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네 한의원
병력을 청취하다 보면 약을 10년 이상 복용하고 있는 분들을 자주 본다.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때문인 경우가 많고, 통증이나 불면증 때문인 경우도 적지 않다. 계속은 아니어도 위장약이나 변비약 그리고 진통제를 몇 십년째 수시로 복용한다는 분들도 본다.
어쩔 수 없이 평생 약을 복용해야 하는 경우는 분명 있다. 예를 들어 장기이식을 받았을 때 면역억제제를 복용한다던가 인슐린을 생산하는 췌장이 망가져서 혈당을 조절할 수 없을 때와 같은 경우다. 약의 도움이 생명의 유지나 건강에 결정적 역할을 할 때는 설사 그로 인한 피해가 있더라도 지속적으로 복용해야 한다.
하지만 더 많은 분들이 그냥 편하기 때문에 약을 복용하는 것 같다.
우리 몸은 어떻게든 일정한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 부단히 애쓴다. 생물학에서는 이것을 항상성 유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과정이 언제나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어서 때로는 혈압과 혈당이 상승하기도 하고, 잠이 안 오거나 소화가 안되기도 한다. 생명현상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늘 변화하는 속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주 사소한 일시적 오류는 그냥 두어도 몸이 스스로 회복한다. 실제 지금 이 순간에도 만두와 이 글을 읽는 분들의 몸은 이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이 과정이 좀 더 심한 정도로 나타날 때는 약물을 써서 도와주면 몸이 또 알아서 회복한다. 많은 대증요법 약물이 큰 효과를 나타내는 단계다.
하지만 편한 맛에 길들여지면 몸은 스스로 조절하는 힘을 조금씩 잃어간다. 약물이 들어오는 상황을 앞으로도 계속될 일종의 환경적 요인으로 인식하고 여기에 적응해 버리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적응은 양날의 칼이다. 많은 분들이 고혈압이나 당뇨약을 끊지 못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물론 그렇다고 당장 급한 불을 끄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약물을 써서 시간을 벌었으면, 그 시간동안 왜 내가 이런 상태가 되었는지를 살피고 그것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게 좋다. 약의 목적은 약을 복용하지 않아도 되는 몸과 마음의 상태를 만드는데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선택의 문제다. 오랫동안 약을 복용해서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이 습관을 바꿔서 약을 안먹는것 보다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인간은 꽤 잰체를 하지만 그리 합리적인 존재는 아니라는 것은 이미 수없이 증명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