 하는 것 같아. ‘영원한 친구’ 같은 건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만든 말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 그렇게 많은 기대를 하지 않는 게 건강한 관계일 수도 있지. 뭔가를 기대하고 실망하면서 서운해지고 멀어지고 관계에 갑을이 생기기도 하잖아. 아빠에게도 물론 그런 사이가 없다고는 볼 수 없지. 친구 뿐 아니라 사회나 회사에서도 말이야.
가만히 보면 어릴 때보다는 초연해진 것 같아. 최근엔 누군가에게 뭘 기대하기 보다는 내가 다소 손해보는 게 상대에게 편함을 주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 때론 실천이 어렵지만 말이야. 과해지면 호구겠지만 적당한 선에서 저 사람과 함께라면 내가 괜찮겠다 싶은 마음을 주는 것들 말이야. 내가 기대하지 않는 첫 걸음이었다랄까.
선물을 준 독일 친구와 느슨하지만 건강한 관계인 것 같아. 이제는 소셜 네트워크가 있기 때문에 오래 보지 못해도 서로 안부도 주고받기 쉽잖아. 오늘 어디 다녀온지도 금세 알 수 있으니 지척에 있는 소식을 모르는 친구보다도 가깝다고 볼 수도 있겠네. 그래서 물리적 거리는 수천배 차이날텐데도 멀다고 느껴지지도 않나봐.
어쨌든 이렇게 고마운 선물을 받고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독일로 조그만 답례를 해야지 싶다. 우리 딸에게 인생 첫 편지를 선물해줬는데 말이지!
킹갓제너랄베이비. 오늘 잠을 어쩜 이렇게 깊게 자는지 겨우 깨워 먹이고는 아빠는 오늘자 편지를 쓴다. 키도 많이 자랐고 발바닥도 커보였어. 오늘은 엄마아빠랑 길 건너까지 외출을 했고 이제 900ml 가깝게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