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어린이를 위한 예언
브런치 작가? 그게 뭐죠?
브런치에서 채널로 보내주는 글 중에 맘에 드는 제목의 글만 골라 읽는 불량 독자인 나.
오늘은 어제와 비슷했고 내일도 오늘과 비슷할 거라는 확신.
점심으로 칼국수를 먹은 게 어제였는지 그제였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인터넷 쇼핑으로 주문한 각종 물건들이 현관문 앞에 성처럼 쌓인 날도 있었다.
내 이름이 버젓이 찍힌 택배 상자를 들이밀며 이거 누가 샀냐고 되묻는 지경에 이르렀다.
소비만 죽도록 해대는 인간이 소비에 소외당했다.
하늘을 날아갈 듯한 하루, 땅으로 꺼져 솟아날 줄 모르는 나날의 무한반복.
딸이 브런치에 글을 올려보라며 처방전 비슷한 조치를 건넨다.
당장 마음이 동한다. 그래? 그럼 쓴다!
맘대로 쓸 수가 없어요. 글을 써서 작가 신청하고 승인을 받아야 해요.
귀찮고 성가신 가운데 살짝 오기 비슷한 감정이 얼굴에 스친다.
꼴에 이름은 「안작가」인 폴더를 연다.
독후감, 여행기 몇 개, 억지로 제출했던 문학동호회 원고 두어 개가 전부다. 빈약하다.
추수 끝난 들판에서 이삭 줍듯 샅샅이 뒤져 찾아낸 원고 하나를 이리 보고 저리 잰 후,
<14시간 Salzburg 체류기>로 작가 신청을 했다.
허세는 있어서 <되면 좋고 안되면 할 수 없고> 정신으로 무장한다.
신청하고 이틀 후에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멜이 왔다.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등극하셨습니다. 요란 벅적 가족들과 파티를 했다.
누가 보면 출판기념회나 북콘서트를 하는 줄 알겠더라.
작가 신청했던 글을 첫 글로 올렸다.
오잉? 독자 분이 하트를 누르면 내 브런치 앱에 <OO님이 라이킷했습니다>라는 알림이 울린다.
방금 올린 따끈따끈한 글이라는 게 표시가 되는 걸까. 브런치 나우였다.
글 하나를 올린 지 이틀 후인 토요일 아침 내 브런치 알림이 콩을 볶는다.
한 자릿수를 면치 못하던 조회수가 삼천을 돌파했다는 알림을 시작으로 천 단위씩 올라가는데
하울의 손에 허리를 맡긴 채 처음으로 공중을 걷는 소피가 된 듯한 느낌이랄까. (feat. 인생의 회전목마)
<바르셀로나에서 소매치기와 동행하는 법> 이란 글이었다.
https://brunch.co.kr/@windday/3
"브런치 조회 수 급증"으로 검색하니 오호라, 친절도 하신 브런치 작가님들이 자세하게 알려주시네.
유입경로 중 기타 분류 항목으로 분류되는 PC daum 메인, 모바일 daum 메인 , 카카오톡 #탭에 노출되어
잠재적 독자들이 떼로 몰려와 클릭하는 조회수 급증, 포털의 위력 대단하다.
여기에서 잠깐,
그럼 어떤 글이 무슨 절차에 의해 내 글이 노출되는가?
브런치팀에서 골라 올려줄 것 같다?
노노, 브런치 선배 작가님들이 유추하길 어떤 "알고리즘"이 작동하는 걸로 보인다고 한다.
( 공식적인 브런치의 답변이나 공지는 없다고 알려주는 이 섬세한 배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 조회수와 달리 구독자 수는 내 손안에서 꼽을 수 있다. 첫술에 배부르지 않는 법.
아틀라스처럼 푸른 모래시계를 떠받치고 있는 방문자님과 구독자님들, 감사해요.
자, 이 맛을 한 번 보면 이제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이제 머리에는 온통 어떻게 다시 이 맛을 볼 수 있을까 고민한다.
< 트레비 분수 옆 젤라토 가게 앞 > 은 글을 올린 다음날 daum 메인과 카카오톡 #탭에 노출되었다.
https://brunch.co.kr/@windday/12
(이때만 해도 나야, 나 푸른 모래시계야~! 의기양양했다. 참회합니다.)
이제 밥을 먹으면서도 브런치, 일을 하면서도 브런치, 잠들기까지 브런치가 나를 지배한다.
<몬세라트에서 사진 찍는 법>은 웅장하고 드물게 볼 수 있는 사진 덕에 메인에 오르지 않았을까 추측했다.
알고리즘 의인화의 오류였다.
글, 좋았나 보다. 브런치도 추천했다. 사람의 기운으로 선택된 글.
(메인 노출과 브런치 추천에 대한 브런치 작가님들의 찬반과 갑론을박 의견들도 어찌나 세련됐는지
고강도의 정신노동 중인 브런치 팀에게 시원한 빙수라도 보내고 싶다.)
https://brunch.co.kr/@windday/18
그럼 이제 브런치 작가가 된 당신에게 일어날 증상과 감정과 사건들을 예언한다.
가장 먼저 달라붙는 중독은 집착증이다.
조회수와 라이킷 수에 심하게 집착하여 브런치 앱의 통계에 노예가 되어버린다. 그러나 안심하시라, 3번 정도 메인에 오르면 효력이 없어진다. 더불어 안심하시라, 초보 브런치들의 글을 우선적으로 노출하는 것 같아 보인다고 하니, 3번은 거뜬히 노출될 것이고 중독은 약간의 흉터만 남기고 사라질 것이니.
다음으로 놀라움이 엄습한다.
브런치는 집단지성의 완결판이다. 이토록 다양한 분야에서 깊이 있는 전문가들이 쏟아내는 영롱하며 찬란한 글들의 큰 물결이 파도치는데 놀라지 아니할 자 누구겠는가. 그리고 언제 이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나 걱정될 것이다. 괜찮다, 브런치는 우리의 생명줄보다 더 길게 꼬아지고 있는 중이니 스크롤할 검지 손가락을 귀하게 여기시라.
그러다 문득 자기 발견이란 걸 하게 되더라.
나도 생각하지 못했던 취향에 대한 분명한 호불호, 옳고 그름의 기준선이 이동하며 무릎을 탁! 친다. 아니, 내가, 이런 사람이었단 말이야?!
평생학습은 브런치에서도 대세다. 작가님들이 왜 그렇게 다들 공부에 매진하는지 알고 싶으면 지금, 바로 글 하나를 써보면 된다. 글의 주제와 주제를 빛나게 해 줄 자료와 그 자료를 지지고 볶을 글쓰기를 공부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받들게 될 것이다.
끝으로 꾸준히 글을 쓰고 읽다 보면 최고의 글쓰기 도구 인류애를 장착하게 될 것이다. 내가 소중해지니 나처럼 너도 참 소중한 당신이더라.
브런치 어린이 "브린이".
'브린' 은 누에가 만들어 내는 한 가닥의 섬유라고 해요.
이 브린을 세리신과 결합시키면 우리가 아는 견사, 비단실이 되는 거지요.
저와 같은 브런치 어린이, 브린이 작가님들을 응원하며
당신은 온 힘을 기울여 한가닥씩 뽑아낸 브린을 닮은 글을 쓰게 되리라 감히 예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