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66일차
얼마나 오래 자손을 기다렸을까. 누구 맘대로 될지 모르고 할머니는 내게 대학교만 졸업하면 바로 결혼하고 아기를 낳으라고 했었지. 할아버지가 워낙 나이가 많아 그랬을까. 외동에 외동인 조용한 가족에 시집을 와서 그랬을까. 무려 나를 낳고 아기를 만나기까지 40년 가까이 걸렸네. 아빠가 불효자다.
핏줄이란 뭘까 생각한다. 조상이라고 굳이 언급치 않아도 전수돼온 DNA를 또 전수하는 과정에서 선대의 일부를 물려받는다. 딸에게서 나온 행동은 나와 아내와 할아버지와 삼촌으로부터 일부씩 가져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커갈수록 더 보일 수도 있을지 모르지. 잠 습관, 표정, 손짓, 옹알이도 몸이 다른 나의 형상을 한 작고 귀여운 존재에게 가 있다는 걸. 형제가 없고 사촌만 있던 아빠는 실감하지 못했던 가족과 핏줄이 얽히고 설켜 있다는 것을 이제 조금은 느낀다.
문득 딸에게서 할아버지 모습이 비칠 때가 있다. 눈매며 표정이 왠지 모르게 아빠를 닮아있을 때가 있어. 우리 아빠가 어릴 때, 아기 때 이럴 수도 있었겠구나 상상하게 된다. 그때와 지금은 크는 환경도 육아 방법도 많이 다르겠지. 옹알이도 트렌드에 따라 변했으려나.
새삼스레 내 어린 시절 나의 부모도 나를 이렇게 예뻐했겠구나 생각이 들면 나의 불효에 몸둘 바를 모른단다. 딱히 말썽을 피우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당신들이 바라는 것도 하나도 해주지 못하고 원하는 인생을 좇다가 돌아오니 일반적 행복 궤도에 올라타는 데는 지각한 것 같아. 그래도 딸이 있어 모든 회한이 녹아내린다. 딸이 태어나고 미래를 생각할 의욕도 생겨난다.
밝게 웃을 일이 많지 않은 시골 부모님께 이제 비로소 태어난 몫을 해드린 것 같아. 다 건강하고 무럭무럭 크는 딸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