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테리어의 찰떡궁합
꾸준함이 재능을 거듭날 수 있으니 작가님의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세요.
(꾸준하게 글 쓰지 않는 그대, 정신 차리시라!)
작가님의 색깔이 묻어나는 이야기를 독자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서어서 한 줄이라도 쓰시라!)
언니들과 김장한 이야기를 끝내고(다음 메인에 올라 '김장'도 우리의 잔치임을 많은 이들이 확인시켜줌)
이사로 정신없던 날들을 보내고 새해까지 맞이하자 어이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결혼하면서 지금까지 9번의 이사를 완성했다. (결혼 후 10년 이내에 5번의 이사를 했다)
한 도시를 맴맴 돌다 넓은 평수의 오래된 아파트를 리모델링하면서 맘껏 취향을 풀어놓았었다. 그리고 이 집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었다. 아래층에 사는 내 또래 아주머니가 벨을 누른 후 자기 집 서재방 천장에 물이 샌다는 기가 막힌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이곳을 떠나야 할 때가 다가옴을 예감했다. 내 힘이 미치지 못하는 어떤 일에 신경을 쓰다 보면 아프고 예민해져 짜증 대마왕이 되어버리기 일쑤였다. 설거지를 하다 이 도자기 그릇들을 한꺼번에 바닥에 내던지며 박살 내는 상상을 얼마나 해댔던가. 오래된 아파트의 배관은 즐거운 나의 집을 골칫거리 나의 집으로 주저앉혔다.
공사를 끝내고 새로 도배를 한 다음 집을 내놓았다. 이사 갈 집을 정하기도 전에 삼십 대 젊은 남자 혼자 집을 보러 왔다가,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 부모님과 함께 다시 방문하더니 그다음 날에는 아내와 세 살짜리 꼬맹이 딸을 데리고 와서 돌아보고는 계약을 하잔다. 아마도 인테리어를 하며 남편이 잔뜩 신경을 쓴 식탁 자리 수입타일 벽에 마음을 빼앗긴 것 같았다. 내가 봐도 그 자리에서 평생 살라고 해도 살아질 것 같은 곱디 고운 자리였다.
사계절이 오가는 것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거실 창가는 큼지막한 풍경 액자를 집에 들인듯했다. 다리 수술 후 휠체어에 앉아 이른 봄 목련꽃송이를 헤아리며 미소 짓던 그때가 그립다. 밖에 나가지 않아도 작은 숲에 온듯한 느낌을 선사해주던 아파트를 목발을 짚고 떠나며 목이 잠겼었다.
나무가 자라는 높이 안에 우리 집이 있어야 한다.
새로 이사 온 집은 2층인데, 도로가에서 보면 5층 높이라 퍽 마음에 든다. 사전점검 날 수형이 아름다운 커다란 나무를 거실 창에서 마주하며 환호했다. 봄아, 오기만 해라!
뜰에 나무 한그루는 거실 창에 가지가 닿을락 말락 자라고 있다. 잎이 나고 꽃이 피면 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반갑다는 악수를 해도 될 것이다. 그리고 나의 오랜 소망, 창을 내다보며 설거지를 하다가 눈길을 밖으로 던지면 바람이 간지럼을 태우는 걸 견디지 못하는 잎들을 볼 수 있다.
2021년을 정리하고
2022년을 맞이하는 입주 메모리.
새 아파트의 입주 준비는 사전 점검부터 시작된다. 탄성, 줄눈, 코팅 이외에는 어떤 공사도 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짙은 인디고 블루의 주방을 본 순간 침을 꿀꺽 삼키며 식탁등 하나만 들이기로 했다. 냉툭튀를 못 견딜 것 같아 냉장고장 공사를 했다. 이때는 아무것도 아닌 날것의 우리 집.
입주민들 단톡방에 먼저 입주한 주민들의 사진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다들 저 인디고 블루를 시트지로 감추고, 우물천장을 환한 색으로 도배하기 바빴다. 남편은 이 아파트 시공사와 어떤 연관도 없으면서 설계자와 인테리어 담당자를 무척 아끼는 사람처럼 퍽 마음에 들어 했다. 최고의 튜닝이 뭔지 아는가? 순정이다!
그런 남편도 풀 죽은 내 모습이 보기에 안쓰러웠는지 도배지 대신 갤러리 느낌이 나는 월 보드 공사를 해 주었다.
12월 19일 이사를 하고 3일 연차를 내서 이삿짐 정리를 했다.
제일 먼저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우고, 추운 날 고생한 초록이들 자리를 잡아 주었다.
화분은 다섯 개 이상 못 가져간다는 엄포를 들으면서 찾아낸 고공 화분대.
안방 베란다 빛 잘 쏟아지는 곳에 빼곡하게 자리 잡고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
꽃은 꽃대로 어여쁘고 여린 잎들은 잎대로 보는 맛이 그만이다.
추운 겨울 이사한다고 몸살을 앓은 초록이들. 어깨 들이밀 공간조차 없이 빼곡하다.
다음날부터 여행에서 가져온 것들로 이곳저곳을 채우기 시작했다.
여행지마다 기록처럼 가져온 마그네틱들을 자석보드에 옹기종기 앉히는 재미는 근사하다. 3개의 보드를 다 꺼내놓자다가 핀잔만 듣고 하나만 먼저 거실 장식장 위에 앉혔다. 아름답구나~~
새 아파트 입주는 하자와의 전쟁이라고 한다.
그만큼 입주자들의 기대가 큰 것이라 여겨진다.
완벽하게 완전한 집. 마룻바닥의 어떤 생채기도 허락하지 않음. 도배지의 한치의 들뜸도 용납하지 못함. 대리석과 타일의 한 점 얼룩도 눈감지 못함....
지금도 커튼 아래 문틀에 찍힌 자국이 있고, 우물천장 안 도배지에는 가는 선이 도드라지고 싱크대 상부장 문에는 새끼손가락 길이만큼 파여있지만 어쨌든 우리 집은 우리 집이다.
우리 것을 들여놓는 순간 우리 집이 되는 기적!
2022년 잘 살아 보기로 한다.
한달 하고도 보름 넘게 기다려 받은 호텔 침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