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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찬 Jul 31. 2024

코리안 바나나를 아시나요?^^

텃밭 속에 숨은 약초 


제가 다닌 국민학교 교가는 ‘메봉산 푸른 줄기 요람 이루고…’ 이렇게 시작합니다. 메봉산이 있는 동네가 신교리인데, 신교리에는 원이랑 철수가 살았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학교 운동장에서 놀다가 지겨워지면 이웃 마을에 놀러가 탐험이라는 이름 아래 여기저기 돌아다니곤 했습니다. 


어느 날, 교가에 나오는 메봉산이 우리의 탐험 목표가 되었습니다. 교가에 나오는, 정월대보름에는 달집을 태우는, 이름조차 신비한 메봉산. 그때 느낌으로는 코난 도일의 소설에 나오는 곳처럼 완전히 별천지 같았지요.


신교리 아이들이 앞장서고 우리 동네 아이들이 뒤따라 산을 올랐습니다. 아직 날은 더웠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았는지 풀도 무성하고 잡목이 우거져 있었습니다. 한참을 가고 있는데 갑자기 원이가 ‘저기 으름덩굴이다!’라고 외치는 것이 아닙니까! 태어나 처음 으름을 본 순간이었습니다. 다른 나무를 타고 올라간 덩굴에는 으름이 마치 바나나처럼 열려 있었습니다.  


철수가 나무를 타고 올라가 따왔고, 우리는 다 같이 나누어 먹었습니다. 하얀 속살은 마치 바나나처럼 부드러울 것 같았지만 정작 먹을 것은 별로 없고 온통 까만 씨였습니다. 그래도 맛은 달콤해서 우리 동네 아이들은 모두 감탄해마지 않았는데, 원이와 철수는 ‘너희 마을에는 이런 것도 없구나, 많이 먹도록 해!’하며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봤지요.


 그 뒤로 으름을 먹게 되면 늘 그때 일이 떠오릅니다. 얼마 전 듣기로, 원이는 결혼해서 이미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고 합니다. 얼굴이 유난히 검었던 철수는 어떻게 되었을까? 다들 그때 일을 기억이나 할까요….


 우리 사이에서는 한국바나나라고 부르는 으름은 몇 개씩 송이로 달리는데, 익으면 껍질이 발어지면서 하얀 속살을 드러냅니다. 마치 누에처럼 생긴 가운데 것을 먹는데, 정작 먹을 것은 얼마 없고 대부분이 씨앗입니다. 한 입 베어 물고 우물우물하다가 씨앗을 후드득 뱉어 내는 것이 으름을 먹는 또 하나의 즐거움입니다.



가을날 즐거운 간식거리인 으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으름덩굴(통초, 通草)


성질은 평하고 맛은 맵고 달며 독이 없다. 다섯 가지 임병(비뇨기계 염증질환)을 낫게 하고 오줌을 잘 나가게 하며 관격증을 풀어주고 부기를 잘 빼고, 열을 내려준다. 


산에서 자라는데 덩굴로 뻗으며 굵기가 손가락 같고 마디마다 2~3개의 가지가 붙었다. 가지 끝에 5개의 잎이 달렸고 열매가 맺히는데 작은 모과와 비슷하다. 씨는 검고 속은 흰데 먹으면 단맛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연복자라고 한다. 음력 정월과 2월에 가지를 베어 그늘에서 말린다.


줄기에 가는 구멍이 있어 양쪽 끝이 다 통한다. 한쪽 끝을 입에 물고 불 때 공기가 저쪽으로 나가는 것이 좋다. 통초는 으름덩굴(목통)이다. 속이 비고 결이 있어 가볍고 색이 희며 아주 곱다. 껍질과 마디를 버리고 생것으로 쓴다. 경맥을 잘 통하게 하기 때문에 통초라고 했다.

 


으름(통초자) 


연복자라고 하는데 으름덩굴의 열매이다. 음력 7~8월에 따는데 성질은 차고 맛은 달다. 위열과 반위증을 낫게 하며 열을 내리고 대소변을 잘 나게 하며 속을 시원하게 하고 갈증을 멎게 한다.


으름덩굴은 목통이나 통초라고 하는데, 주로 열을 내리고 소변을 잘 통하게 해 비뇨기계 염증이나 몸이 부었을 때 씁니다. 여성들은 면역력이 약해지면 오줌소태(방광염)에 걸리곤 하는데, 말려두었다가 쓰면 좋습니다. 


어느 해인가 우연히 들른 곳에서 마신 차가 맛이 참 좋아 무엇으로 만들었냐고 물었더니, 바로 으름덩굴 잎으로 만든 차라고 했습니다. 맛은 감잎차와 비슷했는데, 좀 더 야생적이고 기운을 내려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열을 내려주는 으름덩굴의 작용이었겠지요. 굳이 열이 많고 살이 찐 사람이 아니더라도 잎을 말려두었다가 차로 마시면 좋겠습니다.


으름이 가장 맛있을 때는 이른 아침 잘 벌어진 것을 따서 먹을 때입니다. 그 시원하고 달콤한 맛은 일품이지요. 또한 씨를 골라내 공중을 향해 힘껏 불어내는 일도 마음에 시원한 즐거움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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