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목] _ 박작박작한 오프닝 & 클로징
안녕하세요, 박작박작한 아침을 여는 박작입니다.
우연히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어른이란 고통의 의미가 해석되는 사람”
뭔가 의미심장하지요? 오프닝을 통해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지 하고 적어두었다가, 오늘 이렇게 꺼내 들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마주하는 고통은 사실 그저 피하고만 싶은 존재입니다. 하지만 어른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단순한 ‘불운’으로만 남겨둘 수 없다는 사실을요.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고통은 하나의 사건으로 끝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인생의 이야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 경험을 지나며 우리는 조금씩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른이란, 어쩌면 자신의 고통을 인생의 이야기로 바꾸어 갈 줄 아는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지나온 경험들은 차곡차곡 쌓여 데이터가 되고, 결국 지혜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지혜는 공감의 수단이 되기도 하지요. 고통은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니까요. 나와 가까운 사람들, 그리고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 모두가 언젠가는 마주하게 되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의 고통 앞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됩니다.
“나도 겪어봐서 알아.”
이 말이 어떤 사람에게는 오만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 속에는 이런 뜻이 담겨 있을 거예요.
“그 마음이 얼마나 무거울지 짐작이 간다.”
고통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게 되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씩 달라집니다.
사실 우리가 고통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그 안에 들어가면 쉽게 빠져나오기 어렵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고통을 해석할 수 있게 됐다는 건, 그 고통과 나 사이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지 않을까요.
폭풍우 한가운데서 비명을 지르던 단계를 지나, 비가 그친 뒤 젖은 땅을 보며 “이 비 덕분에 땅이 단단해지겠구나”라고 말할 수 있는 여유. 그래서 어른이 된다는 건 고통을 겪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그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뜻일 겁니다.
오늘 하루 중 혹시 작은 고통을 마주하게 된다면, 그 순간을 그냥 지나치기보다 나만의 해석 하나쯤 남겨 보시면 어떨까요.
오늘도 박작박작한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