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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모래시계 May 27. 2022

옥색도 이런 옥색이 없더라

이건희 컬렉션 중에서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를 골랐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던 이건희 컬렉션은 결국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되었다. 갖은 연고를 들이대던 지자체들의 목소리가 무색해졌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간택의 은혜로움을 무료 전시회로 표현했고 사람들은 득달같이 달려들었지만 코로나의 장벽에 막혀 예매 버튼을 누르려 심호흡을 하는 순간 한정된 예매는 끝이 났다는 푸념이 들려왔었다.

 어쨌든 거리두기가 없어지자 국립현대미술관은 전시기간을 연장하며 더 많은 이들에게 이건희 컬렉션을 보여주려는 손짓을 보냈고 사람들은 다시 경복궁 옆 국립현대미술관에 공작새의 날개처럼 펼쳐 모였다.

물론 나도.   


걸출한 작품 가운데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로 이건희 컬렉션을 기억하겠다.


<여인들과 항아리>는 1950년대 6.25 전쟁이 끝날 무렵 삼호그룹의 정재호 회장이 집을 새로 지으면서 벽화용으로 주문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1960년대 삼호그룹이 미술시장에 내놓은 이후 1980년대 초에 가나아트 이호재 회장의 중개로 '이건희 컬렉션'에 추가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85년 중앙일보 사옥이 문을 열면서 한동안 걸려 있었는데, 같은 건물에 있던 호암갤러리의 다른 작품들을 초라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한동안 용인 수장고에 있다가 '이건희 컬렉션'을 계기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 이건희 컬렉션 (내 손안의 도슨트북), SUN 도슨트 지음, 서삼독 중에서



조화롭다.

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어깨에 지고 가슴에 안은 여인들이 먼저 망막에 맺힌다. 달항아리를 든 여인들의 자태가 우아하여 기분이 좋아진다. 여인 사이에 연인 한쌍이 서로를 보듬고 있고, 단정하게 새가 날고 있다. 여자애 둘이 팔짱을 끼고 우리를 빤히 보고 있다. 그림 오른쪽에 수려한 문양의 수레는 꽃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소녀의 눈앞에서 금방이라도 굴러갈 듯 팽팽하게 원을 그리고 있다. 새장 안에서 흰새는 날개를 펼치고 있는 듯 보인다. 오른쪽 위로 하얀 실루엣의 여인과 나무와 남대문이 분홍색 배경으로 그림을 꽉 채우고 있다.       

그림 중앙에 빨간 뿔을 머리에 달고 옥색 사슴이 새침하게 눈을 감은 채 매화꽃 가지를 입에 물고 가늘게 서 있다. 사슴이 걸어가면 꽃수레가 돌돌 굴려갈 것 같은 느낌이라 살짝 웃음이 올라왔다. 


여인들과 항아리는 여인들과 오브제를 따로따로 보아도 어색함이 없다.  완벽한 여인들과 오브제들의 배경색을 하나씩 뜯어보아도 구성이 탁월한 것을 알겠다. 무엇보다 바다를 유영하는 듯한 각기 다른 농담의 옥색은 실제로 내 눈에 보여줘야 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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